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했을 때 그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을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반대로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매몰비용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매몰비용은 이미 의사결정이 완료된 '엎질러진 물'과 같다. 100만원으로 노트북을 사는 대신 여행을 갔다면, 사지 못한 노트북은 기회비용이고 다녀온 여행은 매몰비용이 된다.
매몰비용은 때로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한다. 이른바 '매몰비용의 함정'이다. 쉬운 예로 구입한 주식의 주가가 하향세를 보이지만 원금 생각에 매도하지 못한다면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먼 미래에 원금이 회복될 수 있지만, 반대로 지금 매도하는 것보다 더 큰 손해를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지금 금호산업 채권단 역시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져있는 듯하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9일 금호산업 인수가로 채권단에 7047억원을 제시했다. 이전 제시가 6503억원보다 544억원 더 높게 책정한 액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금액을 박삼구 회장의 '용단'이라고 표현했다. 용단의 사전적 뜻은 용기 있게 내린 결단이다.
하지만 채권단 안팎에선 이 금액을 용단이라고 정의할 만큼 매력적인 금액으로 보지 않는다. 채권단이 박 회장에게 제시했던 7935억원과 888억원의 차이가 있다. 투자 원금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윤정선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
사는 사람 입장에선 싸게 사고, 파는 사람 입장에선 비싸게 팔고 싶은 건 당연하다. 더구나 손해를 봤다면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본전을 찾고 싶을 것이다. 용단이라는 표현에 채권단이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기도 하다.
다만 채권단과 박 회장의 밀고당기기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 양측 모두 금호산업 경영정상화를 위해 연내 매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신호의 하나로 채권단은 박 회장 측에 재협상을 요구했다. 박 회장 측도 이전보다 8.4% 더 증액한 금액을 써내며 채권단 요구에 어느 정도 부응했다. 채권단 입장에선 아직 아쉬운 금액이지만, 박 회장의 주머니 사정을 따져봤을 때 쥐어짜 낸 금액이라는 데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이미 업계에선 박 회장이 그만한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선 이미 엎질러진 매몰비용이 아닌 기회비용을 봐야 한다. 돈이 아깝다고 억지로 음식을 다 먹으려다 탈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최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등의 실적을 봤을 때 채권단에게 기회비용은 매각을 늦추는 게 아닌 금호산업을 과감히 터는 것이다. 금호산업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미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시도와 무산, 대규모 부실 발생 등의 과정을 통해 적절한 매각 시기를 놓친 결과가 얼마나 뼈아픈지 경험한 바 있다.
이제 공은 박 회장에서 채권단에 넘어갔다.
높은 가격만 고집하다가 결국 때를 놓쳐 기업 가치만 떨어뜨릴 수 있다.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채권자뿐만 아니라 현재의, 미래의 금호인(人)도 피해를 떠안게 된다.
오는 11일 금호산업 채권단 실무책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박 회장이 내놓은 안을 기초로 매각 가격을 논의한다. 채권단이 이 자리에서 과거에 매몰되기보다 금호그룹의 미래 기회를 내다봤으면 한다. 가까운 미래에 채권단 결정이 최선의 투자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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