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영화 ‘암살’ 속 안옥윤은 어떻게 탄생했나
최동훈 감독 "처음 떠올린 인물, 전지현이 완성"
중국 겨냥 아닌, 역사 속 중요 인물 재조명 의미
영화 '암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우선 해당 영화사는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를 주연 배우로 기록하고 있다.
우선 영화에서의 비중은 이 세 명의 주연 배우가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결국 지분은 세 배우가 모두 비슷하다는 의미인데 우선 역할의 특성상 이정재는 주인공보다는 악역으로 분류해야 맞을 것 같다.
따라서 남녀 주인공은 전지현과 하정우로 보는 게 맞고 이정재는 주연급 악역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를 직접 관람한 이들이라면 아무래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중심은 전지현이 맡은 역할인 안옥윤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맹활약한 독립군 소속의 여성 저격수 안옥윤, 이 매력적인 캐릭터 하나만 갖고도 전지현은 단연 주인공이다. 그리고 전지현은 이 영화에서 짧지만 또 다른 배역을 소화하고 있기도 하다. 전지현을 신비주의에 몰입한 CF 스타라고 비판적인 기조의 글을 꾸준히 써온 기자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전지현은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 '도둑들'에서 톡톡 튀는 연기로 부활의 나래짓을 시작한 전지현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거쳐 '암살'을 통해 비로소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라는 타이틀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성장했다. 데뷔와 동시에 톱스타가 된 뒤 CF 스타로서는 늘 최고의 자리를 지켰지만 배우로선 긴 터널을 거친 전지현은 이제야 비로소 최고의 여배우로 거듭났다.
사실 전지현이 맡은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는 그만큼 환상적이었다. ‘독립군의 여성 저격수’라는 흔치 않은 설정은 영화가 개봉한 뒤 최종림 작가의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와의 표절 시비가 빚어질 만큼 환상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희소성 있으면서 환상적인 캐릭터 ‘안옥윤’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영화 흥행이라는 측면만 놓고 볼 때 전지현이라는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캐릭터로 보인다. 영화 '암살'은 한국 극장가에서도 1000만 관객 신화를 기록하며 흥행 대박이 났지만 중국 시장에서 더 기대가 큰 작품이다.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9월에 중국 개봉을 앞둔 영화 '암살'은 그 소재와 스토리만 놓고 봐도 중국 시장에서의 대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마카오와 홍콩을 소재로 한 데다 중국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도둑들'을 통해 중화권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최동훈 감독의 영화인 데다 영화 '암살' 자체가 중국 시장을 겨냥한 듯 다소 중국 영화의 흐름이나 색채와 유사한 구석이 많다.
중국 시장 노림수의 핵심은 단연 전지현이다. 이정재와 하정우도 중화권에서 잘 알려진 스타 배우지만 전지현은 그 수준을 뛰어 넘는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중국 흥행 대박 이후 중화권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전지현은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중화권 최고의 한류 스타로 우뚝 섰다.
중국과 한국 등을 배경으로 항일 독립 운동을 다룬 작품이라 할지라도 관객의 발길을 이끌 강력한 원동력이 필요한데 '암살'에선 전지현이라는 배우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최동훈 감독이 애초부터 전지현을 활용하기 위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로 독립군 여성 저격수 안옥윤을 생각한 것일까. 최동훈 감독의 얘길 들어보면 그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 감독은 지난 2006년 '타짜' 개봉 당시 영화 '암살'의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한 것은 지난 2012년 영화 '도둑들'을 완성한 뒤였다.
'암살'의 이야기를 구상했다는 얘긴 여성 저격수 안옥윤의 캐릭터 역시 그 즈음에 어느 정도 설정이 됐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굳은 신념을 지닌 독립군 여성 저격수’라는 기본 설정 차원의 캐릭터를 완성한 것은 바로 전지현이다. 최 감독 역시 “'암살'을 시작하며 처음 떠올린 인물의 이미지가 비로소 전지현으로 완성됐다”라며 “그녀 역시 캐릭터에 진실되게 접근했고, 스스로 안옥윤을 깊이 간직했다”고 전지현을 극찬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 '도둑들'이 큰 역할을 했다. 최 감독이 전지현을 만나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영화가 바로 '도둑들'이기 때문이다. '도둑들'은 배우로서 오랜 침체기를 겪던 전지현에게 확실한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이다.
물론 스타급 배우가 즐비하게 나오는 영화지만 “전지현만 눈에 들어왔다”고 얘기하는 영화관계자들이 많을 만큼 전지현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었고 전지현의 연기가 캐릭터에 제대로 녹아들었다. 이렇게 '도둑들'을 촬영하며 전지현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한 최 감독은 미리 머릿속에 구상 중이던 ‘굳은 신념을 지닌 독립군 여성 저격수 안옥윤’을 전지현이라는 배우를 통해 실제 영화 속 캐릭터로 완성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전지현이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 시장에서 다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고 이로 인해 '암살'은 엄청난 흥행 원동력까지 갖추게 된 셈이다.
이렇게 매력적인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는 워낙 희소성이 있어 표절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하다.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를 만나기 전까지 한국인들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 정도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영화를 통해 접한 ‘독립군 여성 저격수’라는 설정 역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여기라고 생각했는 지도 모른다.
영화 '암살'의 가장 큰 순기능은 실제로 우리의 역사 속에 안옥윤 같은 훌륭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국민에게 알려준 것이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금 여성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분들은 248명 정도”라고 밝혔다. 그리고 “독립활동을 하셨던 부분에 대해서 자료가 일부 수집되어서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확인되고 있는 분들이 1931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영화 '암살'을 통해 1931명 모두가 재조명될 순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많은 여성이 독립 운동을 위해 헌신했다는 역사가 재인신된 것이다.
특히 재조명되는 이들도 몇몇 있다. 대표족인 분이 바로 남자현(1872∼1933)이다. 실제로 그는 일제 고위관료 암살 작전에 투입됐으며 지난 1933년 일본 장교인 부토 노부요시 암살 작전에 투입됐다가 일제에 체포됐다. 이화림이라는 여성독립운동가도 저격수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봊창 의사, 윤봉길 의사와 함께 작전에 투입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결국 영화 '암살' 속 안옥윤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은 중국 시장을 노리는 마케팅 전략도, 표절도 아닌 우리의 역사였다. 그들의 헌신적인 삶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독립이 가능했으며 '암살'과 같은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분들의 고귀한 헌신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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