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이 새로 선임된 2인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주목
2인자는 1인자에게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1인자 이재명 대통령과 2인자 정청래 여당 대표의 향후 관계도 관심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박학규 삼성전자 사업지원실장 사장(오른쪽).ⓒ 데일리안 DB
삼성그룹의 2인자였던 정현호 사업지원TF장 부회장이 마침내 물러났다. 세간에서는 과거 HBM(고대역폭메모리) 투자 기회를 놓쳤다는 등의 이유로 정현호 부회장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버텼고 적절한 퇴임 시기를 고민하다가, 이재용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마무리되고 반도체도 슈퍼사이클로 접어들자 물러났다. 삼성그룹은 임시조직인 사업지원TF 대신 상설조직인 사업지원실을 만들고 박학규 사장을 실장에 선임했다.
삼성그룹 역사에서 오너 1인자와 전문경영인 2인자의 관계는 늘 세간의 관심이었다. 2인자는 보통 비서실장→구조조정본부장→전략기획실장→미래전략실장→사업지원TF장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이병철과 소병해, 이건희와 이학수, 이재용과 최지성, 이재용과 정현호의 관계가 유명했다. 특히 이학수 실장은 회사를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박학규 사장은 정현호 부회장과 업무 스타일이 비슷한 재무·관리통이다. 과연 이재용 회장이 박 사장을 어떤 스타일의 2인자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컬러가 담긴 ‘뉴 삼성’을 만들지 주목된다.
기업 외에도 모든 조직에는 2인자가 있기 마련이다. 조선시대 영의정(領議政)을 가리켰던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란 표현은 오직 1인자에게만 책임지는 2인자를 지칭한다. 보통 2인자의 파워는 스스로 창출해낸 것이 아니라 1인자로부터 위임 또는 부여받았다. 언제든 1인자의 명령이 있으면 물러나야 한다. 자신이 권력을 사용한 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 그래서 영원한 2인자란 없다. 모욕은 자신이 받고 영광은 1인자에게 돌리는 것이 덕목이다. 처신이 매우 조심스럽다.
1인자는 2인자가 충성스러운 간언(諫言)을 했다고 쳐도 이를 자신에 대한 거역으로 간주, 보복하거나 형벌을 내릴 수도 있다. 다만 1인자의 결정이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고 구성원에게 피해를 준다면 2인자는 주저하지 말고 나서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문제는 사람이란 권력의 달콤한 맛을 알면 변한다는 점이다. 권력이란 생물이다. 권력을 맛본 2인자는 마치 그 권력이 영원하며 그 원천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한다. 때로 1인자를 만만하게 여기며 대들기도 한다. 조직 내에서도 1인자보다 2인자의 눈치를 더 보는 일이 잦아진다. 그러다가 사달이 나는 경우가 역사와 현실에서 반복된다.
실제 모 기업에서는 2인자가 물러나지 않고 버티자, 1인자는 감사팀을 동원해 재직 시절의 업무상 전횡과 약점을 제시하며 압박하기도 했다. 또 2인자인 전문경영인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자 그의 언론 인터뷰나 대외행사 출연을 못마땅해하는 경우도 있다.
1인자가 2인자를 제거하려다가 부작용이 빚어지기도 한다. 구약성경에 그런 스토리가 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거인 적장 골리앗을 죽인 목동 다윗을 군대 지휘관으로 중용했다. 어느 날 다윗이 전쟁에서 이겨 개선하는데, 하필 눈치 없는 여인네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千千)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萬萬)”이라고 노래 불렀다. 이를 들은 사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다윗을 ‘envy’, 즉 질투하기 시작했다. ‘envy’는 라틴어 ‘invidia’에서 왔는데, 무엇을 자세히 본다는 속뜻이 있다. 성경은 “그날부터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라고 적었다. 우리말로 바꾸면 ‘윗사람의 눈에 찍혔다’는 뜻이다. 그때부터 1인자 사울은 2인자 다윗을 죽이는데 골몰하다가 인생을 망쳤다. 반면 다윗은 도망 다니면서도 결코 사울을 원망하거나 공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오늘날까지 성군(聖君)으로 대접받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1인자와 2인자의 관계를 놓고 말이 많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흔한 표현이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 2위는 누구일까. 정부조직도를 보면 김민석 국무총리일 것 같은데, 시중에서는 오히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을 언급한다. 권부의 깊숙한 내막을 일반 국민이 어찌 알 수 있으랴만, 정청래 대표가 대외적으로는 가장 눈에 띄니 2인자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그러나 ‘명청대전(明淸大戰)’에다 ‘용산 대통령과 여의도 대통령’이란 표현까지 언론에 나도는 걸 보면 1인자인 이재명 대통령과 2인자인 정청래 대표의 관계가 그리 상쾌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더불어민주당의 재판중지법 추진 중단을 요구하며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들이지 않아 주길 당부드린다”라고 언급한 것은 대통령의 불쾌감을 여당에 경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차 명청대전이 시작된 것 같으며 잠시 숨죽이던 여의도 대통령이 복귀한 것”이라는 이동훈 개혁신당 수석대변인의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앞으로 지방선거 공천을 비롯해 숱한 의사결정이 벌어질 텐데, 그 과정에서 1인자와 2인자의 갈등이 계속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 지금까지 “자기 정치를 한다”는 말을 들어온 정청래 대표가 앞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인자인 대통령의 권한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더불어민주당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는 하나일 때 가장 강하다”고 밝혔다. 1인자와 자꾸 엇박자를 내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경고로 들렸다. 앞으로 지방선거 이후에는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바뀐다. 과연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보통 정치권에서 1인자와 2인자 사이에 리더십 갈등이 벌어질 경우, 자칫 지지층을 겨냥한 선명성 경쟁으로 과격한 정책이 나올 우려가 있다. 그럴 경우 그 과격함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1인자나 2인자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흔히 스마트한 처신을 한 2인자로는 이런 사례가 언급된다.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 개국공신으로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륜과 조준(이들이 노년에 은거한 곳으로 태종대에 있는 하조대가 유명하다)의 처세는 요즘 2인자들에게도 교훈이 된다. 두 사람은 왕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끊임없이 피력했다. 권력과 관련된 일은 우유부단하게 행동하고 스스로 약점을 노출함으로써 태종의 의심을 완화시켰다. 그러면서 왕권강화와 조세개혁 등 태종이 바라는 사항은 신속하게 나서 처리했다. 이들은 1인자의 목표를 자신들의 목표로 일체화시키면서 안정된 2인자의 삶을 살았다.
최근 사례를 보면 금춘수 전(前)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이 눈에 띈다. 그는 그룹의 대한생명·삼성토탈·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모두 관여하면서 성공적으로 추진해 냈고, 오랜 해외 근무를 통해 회사의 글로벌화에도 기여했다. 2007년 김승연 회장이 아들을 구타한 술집 종업원들을 청계산에서 사적 보복한 것이 문제가 되자, 뒷수습을 깔끔히 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공식적인 2인자인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으로 오랫동안 직원들의 신망을 얻기도 했으며, 골프장에서 토크 회의를 즐기는 김 회장의 스타일에 맞춰 차에는 언제나 골프백을 넣어 두는 준비성도 지녔다. 1952년생인 그는 지난해 수석부회장에서 고문으로 물러났다. 1인자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고 매사에 1인자를 더 높이는 처신으로 그는 2인자의 삶을 성공적으로 지냈다. 금춘수는 “한화 정신인 신용과 의리, 그것을 김승연 회장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 인간은 늘 권력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어느 조직이든 1인자와 2인자의 갈등은 항상 빚어질 수밖에 없다. 교회나 절 같은 종교단체라고 하여 예외도 아니다. 인간과 조직의 영원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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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홍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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