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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공학도, ‘탈원전’ 말하다-중] 정부 탈원전 정책은 급진적이다


입력 2019.01.17 06:00 수정 2019.01.17 06:08        조재학 기자

원자력의 진실 알리기 위해 행동 나서

탈원전 정책이 원전수출 경쟁력 저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와 정구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AAA동아리 회원, 곽승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부학생회장, 신정엽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부학생회장 등이 11일 본지가 마련한 탈원전 관련 좌담회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와 정구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AAA동아리 회원, 곽승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부학생회장, 신정엽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부학생회장 등이 11일 본지가 마련한 탈원전 관련 좌담회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상) 이념이 에너지 정책을 망친다
(중) 정부 탈원전 정책은 급진적이다
(하) ‘전문가’도 ‘정책’도 실종됐다

원자력의 진실 알리기 위해 행동 나서
탈원전 정책이 원전수출 경쟁력 저해


정부는 탈원전 정책이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 정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원자력계는 급진적이라고 속도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2023년까지 원전개수가 늘고 2063년 원전 제로(0)가 된다. 하지만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를 백지화하는 등 산업계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원자력공학과 학생들의 전과 신청이 늘어나고,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 등에서는 원자력공학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급격히 나타나고 있다.

원자력공학과 학생들은 정부 주장과 달리 원자력계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보면 탈원전 정책은 급진적이라고 말한다. 원자력 산‧학‧연 전반에 걸쳐 붕괴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편집자주)


“독일은 탈원전 정책을 결정하는 데에만 30년이 걸렸고, 스위스는 국민투표만 5번을 실시했다. 한국은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곧바로 정책을 추진했다. 적어도 탈원전 논의부터 먼저 시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정구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원자력 전공 대학생들이 ‘전국원자력대학생연합’을 결성하고,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거리서명을 벌이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이유는.
=정구현 경희대 4학년(이하 정) :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내세우고 탈원전단체가 행동에 나서는데, 우리가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원자력에 대한 진실이 묻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는 우리의 앞길이 막힐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곽승민 서울대 2학년(이하 곽) : ‘우리 일’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학년이라 졸업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원자력공학도로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일념으로 거리로 나서게 됐다. 거리서명운동을 벌이면서 시민들을 설득하는 동시에 시민들의 목소리도 듣고 있다. 특히 원자력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생명의 사과’의 신명조 대표 등이 거리서명운동에 나서는 것을 보고 가속화됐다고 볼 수 있다.

=신정엽 한양대 2학년(이하 신) :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원자력 전문가들을 배제한 것에 대해 반발해 원자력 전공 대학생들이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번 거리서명운동도 우리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서게 됐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이하 정 교수) : 우리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부분 원자력 기관이 산업부나 과기정통부 산하에 있다. 기관에 소속돼 있는 사람은 자유롭게 활동을 할 수 없다. 원자력 전체 분위기보다 목소리가 작게 나오는 이유다.

교수들도 정부의 영향 아래 있는 연구가 많아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최전선에서 활동하면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원자력 관련 민간기업들도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수주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기 어렵다. 결국 학생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거리에서 서명을 받는 게 쉽지 않을텐데.
=곽 : 요령이 생겼다. 거리에 설치된 서명운동배너를 보고 흠칫하는 행인에게 서명을 권유하면 확률이 높다. 서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전단지를 전달해 일독을 권한다. 물론 대놓고 탈원전 찬성한다는 분들이나 욕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많은 것을 직접 피부를 느끼고 있다.

=신 : 모르는 사람에게 서명을 받기란 정말 쉽지 않다. 건국대학교 인근 번화가에서 서명운동을 할 때 꽃집 사장님이 따뜻한 커피도 주시고, 응해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구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학생이 탈원전 정책이 60년간 진행되는 장기 정책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정구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학생이 탈원전 정책이 60년간 진행되는 장기 정책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정부는 탈원전 정책이 60년간 진행되는 장기 정책이라고 하는데 동의하는가.
=정 : 정부 입장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독일은 탈원전 정책을 결정하는 데에만 60년의 절반이 30년이 걸렸고, 스위스는 국민투표만 5번을 실시했다. 한국은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곧바로 정책을 추진했다. 적어도 탈원전 논의부터 먼저 시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같이 공부하던 학생들이 취업이 잘되는 전화기(전기전자‧화학‧기계)로 전과하는 모습을 보면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느낀다.

=곽 : 물론 60년간 원전을 줄일 수 있겠지만 대안 없이 탈원전을 선언했다. 계획된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서 산업현장에서는 급속도로 충격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전공학생들의 분위기만 봐도 급진적이라는 생각이다.  

=신 : 탈원전 정부 정책은 장기적으로 진행된다고 하지만, 주변에 다른 친구들만 봐도 그렇지 않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불안해하는 친구들이 많다.

=정 교수 : 경희대 원자력공학과의 경우 이번에 1학년 14명, 2학년 3명이 전과를 신청했다. 전과 선택은 옳거나 옳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한 개인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중대한 결정은 시간을 두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자력 산‧학‧연이 준비할 시간을 줬어야 했다. 최근 두산중공업, 원자력 기자재 업체들이 겪는 상황만 봐도 심각하다. 원자력 기자재 업체는 ASME 규격을 맞춰야 부품 공급이 가능한데, ASME 인증 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비용 부담 때문이다. 정부는 정책변화에 따른 준비기간을 업계에 줬어야 했는데, 급진적으로 추진했다. 산학연 어느 곳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탈원전 정책이 강행되고 있다.

정부 주장대로 원전의 개수가 천천히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원자력 산‧학‧연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급진적이다. 비행기가 천천히 떨어진다고 한들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왼쪽)와 정구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학생(오른쪽)이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왼쪽)와 정구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학생(오른쪽)이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원전수출을 지원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 : 표리부동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탈원전은 추진하지만, 해외 원전 수출은 지원하고 있다. 어느 국가가 탈원전국의 원전을 수입하려고 할까. 한편으론 ‘원전 수출을 지원하겠다’는 말조차도 감사하게 여겨진다. 해외원전을 수주해야 국내 원자력계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 수출을 위해 땀 흘리시는 선배님들을 응원하고 있다.

=곽 ; 정부가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원전 수출을 하면 막대한 국부창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탈원적 정책 밀고 나가면서 수출을 지원한다는 게 다른 나라에 조롱거리밖에 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희망고문이라고 본다. 탈원전 정책을 펼치면서 수출까지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국내 여론이 악화되기 때문에, 정부가 수출지원에 나선다고 한 것이다. 또 수출에 희망을 건 원자력계의 반발을 어느 정도 무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한 수출에 성공하기 어려을 것이다.

=신 : 국내에서는 위험하다며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해외에서는 우리나라 원전이 안전하다며 수출하려는 모순적 상황이다. 중국, 러시아 등 다른 원전 수출국과 비교해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 교수 : 국내 원전은 기술만 놓고 보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가격경쟁력이 월등히 앞선다. UAE 원전수출을 했을 때 한국형 수출원전인 APR-1400의 메가와트(MW)당 단가가 미국 웨스팅하우스나 프랑스 아레바의 3분의1 수준이었다. 특히 UAE에서 적기 건설을 보여줬다. 원전 기술력만 놓고 보면 수출이 안되는 게 이상하다. 더욱이 웨스팅하우스와 아레바가 파산하면서 경쟁자는 더 줄었다. 우리나라가 원전 수출을 하지 못하는 건 정치적 문제 때문이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와 정구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AAA동아리 회원, 곽승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부학생회장, 신정엽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부학생회장 등이 11일 본지가 마련한 탈원전 관련 좌담회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와 정구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AAA동아리 회원, 곽승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부학생회장, 신정엽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부학생회장 등이 11일 본지가 마련한 탈원전 관련 좌담회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탈원전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원자력 공공기관에 이사나 감사 등으로 선임됐다. 어떻게 보는가.
=정 :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라는 게 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원자력 공공기관에 임명된 탈원전을 주장하는 분들이 선관주의의무에 충실한 사람인지 아니면 기관을 망하게 하려는 사람인지 의문이 든다. 임명권 행사에 대한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다.

=곽 : 정부 입장이 탈원전이므로 탈원전을 주장하는 분들이 원자력 공공기관의 임원으로 임명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비전공자 또는 전문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나 실무경험 없는 사람들이 ‘탈원전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 앉는 것은 원전 안전을 고려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정 교수 : 임명은 임명권자의 의지대로 가는 것이 맞다. 다만 그 공동체 안에서 명망을 얻고 전문성을 인정받는 사람을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분야에서든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을 그 위치에 앉힌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한 모욕이다. 신사들이 하는 짓이 아니다.

조재학 기자 (2j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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