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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옥죄는 규제-1] ILO 협약 비준…"맘껏 파업하고 양껏 뜯어내라"


입력 2019.09.30 06:00 수정 2019.09.30 05:57        박영국 기자

해고자‧실업자 노조가입 등으로 노조에 집중된 힘의 쏠림 현상 더욱 심화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등으로 사측 방어권부터 보장해야

해고자‧실업자 노조가입 등으로 노조에 집중된 힘의 쏠림 현상 더욱 심화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등으로 사측 방어권부터 보장해야


7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7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무차별적 강요 등 문재인 정부 들어 기업들을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정책이 있어왔지만 ‘기업 괴롭히기’의 결정판은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이라고 재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노사간 힘의 균형이 노동계로 급격히 기운 상태에서 ‘결사의 자유’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ILO 핵심협약까지 비준될 경우 기업들은 노조의 횡포를 막을 방법 없이 ‘무장해제’ 상태에 놓인다. 일단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노조가 끊임없이 기업들을 괴롭히게 되니 ‘가장 효율적인 기업 괴롭히기’인 셈이다.

정부가 지난 7월 30일 발표한 ‘ILO 협약 비준절차 추진 방안’은 해고자‧실업자 등의 노조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단결권 보호 협약(87호·98호)과 강제노동 금지 협약(29호) 등 3개 협약에 대한 비준안을 심의·의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가 입을 모아 반대 의견을 냈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비준안은 지난 26일부터 시작된 정기국회에서 의결될 경우 최종 효력이 발생된다.

◆'전문 시위꾼' 노조 가입시 기업 정치파업 휩쓸려…해고자 복직 압박도

재계는 비준안이 최종 통과돼 해고자와 실업자도 노조 가입이 가능해질 경우 가뜩이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통해 힘의 우위를 가지고 있는 노조 측으로 힘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른바 ‘전문 시위꾼’들이 기업단위 노조에 가입한다면 주요 기업들이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 차원의 정치파업에 휩쓸릴 수도 있고, 범법행위나 회사 규정 위반으로 해고된 이들이 노조에 몸을 담고 있으면 매년 단체교섭에서 기업들은 해고자 복직 요구에 시달려야 한다. 사실상 노조의 횡포를 통제할 방법이 사라지는 셈이다.

재계는 노조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과도하게 보장하고 있는 기존 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단체교섭시 과도한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파업을 관행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파업뿐 아니라 사업장 점거까지 서슴지 않아 기업의 생산활동 자체를 악화시킨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사업장을 점거하는 행위 자체가 위법이라 우리나라처럼 물리력을 동원한 공장 폐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 것과 대조적이다.

5월 31일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가 끝난 울산대학교 체육관 모습. ⓒ데일리안 5월 31일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가 끝난 울산대학교 체육관 모습. ⓒ데일리안

반면, 파업에 대한 사측의 대항수단은 거의 없다. 사측의 직장폐쇄 조치는 실행요건이 매우 엄격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으로 인해 실제로 실행하기 어렵다.

또, 노조법상 대체근로가 전면 금지돼 있어 사측은 파업에 대한 대항수단으로 대체근로를 활용할 수 없다.

이같은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단체교섭 과정에서도 사측은 노조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요구까지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노조의 단체행동권에서의 힘의 우위가 단체교섭권에서의 힘의 우위로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사측에도 파업 대항수단 마련해 줘야

따라서 대체근로 허용과 사업장 점거 금지 등 사용자에게 파업 대항수단을 마련해 줘야 노사간 힘의 균형이 맞춰질 것이라는 게 재계 주장이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에 관한 부당노동행위 문제에 있어서도 사용자만 일방적으로 규제할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하고 있어, 노사간 대등하고 타협적인 상호 교류와 협의 활동 자체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는 사용자의 정상적 수준의 경영 대응활동에 대해서도 사측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이슈화하면서 고소·고발하는 사례가 많다. 사측은 형사처벌 문제로까지 이어질 경우 소송과정에서 부담하는 인적·물적 손실, 기업 이미지 훼손 등으로 인해 부당노동행위와 관련된 분쟁에 큰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반면, 노조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전혀 규율하지 않고 있어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 일본의 경우 부당노동행위를 노사간 균등하게 규율하거나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노동위원회를 통한 원상회복 및 행정제재로 관리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ILO 협약 제87호 비준에 따른 노조의 단결권 확대‧강화를 위해서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약을 받고 있는 사용자의 ‘생산활동 방어기본권’을 강화하고, 사용자만 과도하게 규제하는 부당노동행위 제도 등도 반드시 포괄적‧일괄적으로 함께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LO 협약 비준으로 노조의 단결권이 확대·강화된다면 형평성 차원에서 사용자의 ‘생산활동 방어기본권’과 ‘부당노동행위 제도’도 동시에 강화,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전임자 금여지금 금지규정 삭제시 오히려 ILO 협약 위배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에 대해서도 재계의 우려가 크다. 노조가 전임자 급여를 올려줄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일 가능성을 열어놓은 조항이다.

정부는 노조 전임자 급여를 ‘근로시간 면제한도 내’에서 지급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면제한도를 초과하는 급여 지급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할 목적으로 쟁의행위를 해선 안된다’는 조항 역시 삭제해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제어할 방법을 없애버렸다. 명분상으로만 단서조항을 달아놨을 뿐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놓은 셈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5월 30일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 정문 앞을 봉쇄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데일리안 현대중공업 노조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5월 30일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 정문 앞을 봉쇄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데일리안

재계는 애초에 노조의 자주성‧정당성‧독립성·도덕성 차원에서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 노조 업무에만 종사하는 전임자들의 급여는 노조 자체 조합비에서 지급하는 게 상식이라는 입장이다.

사측이 노조 업무만 수행하는 노조전임자에 급여를 지급한다면 상호 독립적으로 대응하는 관계에 있어야 할 노조가 금전적 거래 관계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측의 영향력 하에 놓일 위험성도 제기된다.

노조전임자가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지급받는 것 자체가 노조의 자주성과 도덕성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사용자의 지배와 간섭에 노출되는 위험성을 안게 된다는 것이다.

산별노조 체제인 미국, 유럽의 경우 노조와 기업은 독립된 관계여서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없으며, 기업별노조 중심인 일본의 경우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조 스스로 부담하는 관행이 정착된 상태다.

정부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이 ‘결사의자유위원회(CFA)’ 권고에 반한다는 이유로 이 규정의 삭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 규정이 상위규범인 ILO 제98호 제2조 규정과 상치되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ILO 협약 제98호의 1항은 ‘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의 설립, 운영 등에 있어 어떤 간섭행위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2항은 ‘근로자단체에 대한 재정상의 원조를 하는 것을 통제, 간섭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ILO 핵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추진한 법 개정이 오히려 핵심협약 조항에 위배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모순된 상황이다.

경총 관계자는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는 국가적으로 노사관계의 기본 틀이 바뀔 만큼 중대한 사안임에도 정부 개정안의 내용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수성과 후진성 등 현실적 여건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선진화해 나가야 하는 법·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고려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노사 간 입장도 균형 있게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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