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타자' 브라이스 하퍼 시대…드디어 열리나?

데일리안 스포츠 = 최영조 객원기자

입력 2015.05.13 08:02  수정 2015.05.14 07:30

3경기 6개 홈런..다저스 최희섭 이후 첫 기록

2010 전체 1라운드픽 출신 걸맞은 최근 맹활약

하퍼는 현재(12일 기준) NL에서 홈런 단독 1위(11개) 타점(29개)과 볼넷(28개)에선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 데일리안 최영조

MLB '천재타자' 브라이스 하퍼(22·워싱턴 내셔널스)가 연일 뜨거운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하퍼는 지난 7일(한국시각)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홈경기에서 커리어 첫 1경기 3홈런을 기록하더니 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서도 2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절정의 타격감을 뽐냈다. 10일에는 9회말 끝내기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려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단 3경기에서 무려 6개의 홈런포를 가동했다. 이는 지난 2005년 최희섭(당시 LA다저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처음 나온 기록.

하퍼는 입단 전부터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은 입단 당시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2013~2014시즌 하퍼가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한 것도 이런 부진의 부분적인 이유다. 하지만 최근 활약으로 마침내 하퍼의 잠재력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며 하퍼는 다시 메이저리그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하퍼는 현재(12일 기준) NL에서 홈런 단독 1위(11개) 타점(29개)과 볼넷(28개)에선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물론 아직 시즌초반이라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부상 없이 건강하다면 하퍼의 2015시즌은 커리어 최고의 시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

하퍼는 이미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고교시절부터 가는 곳마다 사인요청이 끊이지 않는, 웬만한 프로선수의 인기를 능가하는 스타플레이어였다.

2009년 6월 미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는 16세의 고교 2년생 하퍼가 장식했다. 야구의 르브론 제임스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당시 인터뷰에서 하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2009년 베이스볼 아메리카 '올해의 고교선수상'도 그의 차지였다. 우투좌타로 포수였던 하퍼에게 고교무대는 너무도 비좁았다.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바로 한국의 검정고시와도 같은 GED(고졸 학력 인정서)를 획득, 2년제인 네바다 주립대(College of Southern Nevada)로 진학했다. 원래 2011년 드래프트에 참가 자격이 있었던 하퍼가 1년을 앞당겨 2010년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그의 대학이 속한 리그는 나무배트를 사용했는데 이는 메이저리그를 준비하는 하퍼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0.443-0.526-.0987 31홈런의 성적으로 대학 무대도 평정했다. 이에 2010년 ‘뉴욕 타임즈’는 하퍼에게 미키 맨틀 이후 최고의 타자 유망주라는 찬사를 보내기까지 했다. 하퍼는 2010년 팀을 주니어 칼리지 월드시리즈로 팀을 이끌었고 골든스파이크상까지 따내며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인정받았다.

2010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첫 번째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워싱턴 내셔널스는 예상대로 전체 1순위로 하퍼를 지명했다. 2009년 전체 1픽으로 괴물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를 지명한 데 이어 1년 뒤 천재타자 하퍼까지 영입한 것.

워싱턴은 하퍼의 미래를 포수가 아닌 외야수로 결정했다. 당시 스캇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둔 하퍼는 무려 99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뉴욕 양키스와 미키 맨틀을 좋아했던 하퍼는 그렇게 워싱턴 유니폼을 입게 됐다. 맨틀의 파워풀한 스윙을 좋아했던 하퍼는 등번호 34번을 달았는데 바로 3+4=7(맨틀의 등번호)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19세 메이저리그 데뷔

유망주는 유망주일 뿐이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더욱 그렇다. 야구에서는 아무리 촉망 받는 유망주라도 보통 마이너리그 시스템을 거치며 기량을 갈고 닦은 후 메이저리그에 입성한다.

하지만 하퍼에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2012년 4월 29일 다저스타디움서 열린 LA 다저스와의 원정경기에 19세의 하퍼는 7번타자 겸 좌익수로 데뷔전을 치렀다(참고로 로빈 욘트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18세, 켄 그리피 주니어는 19세에 메이저리그 데뷔).

예상치 못한 빅리그 신고식도 치렀다. 5월 7일 필라델피아의 투수 콜 해멀스는 고의로 하퍼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이후 3루까지 진루한 하퍼는 보란듯이 홈스틸에 성공, 해멀스의 빈볼에 시위했다. 하퍼는 메이저리그에 무난히 적응하며 타율 0.270-22홈런-59타점-18도루의 시즌 성적으로 NL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2013시즌 출발은 더 좋았다. 개막전 2홈런 포함 4월에만 9개의 홈런포를 가동하며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5월 다저스와의 경기 중 수비를 하다가 다저스타디움 우측 펜스에 충돌해 왼쪽 무릎 부상을 입었다.

부상에도 출전을 강행하다가 결국 부상자명단에 등재, 6월을 통째로 날렸다. 이후 다시 복귀한 하퍼의 방망이는 차갑게 식었다. 결국 하퍼는 118경기에 출장해 0.274-20홈런-58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부상 이후 페이스가 눈에 띄게 떨어진 점이 아쉬웠다.

2014시즌을 앞두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시즌 프리뷰에서 하퍼를 NL MVP로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퍼는 4월말 3루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가 또 다시 왼쪽 엄지를 다쳤다. 초반 결장으로 시즌 100경기 출장에 그쳤고 타율 0.273-13홈런-32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그리고 맞이한 2015시즌. 하퍼는 좌타자 아담 라로쉬가 떠난 워싱턴의 중심타자로 완전히 자리잡으며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꽃피우고 있다.

타고난 재능+ 각고의 노력

전문가들은 하퍼의 재능은 타고났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엄청난 배트 스피드로 공을 쪼갤듯한 그의 풀 스윙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그를 지도했던 데이비 존슨 전 워싱턴 감독은 이런 하퍼에 대해 파워를 겸비한 피트 로즈로 비유하기도 했다. 로즈와 마찬가지로 하퍼도 수비에서나 주루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를 펼친다.

하지만 하퍼는 재능만 믿는 '게으른 천재'는 아니다. 엄청난 노력파이기도 하다. 철강 관련 일을 한 아버지(론 하퍼)를 통해 어려서부터 땀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재능에만 의존하지 않는 성실한 자세야말로 스카우터들이 그의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게 보는 이유다. 한편 아버지는 어린 시절 하퍼의 핸드아이 코디네이션(눈과 손의 동작을 일치시키는 조정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아들에게 야구공 대신 해바라기 씨와 병 뚜껑을 던져주기도 했다.

하퍼는 2014시즌 땅볼을 치고 열심히 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체된 적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최선을 다하는 선수라는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 또 그는 매번 인터뷰에서 "팀 우승이 목표다", "이기기 위해서 뛴다"라는 뉘앙스의 말만 되풀이할 정도로 무서운 승리욕을 지녔다.

이미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된 트라웃과 이제 포텐셜이 터지기 시작한 하퍼(사진). ⓒ 데일리안 최영조

트라웃 vs 하퍼

마이크 트라웃(1991년 8월생)과 하퍼(1992년 10월생)는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녀 데뷔 전부터 줄곧 비교대상이 됐다. 입단 당시에는 하퍼가 더 큰 관심을 모았지만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둔 유망주시절에는 NL에 하퍼가 있다면 AL엔 트라웃이 있다고 할 정도로 라이벌 아닌 라이벌이 됐다. 이렇게 줄곧 비교대상이었던 둘은 2012시즌 각각 NL과 AL에서 신인상을 따내며 나란히 리그 적응을 마쳤다.

트라웃은 스트라스버그가 1픽으로 드래프트된 2009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전체 25순위로 LA 에인절스에 입단했다. 1라운드에 지명됐기에 최고의 유망주임에는 틀림없었지만 하퍼가 받은 스포트라이트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메이저리그에 데뷔 이후 현재까지 모습으로만 보면 하퍼는 트라웃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퍼가 기대만큼 보여주지 못한 것도 있지만 트라웃의 기량은 정말 메이저리그 최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에 둘은 급이 다른 선수였다.

트라웃은 타격은 물론 눈부신 수비와 발군의 주루능력도 선보였다. 이어 트라웃은 2013시즌에도 MVP 2위에 올랐고 마침내 2014시즌엔 AL MVP에 선정,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타자 반열에 올라섰다.

선수마다 차이가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타자는 보통 26~29세에 전성기를 맞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퍼의 이름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이던 2009년 이후다. 하퍼란 이름을 오래 전부터 들어왔지만 그는 아직도 고작 22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다. 이 나이의 많은 선수들은 여전히 마이너리그에서 뛴다. 게다가 하퍼는 아직도 메이저리그에서 자신보다 어린 투수를 상대한 경험도 없다.

2015시즌 전 빅리그 입성 여부로 화제를 모았던 시카고 컵스의 슬러거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하퍼와 같은 1992년생이지만 현재 23세(1992년 1월생)다. 물론 브라이언트는 하퍼와 같은 2010년 드래프트에서 토론토의 18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샌디에이고 대학에 진학, 이후 201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컵스에 입단했다.

어쨌든 현재 최고 유망주로 평가 받는 브라이언트는 이제 막 데뷔했지만 하퍼는 3년 전에 이미 최고의 신인상을 받았다. 이를 보면 하퍼가 얼마나 대단한 유망주였는지 알 수 있다.

이미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된 트라웃과 이제 포텐셜이 터지기 시작한 하퍼. 현재 트라웃이 분명히 앞서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하퍼의 지금과 같은 활약이 계속 이어진다면 1살 터울인 그들의 진짜 경쟁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최영조 기자 (choiyj214@naver.com)
기사 모아 보기 >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