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V1´ 아닌 ´V10´인 이유는?

박상현 객원기자

입력 2009.10.24 21:58  수정

[한국시리즈]2001년 8월 양수양도로 창단, 해태 명맥 이어

쌍방울·현대 해체 후 재창단한 SK·히어로즈와 달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명백하게 KIA의 우승을 ´V10´으로 규정하고 있다. KIA가 해태 타이거즈를 그대로 인수하는 방식으로 창단했기 때문이다.

조범현 감독이 이끄는 KIA가 2009년 한국 프로야구의 최종 승자가 됐다.

KIA는 24일 잠실구장서 벌어진 ‘2009 CJ 마구마구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5-5 동점이던 9회말 나지완이 채병용을 상대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작렬, 시리즈전적 4승 3패로 지난 1997년 이후 1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KIA는 이날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지난 1983년, 1986년부터 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에 이어 올해까지 한국시리즈에 10번 올라 모두 우승하는 ´100% 신화´와 함께 ´V10´을 달성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KIA는 해태 타이거즈가 이룩했던 ´V9´ 업적을 이을 수 없기 때문에 이번 우승은 명백히 ´V1´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명백하게 KIA의 우승을 ´V10´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KIA가 해태 타이거즈를 그대로 인수하는 방식으로 창단했기 때문이다.

해태가 지난 1997년 아홉 번째 우승을 마지막으로 IMF 사태가 터지면서 주축들을 팔아치우기 시작, 단숨에 강호의 면모를 잃었다. 결국 지난 2001년 8월 기아자동차가 양수양도 형식으로 KIA 타이거즈를 창단했다.

공교롭게도 IMF 체제 때문에 해태 구단과 처지가 다르지 않던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에 흡수되면서 살아남았고, 현대자동차 그룹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아사 직전에 있던 해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바로 2001년 초의 일이었다.

광주시청이 해태를 살리기 위한 작업에 착수, 그해 5월 2003년까지 광주구장의 사용료를 전액 면제해주기로 하면서 기아자동차가 적극적으로 인수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광주구장 사용료 전액 면제 결정이 난 지 2주 만에 기아자동차 측에서 광주시청을 방문해 야구단 의사를 공표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광주공장을 방문해 인수를 공식 선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결국 그해 7월 18일 해태 타이거즈 실사 협정서를 조인했고 이틀 뒤인 20일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던 이종범을 다시 데려왔다. 7월 30일에는 양수양도 계약, 7월 31일 KBO 가입신청서 제출을 통해 8월 1일 공식 창단했고 8월 6일 창단식, 8월 7일 출범식까지 인수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당시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면서 낸 대금은 주채권 은행인 조흥은행에 180억원, KBO 가입금 30억원 등 210억원이었다.

KIA의 인수형식을 통한 창단은 이전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를 비롯해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 이은 현대 유니콘스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KBO는 MBC와 LG, 삼미-청보-태평양-현대를 모두 같은 팀으로 본다.

그러나 SK와 히어로즈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SK는 지난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존재했던 쌍방울 레이더즈를 해체한 뒤 재창단하는 형식을 취했고 ,히어로즈 역시 2007년을 끝으로 마감한 현대를 해체한 뒤 재창단했다.

이로 인해 KBO는 쌍방울과 현대는 각각 1999년과 2007년을 끝으로 팀의 역사가 끝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데일리안 = 박상현 기자]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박상현 기자
기사 모아 보기 >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