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공격수'인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이 5일 제 19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에 대기업 한 고위 관계자는 할 말을 잃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재계가 반기업 정서가 강한 박 의원의 법사위 위원장 선임소식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박 의원은 지난 18대 국회에서 기업내부거래 기준을 대폭 강화한 상법개정안 처리를 주도하고 공정거래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재벌개혁법 신설을 주장하면서 대기업 때리기에 앞장서 왔던 인물이다. 특히 19대 국회의 화두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재벌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다, 재벌 지배구조·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등 재벌개혁 관련 주요 현안이 모두 법사위에서 다뤄지고 있다.
따라서 재계는 12월 대선정국과 맞물려 고강도 재벌개혁 압박 움직임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관측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등 대부분의 주요 재벌기업들은 재벌지배구조, 출총제 부활, 하도급법개정, 법인세 인상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재계 한 관계자는 "4월 총선과 여·야 노동관련법안 발의에 이어 이번 법사위원장 선임까지 정치권 이슈가 계속해서 재계로 몰리는 상황이 부담스럽다"며 "'재계 저격수'로 불리는 박영선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으면서 출총제 부활과 일감몰아주기 근절 등 재계 압박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등 답답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며 한숨지었다.
특히 SK그룹의 경우, 18대 국회 때 지주회사문제를 놓고 발목을 잡은 박 의원과 불편한 관계다. 지난 2007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SK그룹은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자회사를 둘 수 없다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SK증권을 2009년 7월까지 팔아야 했다. 하지만 이듬해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완화' 선언으로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일사천리로 풀려가던 공정거래법 개정 작업은 법사위에서 멈췄다.
당시 법사위 법안 소위원장을 맡았던 박 의원은 "지분매각 유예 기간은 그 때까지 지분을 매각하라는 것이지 법이 바뀔 때까지 버티라는 게 아니다"며 법안 통과를 가로막았고, 결국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SK그룹은 오는 10월 말까지 SK증권 지분 매각을 완료해야 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SK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라는 정부 말을 믿고, 국회 움직임을 따랐다가 역차별 당하는 케이스"라며 "법률리스크가 기업 경영의 안정을 훼손한 중대한 사건"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대(對)국회 대관업무를 맡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박 의원은 18대에서도 법사위에서 활동해 성향을 익히 알고 있는데 출총제 부활 등 재벌개혁 관련 주요 현안이 모두 법사위에서 이뤄지니 부담스럽게 된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맏형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재계에 큰 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이럴때 전경련이 나서줘야 하는것 아니냐. 기업입장을 전혀 대변해 주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현실적인 차원에서 기업들이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유지·발전시켜나갈 수 있도록 전경련이 중심을 잡아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법사위는 재계 규제와 관련된 법안을 다루는 곳이다. 더이상 대립관계로 가거나 적대시해서는 안된다"면서 "어느 분이 위원장이 되셨든 재계 목소리를 잘 이해하고 경청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 한 관계자는 "박영선 의원의 법사위 위원장은 물론,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도 강성인 강창일 민주통합당 의원이 내정됐다"면서 "대한상의의 경우 대-중소기업이 함께 구성된 만큼 최소한의 대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 추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 전경련의 경우 대화 자체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등 향후 소통이 더욱 어려워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과 기업오너들은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1대 창업주들은 개인적 명운과 사운을 걸고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한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기업과 기업총수들은 땀과 눈물, 고독한 결단, 희생,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우리나라를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10위권 경제강국으로 도약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같은 사실을 외면한채 무조건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지배구조 역시 정부나 언론이 감놔라 배놔라 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지배구조에는 모범답안이 없다. 오너경영체제로 가느냐, 전문경영인체제로 가느냐는 기업과 주주가 결정할 사안이다.
실제 최근 전경련의 보고서에 따르면 언스트앤영이 유럽 3만400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 2007년 가족지배기업은 2005년 대비 비가족지배기업보다 신규고용창출 효과가 2배 높게 나타났고, 배출성장세 역시 3%포인트 높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의 문제점을 지적해 우리 경제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건전한 비판은 괜찮지만 단순히 선거정국에서 '표심'를 얻기 위한 정치적 논리로 이뤄지는 ‘비판을 위한 비판’은 경제적 불안감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일리안 = 이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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