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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압 의혹 속 4년 만에 열린 '판도라'의 상자


입력 2016.12.04 08:01 수정 2016.12.04 09:02        부수정 기자

'연가시' 박정우 감독 연출

김남길·정진영·김영애 주연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뉴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뉴

'판도라' 리뷰…박정우 감독 연출
김남길·정진영·김영애·문정희 주연


"우째 이럴 수가 있노. 우린 사람도 아니가."

원전이 폭발한 상황에서 정부는 사고 은폐에만 급급하다.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을 내팽겨친다. 사람들은 외친다. "거지 개떡 같은 나라"라고.

지난달 29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판도라'는 재난에 안일하게 대처하는 정부의 이면을 담아냈다. 영화 속 뉴스 화면에 나온 '침묵하는 정부, 혼란스러운 정부'라는 자막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간 우리가 봐왔던 현실과 묘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동남권 한 원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6.1 규모 지진으로 한별 1호기가 폭발하자 주변 지역은 아수라장이 된다. 방사능 수치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에서 원전 폭발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는 일대 혼란에 휩싸인다.

여기저기서 사망자, 부상자가 속출하고 병원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너도나도 피난길에 오르면서 항공, 선박, 도로, 철도는 마비가 된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는 초유의 재난 앞에서 우왕좌왕한다. 서로 책임을 떠넘길 뿐, 누구 하나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컨트롤파워마저 송두리째 흔들리자 대한민국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진다.

방사능 유출의 공포는 극에 달하고 2차 폭발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발전소 직원 재혁(김남길)과 그의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배우 김남길 정진영 문정희 주연의 '판도라'는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다.ⓒ뉴 배우 김남길 정진영 문정희 주연의 '판도라'는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다.ⓒ뉴

총 제작비 150억원이 든 '판도라'는 부산영화제 아시아 필름마켓에서 '부산행'을 잇는 새로운 재난 소재의 블록버스터로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제작에만 4년이 든 이 영화는 국내 최초의 원전 영화인 만큼 자료 조사에 공을 들였다. 원전 문제를 스크린에 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살인 기생충이란 독특한 소재로 450만명을 모은 '연가시'(2012)의 박정우 감독이 연출했다. 제작진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영화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4년 동안 원전과 관련된 전문 서적, 영화, 다큐멘터리 등 자료조사를 펼쳤고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원자력 발전소의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필리핀으로 건너가 관광지로 개발된 바탄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제작진은 또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과 압도적인 스케일을 구현하기 위해 전체 2400컷 중 1300컷 이상을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작업했다. 시각 효과 작업에만 1년이 걸린 이유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판도라'를 통해선 원전 사고의 공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원전이 폭발하면서 주변 지역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 보기만 해도 몸이 녹을 것 같은 원전 내부, 한순간에 초토화된 한반도의 모습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박 감독은 "'만약에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영화"라며 "상업 영화로서의 미덕도 포기할 수 없어서 사람 냄새 나는 설정을 넣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90% 정도 현실성 있게 그려냈다"고 자신한 뒤 "사실성, 현실성에 중점을 뒀다. 원전 폭발과 그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최대한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으며 과학적, 논리적인 틀 안에서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김남길 정진영 문정희 주연의 '판도라'는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다.ⓒ뉴 배우 김남길 정진영 문정희 주연의 '판도라'는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다.ⓒ뉴

이 영화는 소재와 색깔 때문에 정부 비판 영화라는 소리를 들었다. 개봉이 늦어지면서 외압 논란에 시달린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박 감독은 "마라톤을 완주한 느낌이 든다"며 "판도라'를 만든 궁극적인 목표는 안전이다. 권력자들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만든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판도라'가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답답한 현실의 민낯이 영화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책도 없이 사고가 터지면 뒤늦게 수습에 나서는 관련자들, 사고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은폐 축소하려고만 하는 모습, 하는 일 없는 대통령 등이 그렇다.

우유부단한 대통령이 대피 계획은 없느냐고 묻자 한 관계자가 "비상 대피 계획 같은 건 없다"고 보고하는 장면에선 폭소가 나오기도 한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없다. 사고에 오롯이 노출된 국민은 덜덜 떨면서 공포에 휩싸인다. "사고는 정부가 쳐놓고 수습은 국민더러 하라고?" 외치는 재혁, "이제서야 궁금하십니까. 그동안 대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라고 울분을 토하는 평섭의 모습이 가슴을 찌른다.

영화 속 무능한 대통령은 현 시국과 맞물려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박 감독은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대통령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캐릭터 설정을 한 것"이라며 "초반에는 현실적으로 봤을 법한 대통령이지만 후반에는 제 바람을 담았다. 능력이 특출하지 않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대통령이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이 아니겠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뉴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뉴

그러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걱정이 현실처럼 다가오는 게 겁이 났다. 영화와 상관없이 (시국이) 좋은 방향으로 해결됐으면 좋겠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판도라'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겠고 걱정스럽다. 각자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복잡한 심경"이라고 토로했다.

박 감독은 또 "경쟁 상대는 다른 영화가 아니라 아줌마 둘이서 하는 '시국'"이라면서 "이 영화를 4년 동안 준비했는데 '저쪽'은 40년 동안 했다더라. 우리는 150억을 들였는데 인데 '저쪽'은 몇천억이라 하고. 특히 '저쪽'은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관중 동원력도 뛰어나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시국을 비판했다.

'판도라'는 사고를 수습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라고 말한다. 희망적인 영웅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강조하는 식이다. 한국 재난영화의 단골 소재인 가족을 내세워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은 신파로 느껴질 수 있겠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워낙 원전 사고에 집중한 터라 부담스럽지 않다.

절망으로 시작한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재혁은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재앙 속에 있는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무섭다고 눈 감지 말고, 겁먹었다고 숨지 말라"고.

우리는 영화, 현실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을까. '판도라'의 상자는 오는 7일 열린다.

12월 7일 개봉. 12세 관람가. 136분.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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