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두 차례 도전에서 1차 투표에 1위를 차지하고도 유럽세의 결집으로 역전패했던 평창이 마침내 올림픽 개최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꿈이 아니다.’
지난 1999년부터 시작된 힘겨운 싸움이 마침내 심장이 멎을 듯한 기적을 일궈냈다.
평창은 6일(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1차 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얻어 독일 뮌헨을 제치고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선정됐다.
앞선 두 차례 도전에서 1차 투표에 1위를 차지하고도 유럽세의 결집으로 역전패했던 평창이기에 감격이 더했다.
지난 12년간 평창은 꿈과 희망을 품은 채 멀고도 험한 길을 달려왔다. 기쁨보다는 외롭고 서러운 순간들의 연속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좌절할수록 온 국민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졌다.
올림픽 유치경쟁을 치르는 동안 평창에는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감자밭이던 평창 일대에는 웅장한 스키장과 복합휴양시설인 알펜시아 리조트가 들어서 세계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 제반여건을 갖췄다.
특히 평창 시민을 비롯한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는 2018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 도시인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를 압도한다는 평가다.
평창이 올림픽 유치에 대한 야심을 처음 드러낸 건 1999년 동계 아시안게임 폐막식이다.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축적한 경험과 자신감이 올림픽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평창의 첫 올림픽 유치 도전이 그리 순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1993년부터 2006 동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했지만 1997년 불어 닥친 IMF 경제위기로 꿈을 접어야 했고, 전라북도 무주와 2010 동계 올림픽 후보도시 선정을 놓고 대립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계무대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가 문제였다. 때문에 기적이 없는 한 평창의 올림픽 유치는 사실상 어렵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평창의 저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북한의 지지까지 얻어낸 평창은 여세를 몰아 1차 투표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51표를 얻은 평창은 40표를 얻는데 그친 캐나다의 밴쿠버를 압도하면서 기적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결집은 예상보다 강했고, 첫 도전자인 평창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결선 투표에서 유럽 국가들은 밴쿠버에 몰표를 던졌고 평창은 단 3표 차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평창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2004년 재도전을 선언하면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무주가 4년 전 ‘2010 올림픽 유치 시 우선권을 준다’는 합의서를 내세워 반발했지만, 무주가 국제대회 유치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논란은 일찌감치 일단락됐다.
오랜 준비기간에 걸맞게 2007년 2월 시행된 현지 실사에서 최고점을 받은 평창은 국민적 지지와 정부 지원 등 모든 여건에서 경쟁 도시를 앞서면서 유치에 대한 기대감도 최고조에 달했다. 평창 시민들은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승리의 축배를 들 준비를 하면서 긴장감 속에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유럽표의 결집이 문제였다. 2007년 7월 과테말라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소치를 2표 차로 앞섰지만, 결국 결선투표에선 4표 차로 역전패해 또다시 개최권을 넘겨줘야만 했다.
2018 동계올림픽 유치전은 평창에게 마지막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평창은 지난 세 차례의 도전 과정에서 무려 1000억 원의 비용을 쏟아 부었다. 정부와 강원도, 후원 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고, 평창 시민을 비롯한 전 국민의 뜻이 하나로 모아졌다.
또 6일 오후 열리는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피겨여왕’ 김연아, 입양아 출신 미국 국가대표 스키선수 토비 도슨 등 대한민국에서 동원할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해 IOC 위원들의 감성과 이성을 쥐고 흔들었다.
결국, 평창은 1차 투표에서 뮌헨을 꺾고 12년 대장정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유럽표의 결집이 우려됐지만, 세 번 실패는 없었다. [데일리안 스포츠 = 이한철 기자]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