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전도연, 외국인에 이해시키려면"…K-콘텐츠 번역은 '제2의 제작'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6.10.15 13:21  수정 2026.10.1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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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더빙에 언어당 50~60명 투입…122개 협력사와 글로벌 현지화 생태계 구축

달시 파켓 “직역하면 문화적 오해 생길 수도”…원작의 정서 살리는 번역 강조

10월 15일 포시즌스 호텔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로컬라이제이션 라운드테이블’에서 패널토크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번역가 달시 파켓, 산더르 반 데르 풀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 제니 로스 UCAN(미국·캐나다)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 존 드미타 UCAN 글로벌 영어 프로덕션 시니어 매니저ⓒ넷플릭스

단어 하나에도 인물 간 관계와 문화적 맥락이 담긴다. 이를 다른 언어로 옮기려면 단순한 번역을 넘어 원작의 정서와 의도까지 전달해야 한다.


1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넷플릭스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동 개최한 ‘글로벌 로컬라이제이션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자막과 더빙을 통해 K콘텐츠의 고유한 문화와 감정을 세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제2의 제작’의 중요성이 조명됐다.


이날 행사는 콘진원과 넷플릭스가 함께 마련한 글로벌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워크숍과 연계해 열렸다. 한국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현지어 자막과 더빙, 화면 해설, 청각장애인용 자막의 역할을 살펴보고 전문 인력과 제작 생태계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캐서린 르타트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시니어 디렉터, 산더르 반 데르 풀 EMEA(유럽·중동·아프리카)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 제니 로스 UCAN(미국·캐나다)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 존 드미타 UCAN 글로벌 영어 프로덕션 시니어 매니저 등 넷플릭스 로컬라이제이션 부문의 주요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한국 이야기의 글로벌 확장을 뒷받침하는 ‘제2의 제작’

먼저 캐서린 르타트 시니어 디렉터는 한국 콘텐츠의 확장이 작품 수출을 넘어 포맷과 제작 경험의 글로벌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더빙은 결코 부수적인 작업이 아니다. 단순한 보조 작업도, 덜 중요한 작업도 결코 아니다. 로컬라이제이션은 사실상 제2의 제작”이라고 밝혔다.


하나의 더빙 버전을 제작하는 데 언어당 50~60명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르타트 디렉터는 설명했다. 성우, 번역가, 더빙 대본 각색가, 더빙 연출가, 음향 엔지니어, 믹싱 엔지니어, 품질 검수 담당자, 프로젝트 매니저, 일정 관리 담당자 등이 투입된다.


10개 언어로 더빙한다고 가정하면 총 500~600명가량의 인력이 참여하는 셈이다. 르타트 디렉터는 “넷플릭스에서 매년 20편이 넘는 한국 콘텐츠가 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1만명 이상의 인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현재 36개 언어로 더빙을, 33개 언어로 자막을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캐나다, 유럽·중동·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중남미 등 4개 지역에서 총 122개 협력사와 협업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튀르키예는 전통적으로 더빙을 선호하는 시장으로, 전체 시청 시간의 75% 이상이 더빙 버전으로 소비된다. 반면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그리스 등에서는 자막을 선호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산더르 반 데르 풀 EMEA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디렉터는 “흥미로운 변화는 젊은 세대의 시청 습관”이라며 “젊은 시청자들은 소파에 앉아 TV만 보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휴대전화를 보면서 콘텐츠를 시청한다. 이런 변화로 전통적으로 자막을 선호하던 시장에서도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된 콘텐츠는 더빙으로 보는 시청자가 늘고 있다. 소리로 내용을 따라가면서 시선은 다른 곳에 둘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로컬라이제이션 라운드테이블’에서 캐서린 르타트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시니어 디렉터가 영화 ‘가능한 사랑’의 다국어 더빙 영상을 소개하고 있다.ⓒ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이어 “시청자가 자막과 더빙 중 무엇을 선택하고 끝까지 어떤 방식으로 시청하는지 살피며 선호도를 파악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선택과 평가는 시청자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오징어 게임’ 시즌3는 한국 작품 가운데 최대 규모의 로컬라이제이션 사례로, 37개 언어 자막과 24개 언어 더빙 등이 제작됐다.


‘피지컬: 100’의 글로벌 성공에 힘입어 ‘피지컬: 100 멕시코’, ‘피지컬: 100 이탈리아’도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멕시코 버전은 공개 첫 주 250만 시청 수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비영어 쇼 부문 4위에 올랐고, 이탈리아 버전 역시 총 27개국에서 톱10에 진입하며 한국에서 탄생한 예능 포맷의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했다.


외국어 자막에 ‘Oppa(오빠)’가 그대로? 단어 하나에 담긴 관계와 문화

이날 대담에서 번역가 달시 파켓은 이창동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영어 자막을 번역하며 실제로 고민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극 중 전도연이 연기한 인물이 조인성·조여정이 연기한 부부를 두고 “상우야 하셔서 좀 신기했어요. 남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 처음 봤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소개했다.


달시 파켓 번역가는 "이 대사 한 줄을 영어로 옮기기 위해 오랜 시간 깊이 고민을 했고 감독님은 물론 제작 팀원들과도 오랫동안 논의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상우야라고 하셔서 좀 신기했어요, 저는 남편을 늘 오빠라고 부르거든요'라고 번역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사를 원문 그대로 옮겼으면 다른 국가 시청자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결론에 도달했을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아내가 반드시 남편에게 공손한 표현만 써야 한다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파켓은 이후 영화에서 전도연이 남편을 부르는 장면에서도 ‘오빠’라는 한국어 호칭을 그대로 살려 번역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어 호칭에 담긴 관계와 문화적 맥락을 전달해 해외 관객이 한국 문화를 성급하게 일반화하거나 오해할 가능성을 줄이려는 취지다.


존 드미타 시니어 매니저는 ‘오빠’와 같은 한국 고유의 표현을 외국어로 옮길 때는 인물 간 관계와 문화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었다.



15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로컬라이제이션 라운드테이블’에서 캐서린 르타트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로컬라이제이션 시니어 디렉터가 한국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 100’과 이탈리아·멕시코 현지화 버전의 자막·더빙 지원 현황을 소개하고 ⓒ데일리안 조인영 기자

그는 "오빠에 1대1 대응하는 영어 단어는 없다. 자막인지 더빙인지에 따라 창의적인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면에 따라 ‘오빠’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이름 또는 친밀한 호칭으로 옮기고, 말투와 억양을 통해 관계를 전달하는 방식 등을 고려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원작의 맥락을 지키면서도 현지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존 드미타 시니어 매니저는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품은 원작의 배경이 된 국가와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 특정 단어나 표현은 이야기의 세부적인 맥락을 더해 줄 수 있지만, 관객이 이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느 순간부터 과하다고 느낄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한국 콘텐츠를 영어로 더빙할 때는 현지의 영어 더빙 전문가들과 협업한다. 더빙 아티스트와 연출자, 작가 등 한국인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한다"며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AI는 창작자를 돕는 도구…전문가의 역할은 계속된다

AI 기술 발달에 따른 더빙·자막 환경 변화에 대해 캐서린 르타트 시니어 디렉터는 "넷플릭스와 영화 분야에서 AI는 우리의 활동을 지원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것"이라면서도 "전문가들이 해내는 훌륭한 작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을 돕는 역할을 할 뿐,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가능한 사랑'을 예로 들며 "세련되고 우아한 감정을 담은 작품은 사람만이 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아는 한 AI를 예술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AI가 창작과 예술의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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