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 프로야구가 역대 최고 수준의 타고투저 시즌을 보내면서 감독들의 존재감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현재 5점대 초중반의 리그 평균자책점을 유지 중인 올 시즌 프로야구는 역대 최고였던 1999년(4.98)을 사실상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득점이 많이 터지면 경기를 관람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다. 올 시즌과 같이 10점대를 우습게 넘기는 경기가 속출한다면 경기 시간이 길어지고 긴장감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고충을 겪는 이들은 역시나 감독들이다. 팀 평균자책점 최하위인 한화(6.32)를 비롯해 5점대를 넘어가는 팀이 무려 6개 팀에 이르는 상황이다. 선발이 조기에 무너지고 뒤이어 등판하는 구원투수들도 몰매를 맞는 그림은 올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내보낼 투수가 없게 되면서 감독들의 존재감도 그만큼 위협받고 있다.
2000년대 말까지만 해도 프로야구는 감독들의 전성시대였다. 왕조의 기치를 내걸었던 김성근 SK 전 감독은 ‘감독 야구’의 대명사로 손꼽혔고, 제자인 김경문 두산 전 감독, 조범현 KIA 전 감독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선동열 삼성 전 감독은 ‘지키는 야구’를 표방했고, ‘두려움 없는 야구’의 로이스터 롯데 전 감독도 확실한 자기 색깔을 내며 사직구장을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 만들었다. ‘믿음’으로 대표되던 김인식 한화 전 감독 역시 최하위를 전전했지만 뚜렷한 색채를 지닌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감독 교체시기를 맞았던 대부분의 팀들은 각자의 개성을 잃은 채 모호한 팀 컬러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타고투저 시즌을 맞아 더욱 부각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령탑이 선수 시절 투타 최고로 불렸던 이만수 SK 감독과 선동열 KIA 감독이다.
이만수 감독은 2011년 SK 지휘봉을 정식으로 잡은 뒤 화끈한 메이저리그식 야구를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의도와 달리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기대했던 SK의 공격력은 이만수 감독의 계약 마지막 해인 올 시즌까지 끝내 폭발하지 못하는 모습이며, 팀 성적 역시 추락을 거듭해 왕조의 깃발을 내린지 오래다.
KIA 팬들 역시 선동열 감독에게 건 기대가 상당했다. 일단 삼성 시절 명 투수 조련사로 이름을 떨친 데다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무엇보다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라 명가 재건의 적임자가 될 것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뚜렷한 장점을 기르지 못한 선동열의 KIA는 아직까지 가을 야구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있다.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명장으로 불리는 김응용 한화 감독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무리한 투수운용 등 선수기용과 관련해 현대 야구에 뒤처진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한화의 가장 큰 문제인 기본기 다지기에도 소홀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한화는 언젠가부터 1승에 감격하는 팀이 돼버리고 말았다.
김시진 감독도 롯데 특유의 색깔을 지워버렸다는 비판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팀 성적 추락과 함께 내부 결속을 다지지 못했다는 것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이는 팀의 수장인 김시진 감독에 대한 책임론으로 불거지고 있다.
심지어 4년 연속 통합 우승에 도전하는 삼성 류중일 감독마저 색깔 없는 감독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강력한 불펜과 젊고 재능 있는 타자들은 전임 감독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것이 호사가들의 주장이다. 물론 류중일 감독은 삼성의 수비력을 한 단계 발전시켰고, 이는 사자군단이 독주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무채색 감독들에 대한 비판은 타고투저인 올 시즌 더욱 심화된 모습이다. 타자들의 방망이가 연일 터지다 보니 별다른 작전 없이도 점수를 쉽게 뽑을 수 있다. 무너진 마운드 역시 특정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추세라고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게다가 수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서 실책 또한 그만큼 늘어나게 됐고, 이는 야구의 기본을 다지지 않았다는 모습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종료되는 감독들이 다수 있다. 그러면서 확실한 자기 색깔을 냈던 김성근 감독이 꾸준히 하마평에 오르는가 하면, 10구단 kt(조범현)의 합류를 기다리는 팬들이 적지 않다. 무색무취의 사령탑보다는 개성이 뚜렷한 지도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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