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0만 달러에 그친 전 세계 흥행…손익분기점과 큰 격차
앤 해서웨이·벤 애플렉 등 창작적 도전 옹호
톰 크루즈 주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디거’는 자본과 권력, 기후위기를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막대한 제작비에도 흥행에서는 고전하고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인들은 작품의 과감한 시도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워너브러더스의 경영권 교체와 개봉 시기가 맞물리면서 감독 중심 오리지널 대작의 향후 제작 환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15일 영화 흥행 집계 사이트 더 넘버스에 따르면 ‘디거’의 전 세계 누적 흥행 수익은 3770만 1255달러다. 북미에서 1560만 1255달러, 해외에서 221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지난 2일 북미 3321개 극장에서 개봉해 첫 주말 800만 1856달러를 기록했으며, 2주 차 주말 수익은 320만 1557달러로 전주 대비 60% 감소했다.
제작비는 당초 1억 2500만 달러에서 1억 6000만~1억 8000만 달러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마케팅에도 약 1억 달러가 투입됐다. 업계에서 거론하는 극장 흥행 손익분기점은 전 세계 수익 약 3억~3억 5000만 달러로, 현재 성적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최종 손실 규모는 부가 판권 수익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극장 흥행만으로 제작비를 회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디거’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디거’는 자신이 초래한 환경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나선 석유 재벌 디거 록웰의 이야기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당사자가 구원자를 자처한다는 설정부터 역설적이다. 영화는 자본의 탐욕과 권력자의 무책임, 재앙마저 자신의 이익과 이미지 관리에 이용하려는 태도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작품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동시대의 위기를 겨냥한 대담한 풍자라는 호평이 있는 반면, 과도한 연출과 산만한 전개가 메시지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흥행 부진이 곧 작품의 시도까지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할리우드에서 이어지고 있다.
앤 해서웨이는 영화 기록 플랫폼 레터박스에 ‘디거’를 관람한 뒤 별 다섯 개와 함께 10점 만점에 10점을 줬다. 그는 작품을 영리하고 기묘하며 공격적이고 유쾌한 동시에 야심 찬 영화라고 평가했다. 시간을 내 직접 관람한 뒤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해 보라고도 권했다.
벤 애플렉은 팟캐스트 ‘해피 새드 컨퓨즈드’에서 ‘디거’의 실패를 반기는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사람들이 영화가 얼마를 잃었는지 계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서, 위험을 감수한 영화를 벌하면 결국 획일화된 영화만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도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취지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도 작품의 규모와 야심, 영화적 복잡성을 높이 평가하며 극장에서 경험할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옹호했다. 제인 폰다 역시 톰 크루즈가 이번 역할에 뛰어든 용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흥행 성적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디거’의 흥행 실패가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제작사 워너브러더스가 맞은 변화 때문이다. 이 작품은 워너브러더스가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에 인수되기 직전 개봉했다. 지난 6일 인수가 완료되면서 워너는 새로운 경영 체제에 들어섰다.
워너는 그동안 프랜차이즈와 속편뿐 아니라 감독의 독창적인 기획에도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왔다. ‘디거’ 역시 기존 지식재산권(IP)에 기대지 않고 거장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톰 크루즈라는 스타의 조합에 승부를 건 작품이다. 그러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이번 사례는 앞으로 비슷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판단을 더욱 신중하게 만들 수 있다.
새로운 경영진을 이끄는 데이비드 엘리슨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로도 주목받아 왔다. 정치적 풍자와 사회비판을 담은 작품의 제작 가능성을 곧바로 경영진의 정치적 성향과 연결할 수는 없다. 다만 인수에 따른 재무적 부담과 흥행 수익에 대한 압박이 감독 중심 오리지널 영화에 대한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거’가 흥행 실패작으로만 기억된다면 작품이 던진 질문과 창작적 시도는 충분히 평가받기 어렵다. 흥행 성적은 투자 규모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영화의 가치까지 결정하지는 못한다. ‘디거’의 실패가 향후 비슷한 작품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기보다, 상업적 성과와 창작적 도전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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