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주판알을 엎어라" 정주영, 욕먹는 기업인들에 일침

박영국 기자

입력 2015.11.19 08:50  수정 2015.11.19 09:03

<탄생 100주년 기획-아산 정주영에게 배운다(중)>

건전한 기업가정신, 사업보국주의, 기업인 사회 책임 강조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7년 7월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개인보유 현대건설 주식 50%를 출연해 아산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아산정주영닷컴

“경영인은 건전한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기업은 이익이 우선이긴 하지만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는 정신자세가 필요합니다. 즉 최고경영자가 자신이 하는 일이 국가에 도움을 주고 국가발전 성취에 이바지하는 것인가를 올바로 생각한다면 설혹 하는 일에 있어 일시적인 패배가 있을지라도 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1985년 현대그룹 사장단 세미나에서)

“관리든 기업인이든 부정한 수입을 목적으로 하면 필연적으로 일은 비능률에 빠져들고 제품의 단가는 높아져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현대를 가장 큰 회사보다는 가장 깨끗한 회사로 만들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깨끗한 회사를 만들면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공신력을 가지고 가장 효율 있는 회사로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1983년 현대그룹 간부 특강에서)

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30여년 전 현대그룹 사장단과 간부들에게 건넨 당부들이다.

당시 정 명예회장이 언급한 ‘건전한 기업가정신’은 30여년 뒤인 지금의 경영인들에게 더욱 절실한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반기업 정서와 반재벌 정서가 극에 달해 있고 기업이 비리와 특혜의 온상으로 치부되는 상황이 근본적으로는 일부 기업인들의 잘못된 처신에서 비롯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 명예회장의 재계 후배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9월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인들 스스로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데 상당히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국민과 사회가 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법을 잘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법적 기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규범과 관행을 세우고 행동에서 솔선수범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높은 자리에 군림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국민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생을 바친 정주영 명예회장의 행적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기업인의 좋은 모범 사례를 보여준다.

"주판알을 엎고 사업을 해야 할 때도 있다"…'사업보국' 일념

사실 기업에 대한 특혜는 지금보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직에 있던 산업근대화 시절이 더 심했을 수 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이 한국 산업근대화를 이끈 거목이자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국가가 그에게 해준 것보다 그가 국가에게 해준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손익을 염두에 두지 않고 고속도로를 깔고, 댐을 지었으며, 손쉬운 돈벌이인 소비재는 제쳐두고 각종 국가기간산업에 앞장서 진출했다.

한국경제사에 있어서 정 명예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전후복구사업에서 공업입국, 중화학공업화, 첨단산업화로 이어지는 우리 경제사의 주요 물줄기를 민간부문에서 이끌어 온 주역을 담당한 게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1년 태완선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과 함께 영동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아산정주영닷컴

한국경제가 6.25동란으로 피폐된 국토를 재건하려 할 때 정 명예회장은 선두에 서서 전후복구공사를 담당했으며,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국가 근대화의 사회간접시설은 거의 정 명예회장에 의해 주도됐다. 소양강다목적댐(1967년), 경부고속도로(1970년), 울산조선소(1973년), 원자력발전소(1970년) 등 국내 굴지의 대공사는 한국경제사 측면에서 보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미증유의 사업이었다.

특히 정 명예회장은 수익성 여부에 상관없이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대안을 찾아내 이를 관철시키려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특히 소양강 다목적댐공사(1967년)에서는 수많은 반대와 모욕 속에서도 발주처인 정부의 확정 설계안인 콘크리트댐 안(案)을 사력댐 안(案)으로 바꿀 것을 주장, 이를 관철해 국가 예산을 30% 절약시키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의 이같은 자세는 기업가가 단순한 이윤추구를 떠나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주판알’을 엎고 사업을 해야 할 때도 있다는 사업보국주의(事業報國主義) 일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울러 당장에는 위기와 시련에 직면할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다져진 기술과 경험은 자신과 국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그의 기업가정신의 소산이기도 하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66년 태국 티파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아산정주영닷컴

정 명예회장은 한국경제가 자립국가 확립을 목표로 수출에 눈을 돌릴 때도 선봉장 역할을 했다. 그는 국내에서 쌓아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 국내 기업 최초로 태국 고속도로 사업 등 해외 건설시장 개척에 나섰다.

당시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해외시장 개척은 새로운 돌파구였지만 기술과 경험, 자본, 장비 등 모든 부분이 부족한 까닭에 그 누구도 해외시장 개척은 상상조차 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정 명예회장은 과감하게 해외 건설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여기서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1970년대 중동 건설시장에 진출, 20세기 최대의 역사라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수출주도형 경제기반을 구축했다.

특히 오일쇼크로 한국경제가 휘청거릴 때 정주영은 중동에서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국내의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상하는 데 있어서도 항상 ‘조국’이 우선이었다. 그는 평소 산업을 ‘나라를 부(富)하게 만드는 산업’과 ‘강(强)하게 만드는 산업’으로 나누어 파악, 한국의 산업이 부(富)만을 창출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일찍부터 조선, 자동차, 중공업, 철강 등에 집중 투자해 국가기간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1980년대 한국경제가 공업화를 서두를 때 정주영은 순수 우리 기술의 자동차 생산을 꿈꿨고, 한국경제가 중화학공업에 나섰을 때 ‘조선입국’을 선언하며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또한, 1980년대 말 1990년 초, 산업의 구조조정기에는 첨단산업에 과감히 투자해 미래지향적 산업분야로의 기업 체질 개선을 도모했다. 그 결과 현대는 반도체, LNG선, 자기부상열차 등 미래지향적인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해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게 됐다.

'국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 꿈꾸며 사재 털어 아산재단 설립

정 명예회장은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서도 후대 기업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는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통해 “기업은 규모가 작을 때는 개인의 것이지만 규모가 커지면 종업원 공동의 것이요, 나아가 국가·사회의 것”이라고 밝히고 “내 경우, 옛날 쌀가게를 했을 무렵까지는 그것이 나 개인의 재산이었지만, 그 후에는 국가·사회로부터 기업을 수탁해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라며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건물에 부착된 사내표어.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사업보국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정 명예회장의 어록을 새겨놓았다.ⓒ현대중공업그룹

이같은 정 명예회장의 신념은 지금까지도 기업인의 사회공헌의 표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설립으로 현실화됐다.

그는 ‘국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고자 30년간 모든 정성을 다해 키워온 현대건설 주식의 절반을 과감히 내놓으며 1977년 7월 사회복지재단인 아산재단을 설립했다.

정 명예회장의 거액 기부는 당시 부의 추구를 우선시하던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70년대 후반 당시 장학이나 사회복지를 위한 재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산재단과 같이 사회복지사업을 표방한, 대규모 재단의 설립은 초유의 일이었다.

그는 재단 설립 7년 뒤인 1984년 부산대학교 특강에서 “우리나라에는 주식을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주식을 살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건설 주식의 50%를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에 내놓았다”고 기부 배경을 회고했다.

정 명예회장은 아산재단을 통해 전국 곳곳의 낙후된 지역에 병원을 지어 무료 의료혜택을 베풀었고,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대학의 학술연구를 지원해 산·학·연 협동체제를 구축하는 등 국민복리(國民福利)를 실천했다.

정 명예회장이 대한민국에 남긴 유산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는 아직도 그의 ‘사업보국’ 정신을 기리는 글귀가 남아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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