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럭키'에 출연한 유해진은 "메시지가 담긴 코미디 영화라 끌렸다"고 밝혔다.ⓒ(주)쇼박스
"목욕탕 들렀다가 왔습니다."
영화 '럭키'(감독 이계벽·13일 개봉) 홍보차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취재진과 만난 유해진(46)은 편한 복장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왔다. 운명인 걸까. 그가 쓴 모자에는 영화 제목인 '럭키'가 포함된 '럭키13(Lucky 13)'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럭키' 개봉일이 13일이잖아요. 하하. 집에 있는 걸 그냥 썼는데 참 신기했죠. 흥행을 예감하는 걸까요? 저한텐 부적 같은 모자입니다."
유해진의 첫 인터뷰 자리에는 무려 15개 매체가 모였다. 여기저기서 '유해진 인기짱'이라는 얘기가 들렸다. 긴 탁자에 앉은 취재진을 본 그는 깜짝 놀란 듯 "아이고 감사합니다"라고 웃었다.
'럭키'는 일본 우치다 켄지 감독의 '열쇠 도둑의 방법'을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한 영화로 킬러 형욱(유해진)이 목욕탕 키(Key) 때문에 무명배우 재성(이준)으로 운명이 바뀌면서 펼쳐지는 반전 코미디다.
영화는 유해진의 매력으로 속을 채웠다. 유해진은 액션, 누아르, 드라마, 멜로, 코미디 등 폭넓은 연기력을 발휘했다. 영화가 그 흔한 코미디로 빠지지 않은 건 유해진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준수한 연기 덕이다. 특히 극 중 1971년생인 형욱이 1984년생 재성으로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웃음을 유발한다.
노안인 형욱이 나이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이 영화의 백미다. "형욱이 나이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농담입니다."
영화 '럭키'에서 조윤희와 멜로 호흡을 맞춘 유해진은 "내게 꼭 맞는 멜로가 있으면 도전할 생각"이라고 전했다.ⓒ(주)쇼박스
'럭키'는 유해진의 첫 원톱 주연작이다. 그는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관객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 연기는 힘들다. '럭키'는 무조건 웃기기만 하는 영화는 아니다. 액션,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가 조화롭게 버무려졌다.
유해진은 어떤 매력에 이끌려 영화에 출연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메시지가 있는 코미디 영화"라고 했다. "'하찮은 삶은 없다는 것'이죠. 예전에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을 때 선배들이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하찮은 배우는 있어도, 하찮은 배역은 없다'고. 그 얘기에 감동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짐했죠. 연극에선 작은 배역도 참 중요했거든요. '럭키'는 이런 부분을 건드립니다. 강요하듯, 억지로 눈물을 짜며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니라서 좋았습니다."
일본 원작을 봤다는 그는 "일본 영화를 한국 정서에 잘 맞게 표현하려고 고민했다"면서 "영화이지만 최대한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유해진은 지난해 '소수의견', '극비수사', '베테랑', '그놈이다' 등 총 네 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많은 작품을 한 그에게도 '럭키'는 부담이 될 듯하다. 유해진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는 첫 원톱 주연작이기 때문.
그는 "이번 영화는 특히 부담된다"며 "예전 작품에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선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이끌어야 해서 그렇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배우는 이 상황을 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느 작품이든지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작품에 임한단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주, 조연 가릴 것 없이 느껴요. 영화는 투자자, 스태프 등 많은 분의 손길이 거쳐 탄생하잖아요. 손익분기점만 넘었으면 합니다."
유해진 주연의 '럭키'는 성공률 100%, 완벽한 킬러 형욱(유해진)이 목욕탕 키(Key) 때문에 무명배우로 운명이 바뀌면서 펼쳐지는 반전 코미디다.ⓒ(주)쇼박스
유해진이 펼치는 맨몸 액션과 화려한 칼솜씨를 보는 것도 영화의 재미다. 심각한 표정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신을 표현하는 장면에선 감탄이 나온다. 유해진은 무술 연습을 따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니까 합을 맞추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현장에서 몇 번 맞춰보면 잘 되는 편이죠. 욕심을 내세워서 무술 연습을 하다 보면 다쳐요. 액션신을 찍은 후 현장에 있는 의료진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웃음)."
40대 중반인 그는 그간 항상 액션 연기를 했다고 했다. 다만 티가 안 나는 액션 연기였단다. 이번 작품에서는 액션 연기를 길게 찍었다고 배우는 웃었다.
극 중 킬러였던 형욱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무명 배우 재성의 삶을 살아간다. 형욱은 여러 작품에 나오며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애쓴다. 이를 두고 유해진은 "내 무명시절이 생각나 캐릭터를 연기하기 수월했다"고 밝혔다.
"볼펜을 입에 물고 발음 연습하는 장면, 공원에서 연습하는 장면은 제 실제 무명생활을 보는 듯했어요. 아현동 굴레방다리 근처 옥탑방에 살았었는데 영화에 나온 옥탑방과 비슷하고요. 옛날 생각 많이 났죠."
그러면서 어려웠던 시절을 술술 풀어놓기 시작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한 말솜씨에 쏙 빠져들었다.
"아현동에 살 때는 후배 집에 얹혀살았죠. 헬스장 갈 여유가 안 돼서 공원에서 뛰어다니면서 몸을 단련했어요. 다리 찢기, 윗몸 일으키기를 했고 발성 연습도 했습니다. 이후 경희대 근처에서 처음으로 독립했어요. 방수되지 않는 집이었는데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제가 배우인 줄도 모르셨죠. 당시 '무사' 찍을 때였는데 할아버지가 따님과 영화를 보시고 나서 절 알아보셨죠. 허허. 월세 밀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았는데 경희대 근처만 가면 그때 생각이 나요."
'럭키'에 출연한 유해진은 "연기는 공식이 없는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주)쇼박스
형욱은 자신을 구해준 구급대원 리나(조윤희)와 사랑에 빠진다. 이번 영화를 통해 유해진은 멜로의 꿈을 이뤘다. 그는 한 카드회사 광고에 출연해 '카드'와 사랑에 빠진 남자를 연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멜로를 자주 하지 않아서 부담감을 느껴요. 어색하게 보일까 봐 걱정했고요. 근데 카드회사 광고는 진짜 어렵더라고요. 가끔 술 마시고 그 광고를 보곤 하는데 초반에 쓸쓸한 멘트가 나오는 게 제일 마음에 듭니다."
정통 멜로 욕심은 없을까. "저한테 '꼭' 맞는 멜로라면 괜찮아요. 멜로라기보다는 드라마일 듯합니다. 오글거리지 않고 자연스러운 상황이면 어색하지 않겠죠. '이런 상황에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하고 싶어요."
후배 이준, 조윤희와의 호흡도 물었다. 이준에 대해선 "욕심이 참 많은 배우라 나한테 도움이 됐다"고 했고, 조윤희에 대해선 "애드리브가 많은 상황을 잘 받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조윤희는 언론시사회 때 "난 애드리브를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늘 정해진 대사 속에서만 연기했는데 유해진 선배를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많이 했고, 대사도 바꾸면서 연기했다. 매 촬영이 즉흥연기를 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해진은 "애드리브는 현장에서 하지만 사전에 고민하고 대사를 뱉는다"면서 "웃음만 추구하는 것보다는 상황에 딱 들어맞는 애드리브를 던지는 게 중요하다. 연기하고 돌아설 때 후회하지 않는 선에서 연기하려고 한다"고 했다.
1997년 영화 '블랙잭'으로 데뷔한 유해진은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공공의 적2'(2005), '국경의 남쪽'(2006), '타짜'(2006), '이장과 군수'(2007),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소수의견'(2015) '극비수사'(2015), '베테랑'(2015), '그놈이다'(2015) 등 주, 조연 가릴 것 없이 5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배우 유해진은 영화 '럭키'에서 킬러에서 무명 배우로 운명이 바뀌는 형욱 역을 맡았다.ⓒ(주)쇼박스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가 배우로서 지키는 소신은 '배우'라는 수식어가 민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배우 유해진'이라고 인사할 때 '쟤가 배우야?'라는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말을 들었을 때는 배우 일을 그만두는 게 낫다고.
이번 영화에서 후배들과 호흡을 맞춘 그가 선배로서 해준 조언은 있을까. 그는 "연기는 답이 없는 직업"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연기는 공식이 없어요. 후배들에게 어떤 제안을 할 때도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합니다. '그게 아니면 네가 생각했던 대로 하고', '이렇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식의 대화를 하는 편입니다."
'배우' 유해진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건 '삼시세끼-어촌 편'과 고창 편이다. 차승원과 찰떡궁합 콤비를 이루며 활약한 그는 편안한 '아재' 이미지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장항준 감독의 말을 빌려 '삼시세끼'의 인기 비결을 공개했다. "장 감독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삼시세끼'에서 편하게 까부는 것 같다고. 진짜 편한 사람들끼리 있으면 까불잖아요.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건 예능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니라 진짜 편해서였죠. 차승원 씨, 손호준 씨 다 편했죠. 주혁이는 튀지 않고 잘 따라왔고. '웃기게 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촬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시청자들도 '우리도 친구 만나면 저렇게 놀지'라는 생각으로 좋아해 주신 듯해요."
유해진은 '삼시세끼'의 인기 비결에 대해 "예능이 아닌 다큐멘터리"라며 "편한 사람들과 즐기면서 촬영해서 그런 듯하다"고 했다.ⓒ(주)쇼박스
유해진은 '삼시세끼'는 다음 기약이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어촌 편이 끝났을 때 고창 편이 이어진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단다. 그가 정의한 '삼시세끼'는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다. "제가 영화 촬영 중일 때 나영석 PD가 느닷없이 시간 되냐고 하더라고요. 어렵게 고창 편에 출연했죠. '삼시세끼'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프로그램이자, 제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 작품입니다."
예능 이미지와 배우 이미지가 겹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그런 부담감은 느낀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유해진은 과거 낯을 가리는 수줍은 성격이었다고 했다. 언론 인터뷰 때도 단답형 배우였단다. "영화 어땠느냐는 질문에 '네 좋았습니다'라는 답변이 제일 담백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말을 붙이는 건 내 감정이 희석되는 느낌이거든요."
관객들이 '럭키'를 어떻게 봤으면 좋겠냐고 묻자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의 몫"이라고 했다.
유해진에게 그의 장기인 '아재개그'를 언급했다. 유해진의 이름을 풀어놓은 '몸에 해로운 청바지'(유해진)를 얘기하자 "이제야 알았냐"며 웃었다.
인터뷰 중 여자 주인공의 줄임말인 '여주'를 언급하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여주요? 여주가 뭐죠? 여자 주인공이라고요? 하하. 여주가 그런 뜻인가요. 배우들끼리는 '여주 왔어'라고 하지 않아서...이렇게 제가 뒤처지는 건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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