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징비록, 백서 하나로는 부족하다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입력 2015.04.10 14:19  수정 2015.04.10 14:25

대한축구협회, 2014 브라질월드컵 자성 담은 백서 펴내

대표팀이 올바르지 못한 과정으로 가고 있을 때도 합리적인 비판과 쓴소리는 외면한 채 '월드컵 특수'만 노렸던 축구계 일부 인사들이야말로 진정성 있는 반성이 필요하다. ⓒ 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가 9일 '2014 브라질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출전 백서'를 펴냈다.

협회가 최초로 발행한 월드컵 참가 평가서로 한국축구의 흑역사로 남은 브라질월드컵에 대한 자기 반성을 담은 일종의 축구판 '징비록'이다. 대표팀이 왜 브라질에서 그토록 처참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담겨있다.

백서에서는 주로 홍명보호의 전술적인 유연성이 크게 떨어졌던 점을 실패의 주 원인으로 꼽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러시아-알제리-벨기에와 차례로 조별리그를 치르면서 판에 박힌 4-2-3-1 전술을 고집했다.

상대팀에 대한 맞춤형 전술이나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다양한 대응 매뉴얼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전방 공격진에 부진한 박주영(FC서울)을 제외한 플랜 B도 전무했다.

선수단 관리 실패와 베이스캠프 선정, 기술위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대표팀은 브라질월드컵에서 상대팀보다 활동량이 크게 떨어졌다.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들의 경기 체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평가전의 활용도도 떨어졌다. 현지 기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구아수 베이스캠프 선정은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 악재로 작용했다.

한국축구가 자기 반성의 의지를 담아 백서를 출간한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월드컵 백서의 내용에 크게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월드컵 전후로 많은 미디어를 통해 다뤄진 내용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왜'라는 문제의식이다. 왜 기술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는지, 왜 대표팀의 전술이 그토록 단조로웠는지 살펴봐야 한다.

월드컵 백서가 담지못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왜 한국축구는 이런 문제들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는가 하는 고민이다.

조광래-최강희-홍명보호로 이어지는 잦은 대표팀 감독교체로 인한 난맥상, 홍명보의 '의리축구'와 박주영의 '황제 훈련' 등으로 요약되는 대표팀의 원칙 붕괴와 기강 문란은 이미 월드컵 준비 과정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대표팀이 올바르지 못한 과정으로 가고 있을 때도 합리적인 비판과 쓴소리는 외면한 채 '월드컵 특수'만 노렸던 축구계 일부 인사들이야말로 진정성 있는 반성이 필요하다.

잘못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과거의 실수를 쉽게 잊어버리고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브라질월드컵의 상처가 남긴 교훈이 너무 쉽게 잊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 권의 백서 출간으로 브라질월드컵 상처가 지나간 역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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