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중형 SUV '뉴 쏘렌토R'이 출시되면서 같은 집안 식구인 현대차 신형 싼타페와의 중형 SUV 싸움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베라크루즈와 모하비를 SUV 최상위 라인업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은 볼륨 모델(판매량이 많은 모델)이 아닌데다, 신형 싼타페와 뉴 쏘렌토R에 제각기 '프리미엄'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사실상 각사의 대표 SUV 역할을 하게 됐다.
두 모델간 대결은 3개월 차이로 잇달아 출시된 신차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은다.
일단 출시 시점에서는 나중에 출시된 뉴 쏘렌토R이 다소 유리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늦게 출시된 '신상'이 아무래도 소비자들에겐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의 정도 측면에서는 신형 싼타페가 유리하다. 신형 싼타페는 외양이 완전히 바뀐 풀체인지 모델인 반면, 뉴 쏘렌토R은 기존 디자인을 살짝 변경한 부분변경 모델이다.
동일 플랫폼을 적용한데다, 중형 SUV라는 세그먼트 내에 포함돼 있는 만큼 두 모델의 외형상 제원은 거의 비슷하다. 전장은 신형 싼타페가 조금 길고, 전폭은 뉴 쏘렌토R이 조금 넓지만 그래봐야 5㎜ 차이다. 플랫폼이 같으니 당연히 축거도 같다.
다만, 전고는 기존 SUV보다 좀 더 날렵한 도심형 이미지를 강조한 신형 싼타페가 지붕을 낮추면서 뉴 쏘렌토R보다 20㎜가량 낮다.
윤거는 신형 싼타페가 전륜보다 후륜의 폭이 넓은 형태인 반면, 뉴 쏘렌토R은 전륜의 윤거가 상대적으로 넓다.
현대차가 신형 싼타페를 출시하며 가장 큰 개선점으로 부각시킨 점은 이전과 같은 엔진을 사용하고도 연비를 13%나 개선했다는 점이다. 저압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와 같은 연비개선 기술을 적용한 결과다.
이는 뉴 쏘렌토R도 마찬가지다. 두 모델의 연비는 2.0ℓ급이 17.0km/ℓ, 2.2ℓ급이 16.1km/ℓ(이상 2WD 자동변속기, 구연비 기준)로 동일하다.
물론, 동력성능도 동일하다. 2.0ℓ급은 최고출력 184마력에 최대토크 41.0kg·m를, 2.2ℓ급은 최고출력 200마력에 최대토크 44.5kg·m를 낸다.
대부분의 제원이 비슷하니 이제 남은 건 가격과 편의사양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신형 싼타페와 뉴 쏘렌토R을 내놓으면서 이구동성으로 '프리미엄 SUV'를 표방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을 야금야금 먹어 오는 수입 SUV를 의식한 전략이다.
프리미엄을 표방한 만큼 신기술도 많이 적용했다. 신형 싼타페는 텔레매틱스 서비스 ´블루링크(Blue Link)´를 비롯,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오토홀드, 주차조향 보조 시스템, 코너링 램프, 크루즈컨트롤, 12웨이 전동시트, 1열 통풍시트, 1·2열 2단계 열선시트 등 최고급 사양을 갖췄다.
가죽시트와 크롬 장식 등 내장재도 고급스러움을 살리는 데 신경을 많이 썼고, 7에어백 시스템과 하체상해저감장치 등 안전 사양도 최상급으로 적용했다.
3개월 뒤에 세상에 나온 뉴 쏘렌토R도 신형 싼타페에 적용됐던 최신 고급 사양을 대부분 장착했다. 텔레매틱스 서비스만 기아차의 브랜드인 유보(UVO)로 바꾸면 거의 동일하다.
여기에 몇 가지 더한 부분도 있다. 고가의 수입 차량이나 국산 플래그십 세단에나 적용되던 후측방 경보 시스템과 7인치 컬러 LCD 패널을 내장한 슈퍼비전 클러스터다.
기아차는 이들 사양에 '국내 SUV 최초 적용'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형님 격인 현대차를 제대로 물먹였다.
아무래도 뉴 쏘렌토R이 좀 더 최근에 나온 모델인데다, 부분변경모델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니 신형 싼타페와 차별점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격 역시 두 모델이 큰 차이는 없지만 좀 더 자세히 접근하면 양사의 서로 다른 전략이 엿보인다.
일단 두 모델 다 기존 구형보다는 가격이 올랐다. 플랫폼을 변경하고 기본 사양 중에도 새로 적용한 부분이 많으니 불가피한 결정일 수 있다.
대신, 신형 싼타페는 먼저 나온 죄로 가격 인상을 놓고 많은 욕을 먹었다. 모델이 바뀔 때마다 슬그머니 가격을 올린다는 얘기였다. 신사양 적용을 감안하면 오히려 가격이 낮아진 것이라는 항변도 소용없었다.
기아차로서는 현대차가 욕을 먹으면서 얻은 학습효과를 잘 활용해야 했다. 풀체인지가 아닌 부분변경모델이니, 뉴 쏘렌토R이 신형 싼타페보다 비싸다는 인상을 줬다가는 더 큰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장 가격이 저렴한 기본 트림의 가격을 낮추는 일이다. 통상 차량 가격 비교는 기본 트림을 기준으로 이뤄지는 만큼 상징적으로라도 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뉴 쏘렌토R은 2.0ℓ와 2.2ℓ, 2WD와 4WD를 조합한 모든 라인업에서 기본 트림이 신형 싼타페보다 저렴하다. 2.0 2WD 모델의 경우 157만원, 2.2 4WD의 경우 163만원의 차이를 보인다.
풀체인지와 부분변경 모델의 차이가 이 정도는 돼야 소비자들이 수긍할 수 있다.
반면, 최상위 트림은 모두 뉴 쏘렌토R이 신형 싼타페보다 높다. 2.0 2WD 모델의 경우 36만원, 2.2 4WD는 37만원 차이다. 어떤 이유에설까.
이 대목에서 국산 SUV 최초로 적용했다는 후측방 경보 시스템과 슈퍼비전 클러스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덕에 뉴 쏘렌토R은 고객들에게 신형 싼타페에서 누릴 수 없는 옵션 두 가지를 얻게 됐지만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다. 슈퍼비전 클러스터는 각 모델별 중급 트림 이상에만 기본 장착되며, 후측방 경보 시스템은 최상위 트림에만 기본 장착된다.
기본형에서는 신형 싼타페보다 160만원가량 저렴했던 뉴 쏘렌토 R이 최상위 트림에서는 40만원 가까이 역전하게 된 것은 이들 두 개 옵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하위 트림에 후측방 경보 시스템을 옵션으로 장착할 경우 비용은 70만원에 달한다.
최신 기술이 대거 적용됐다고 마냥 좋아할 게 아니다. 그걸 달려면 더 비싼 트림을 사거나 옵션으로 돈을 더 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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