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네릭 약가 순차적으로 인하 조정
신약 연구개발 및 제약 산업 전반 축소 우려
"필수의약품 공급 차질로 이어질 수 있어" 경고
제네릭 관련 이미지. AI 이미지
보건복지부의 제네릭(복제약) 약가 대폭 인하 계획에 대해 제약업계가 즉각 반발에 나섰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신약 중심의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이번 조치가 기업의 연구개발(R&D) 동력을 상실케 하고, 필수의약품 공급망 위기를 초래하는 부정적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게 제약업계의 주장이다.
제네릭은 특허가 만료된 신약의 복제약이다. 원개발사의 신약은 ‘오리지널’, 특허 만료 이후 신약과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증 받은 약은 ‘제네릭’이라고 부른다. 제네릭의 장점은 오리지널과 비슷한 성분이지만 가격은 낮다는 점에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달 2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보고했다. 핵심은 현재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 수준인 제네릭 약가 산정 기준을 2026년 하반기부터 40%대까지 낮추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오리지널 약가 대비 50% 이상인 3000여개 품목은 내년부터, 45~50% 사이인 1500여개 품목은 내후년부터 약가 조정에 들어간다는 구상이다.
최초 제네릭 등재 이후 동일 성분 제품이 10개를 넘으면 ‘계단식 인하’를 일괄 적용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동일 제제의 11번째 제네릭부터는 최초 제네릭 약가보다 5%p씩, 혁신형 제약 기업의 경우 3%p씩 낮게 산정하는 방식이다.
복지부는 국내 제네릭 가격이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조정을 통해 연평균 약 2500억원, 4년간 1조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제네릭은 국내 전체 급여 의약품의 약 90%를 차지할 만큼 시장 점유율이 절대적이다. 전체 약품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절반을 넘는다. 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네릭 의약품 약가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전체 약품비 25조9000억원 중 제네릭 처방액은 13조6000억원이었다.
정부는 이번 약가 인하로 확보된 재정을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강화와 혁신 신약 보상에 투입해 ‘혁신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업계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비롯한 5개 단체는 즉각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결성하고 정부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비대위는 제네릭 수익을 신약 개발(R&D) 재원으로 활용하는 국내 산업 구조상, 급격한 약가 인하는 기업의 투자 여력을 떨어뜨려 신약 개발은 물론 설비 투자와 고용 규모까지 축소되는 나비효과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국내 제약 산업 구조상 제네릭 판매 수익은 단순한 이익 창출을 넘어 신약 개발을 위한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다. 국내 주요 제약사들은 블록버스터급 제네릭과 개량신약 라인업을 통해 R&D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삼진제약 ‘플래리스’는 사노피아벤티스의 오리지널 심혈관 치료제 ‘플라빅스’의 퍼스트 제네릭으로 2007년 출시됐다. 삼진제약은 플래리스 단일로만 2021년 574억원, 2023년 700억원이 넘는 매출고를 올렸다.
한미약품의 발기부전 치료제인 ‘팔팔’도 대표적인 제네릭 제품이다. 팔팔은 비아그라 특허가 만료된 2012년 출시 7개월 만에 223억원을 판매하며, 국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에서 매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대위는 “국내 제약 기업 100곳의 최근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에 불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네릭) 약가를 대폭 낮출 경우 기업의 R&D 투자와 고용을 위한 핵심 재원이 증발해 글로벌 경쟁력 자체가 후퇴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정부가 약가 인하의 명분으로 내세운 혁신 생태계 구축이 오히려 더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약품 공급망 붕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익성을 확보하기 힘들어진 제약사들이 저가 필수의약품 생산을 중단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약가가 원가 수준으로 더 낮아지면 기업은 저가 필수의약품 생산을 가장 먼저 축소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수입 의존도 증가, 필수의약품 공급 차질, 품절 리스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2012년 정부가 단행한 평균 14% 일괄 약가 인하 당시 건보 재정은 일시적으로 절감됐으나, 제약사들이 비급여 의약품 비중을 늘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하면서 국민의 실제 약값 부담은 13.8% 증가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미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네릭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인하는 제약사 마진 악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면서 “당장의 신약 파이프라인이 부족한 중소 제약사와 대형 제약사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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