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만큼 시급한건 '돈맥경화' 뚫어내기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6.05.04 07:59  수정 2016.05.04 08:05

<기고>구조조정 실탄만을 위한 한국판 양적완화는 결국 미래세대 부담

최근 한국판 양적완화를 두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찬반 논쟁이 뜨겁다. 4.13 총선이 끝난 지 불과 3주 남짓 지난 시점에서 이 논쟁은 여의도에서 또다시 불붙을 모양이다. 올 1.4분기 성장률이 0.4%에 그쳐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작 경제는 뒷전이고 또다시 싸움만 일삼을 태세이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가 어렵다, 민생을 우선시 하겠다고 하면서도 국민들에게 ‘왜, 어떻게’ 에 대한 분명한 설명 없이 단지 한국판 양적완화를 하겠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만 하였다. 야당, 언론, 금융권 등의 비판이 뒤따르자 정부는 뒤늦게 한국판 양적완화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더 낮출 수 없는 제로금리 상황에서 무제한으로 돈을 푸는 전통적 양적완화와는 다른 선별적 양적완화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은행은 이와 관련하여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에 자본금 확충이 필요하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라며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활용해 재정의 역할을 하려면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하다는 원칙론을 제시했다. 이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기업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한국은행은 여러 차례 밝혀 왔다"며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에 참여해 관계기관과 추진방안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 주길 바란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총선 당시 “미국경제는 과거 정상이 아니라고 했던 돈풀기로 경제를 살렸다. 일본과 EU가 뒤따라서 양적완화를 하고 있다. 한국도 지속적인 3% 성장을 위해 거시경제정책 대전환이 필요하다”며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새누리당이 제시한 한국판 양적완화가 이제는 보편적 목적을 가진 거시경제정책이 아닌 특정산업의 몇몇 기업 지원 구조조정 수단으로 그 목적이 전환된 듯하다.

한국판 양적완화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당초 기대와 달리 한국판 양적완화는 특정산업의 몇몇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구제금융수단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조선업, 해운업과 함께 5대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된 철강산업, 건설업, 석유화학산업 이외에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모든 산업들에 대해서도 반복적으로 편리하고 쉽게 사용하는 정책수단의 나쁜 선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일각에서는 제기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지난 정부에서부터 해당 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다가 이제야 중앙은행의 발권력 필요성까지 거론하며 뒤늦게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논하는 것에 대한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도 해당 기업의 주채무자인 국책은행의 관리 감독 소홀 문제, 해당 기업의 모럴 헤저드와 부실을 야기한 기업 내부 문제, 국책은행의 방만 경영 등을 덮어두고 구조조정 재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주장하듯이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선별적 양적완화가 꼭 필요하다면 네이밍부터 달리 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왜 필요한지,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국민적 동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수차례 구조조정 과정에서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고 이 모두가 국민 부담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구조조정의 당위성과 시급성도 인정되지만 한국판 양적완화가 그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목적이 보다 보편적이고 국민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컨대 한국판 양적완화가 처음 논의될 당시 대상 중 하나였던 가계부채의 경우 그 목적이 적어도 보편적이고 거시경제 측면에서 보다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재원...

양적완화는 90년대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붕괴한 후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0% 수준까지로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자 은행들이 보유한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동원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한 바 있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경제성장 지원을 위해 기준금리를 작년 6월 1.5%까지 내린 이래 1년여 가까이 이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 2월 말 기준 한국은행의 화폐발행잔액(말잔)은 사상 처음 9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2014년 7월 이후 1년 7개월 기간 동안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와 함께 한국은행의 발권력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도 약 20조원 가량 불어났다.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화유통속도는 금융위기가 지나간 2009년 당시의 0.76보다 6.5% 하락한 0.71에 머물렀다. 2009년 이래 지속적인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통화승수 또한 2013년 12월 20배가 무너진 이후 지난 2월 말 기준 16.9배에 머물렀다. 상황이 이러하니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정부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금융위기 여파가 휩쓸고 간 2009년을 제외하고는 6.2~26.9%에 불과하고 민간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2014년도에는 정부보다 무려 10배가량 높았다.

물론 지난 2년 간 세월화 참사와 메르스 사태와 같은 국가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 대응으로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면하고 3.3%, 2.6% 성장률을 유지한 것도 다행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살리기를 위해서는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와 적극적인 통화정책 시행으로 시중에 풀린 돈들이 원활히 경제 전체에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을 먼저 해소하는데 정책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창근

또한 기업 구조조정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한국판 양적완화는 결국 정부의 재정 원천이 중앙은행의 재원으로 충당된 것일 뿐, 결국 국가채무요 미래세대 부담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 구조조정은 구조조정의 본질적인 문제에 보다 집중하여 그 원인을 찾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해야지 마치 재원투입이 구조조정의 전부인 양, 돈이 없어 구조조정을 못한다는 식의 접근법은 지양해야 한다.

만약 근본원인은 내버려 두고 재원만 투입된다면 이는 매몰비용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고, 얼마 안가 또다시 채무변제 등을 위한 재원을 필요로 하는 한계기업의 연명수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으로 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할 당시 민간증권사를 적극 활용하여 개인투자자는 물론 민간의 다양한 여유자금을 흡수 활용한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시에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지만, 이해당사자 간에 최소한의 손실부담 원칙이 존재했다. 동시에 민간의 여유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병행되었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시중에 돈은 넘쳐나고 정책당국은 통화량을 늘리고 금리를 내리지만 이것이 소비지출과 투자 증대로 이어져 성장으로 귀결된다는 경제학의 기본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상황이 작금의 현실이다. 현재도 자금잉여인 우리 경제구조에서 기업 구조조정도 민간 주도 하에 추진해야 할 뿐 아니라, 시중의 넘쳐나는 유동성을 여기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보다 타당할 지도 모른다.

글/이창근 덕성여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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