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오랑캐’가 이 땅을 침략했다. 침략자에 대한 대원군의 국방 의지는 확고했다. 척화비만 세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 자료를 참고해서 ‘수뢰포’를 제작하도록 했다. 물 속에서 적의 함선을 공격, 침몰시킬 수 있는 훌륭한 무기였다. 수뢰포가 완성되었다. 한강에서 시험발사를 했다. 임금과 고관은 물론 백성도 몰려와 구경했다. 수뢰포가 발사되자 강물이 열 길이나 치솟았다. 대원군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기껏해야 조그만 배나 부술 수 있을 정도였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대원군은 미국 군함을 본떠서 철갑함을 만들도록 했다. 어렵게 만들었으나 숯을 때서 내뿜도록 한 증기의 힘으로는 배를 움직일 수 없었다. 해체해서 다시 만들어야 했다.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무기고에 보관해왔던 구리와 쇠도 바닥이 났다. 어쨌든 배가 다시 완성되었다. 대원군은 진수식을 직접 참관했다. 백성도 많이 모였다. 하지만 배는 1분에 겨우 열 발짝을 움직일 정도로 속도가 느렸다. 실패작이었다. 구경나온 백성이 웃었지만 대원군은 실망하지 않았다. 배를 다시 해체했다. 대포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대원군의 치적은 국방력 강화에 그치지 않았다. 경복궁 중건사업도 진두지휘했다. 왕실의 권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기와집을 철거하면 한 간에 10전, 초가집은 5전, 가건물은 2전씩 지급했다. 그러자 일꾼들이 모여들었다. 3만6,000명이나 되었다.
호기 있게 시작했지만 공사비가 모자랐다. 원납전을 발행했다. 10만 냥을 바치면 군수자리를 내주었다. 매관매직으로 공사비를 충당했다. 그래도 모자랐다. 당백전을 발행했다. 서울을 드나드는 백성에게 문세(門稅)도 받았다. 반발이 심해졌다. 동소문에 한해서는 문세를 면제해주었다. 이런 식으로 공사를 강행했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었다. 궁궐 공사는 무리였다. 대원군의 지지도는 뚝 떨어졌다. 7년에 걸친 공사가 끝나면서 ‘대로론(大老論)’이 대두되었다. 대원군의 덕을 기려 큰 어른으로 모시자는 여론이었다. 명분은 그럴 듯했다. 실제로는 물러나라는 여론이었다. 대원군은 결국 밀려났다. 조선도 망했다.
광해군이 ‘인조 반정’으로 물러났을 때 인목대비는 이렇게 밝혔다.
“멋대로 궁궐 건축에만 뜻을 두어 민가 1,000여 호를 허물고 궁궐을 지어서 누대 정사가 한없이 사치스럽고 도성 가운데에는 관청이 죽 늘어섰습니다. 공사의 번거로운 일이 10년이 넘도록 그치지 않아 국가의 용도가 텅 비어 있었고 지출할 것을 대지 못해서 세금의 명목을 세워 거두어들이는 것이 대중이 없었습니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말, 신하들이 충렬왕에게 상소했다.
“궁궐 공사가 벌써 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서 댈 능력이 없는 관리들은 직접 공사에 나가 일하는 실정입니다. 농사에도 차질을 주고 있습니다. 중지했다가 농한기에 다시 시작하도록 하십시오.”
임금이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며칠 후 다시 상소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지나친 사치를 억제하자는 상소였다.
원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산성(山城) 하나라도 더 쌓아야 할 실정이었다. 왜구의 행패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도 임금은 궁궐 공사를 벌였다. 공주를 데리고 사냥을 나가는데 동원된 말이 1,500필이나 되었다. 국방력을 키울 능력을 스스로 까먹고 있었다. 고려는 국력이 약해지고 말았다.
국방부가 내년도 국방예산을 21조4752억 원이나 요구했다. 올해보다 13.4%나 증가한 금액이다. 국민총생산(GDP)에 대한 부담률도 0.1%포인트 높아진 수준이다. 주한 미군 감축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자주국방에 필요한 돈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국방을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새 행정수도의 후보지가 마침내 발표되었다. 정부 기구들이 속속 이전하게 된다. 이전비용이 엄청날 것이라는 우려는 오래 전부터 나왔다. 국방력을 강화해야 할 시점에서 이전비용까지 지출하게 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더니 ‘대원군 시대’와 흡사한 상황이다.
더구나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남·북한 사이의 비방방송이 중단되고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발표와 행정수도 후보지 발표가 거의 비슷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자주국방에 대한 국민 우려를 덮어버리는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신’행정수도를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처리하고 있다. 국민의 수준은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잠깐 잊은 것일까. 아니면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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