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지어진 송전 전력망…녹슬어 버린 美제조업
잦은 정전과 단수, 낡은 공공 시설물…몰락의 40년
숙련된 노동자와 기술, 해외에서 수입해야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부촌인 퍼시픽 하이츠 전경. ⓒ위키피디아 캡처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금문교(Golden Gate Bridge) 남동쪽엔 ‘퍼시픽 하이츠’라는 마을이 있다. 미국에서도 가장 부유하다고 알려진 이들이 거주하는 마을로, 유명인을 종종 마주칠 수 있고 으리으리한 저택을 실컷 구경할 수 있어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마을을 구경하던 중 화려한 저택과 어울리지 않는, 보기에 썩 좋지도 않은 외부 설치물을 반복해서 발견할 수 있었다. 현지에 사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가 발전기라고 했다. 노후화한 송전 전력망으로 정전이 자주 발생하는 탓에 집집마다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미국의 송전 전력망은 1950~1970년대 건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전력망의 수명을 보통 50년, 변압기는 25년으로 계산한다. 2000년에 수명이 이미 끝나버린 인프라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으니, 정전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돌이켜 보면 미국에 살면서 낙후된 기반 시설들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잦은 정전과 단수는 예삿일이고,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핸드폰의 신호가 잡히지 않아 먹통이 돼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조차 심하게 낡은 공공시설물(지하철·버스·공중 화장실 등)을 아무런 불평 없이 이용한다.
제조업이 퇴보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산업이 금융화되면서 자본가들이 제조업 투자에 인색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대로 하향 곡선을 탄 미국의 제조업은 중국의 제조업 성장과 맞물려 가파르게 몰락했고 필수 인프라까지 녹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제조업을 부활시키려 한다. 낙후한 지역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계산이다. 이는 실제 효과를 발휘해 현재 공화당 주류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핵심 의제로도 자리 잡았다.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40년 제조업 공백을 메꿀 수 있을까?
제조업은 한 기업이 대규모 공장 단지를 세우고 막대한 투자를 퍼붓는다고 해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기술과 숙련된 노동자들이 있어야 하고 그에 알맞는 공급망, 기계, 환경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적어도 두 세대 이상이 사라져 버리는 동안 미국이 자랑하던 숙련된 노동자들은 모두 은퇴했고 그들이 전수할 생산 노하우도 사장됐다.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숙련된 노동자를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다. 높은 급여를 보장하고 비자 혜택을 주어 그들을 미국에 끌어들여야 한다. 이들이 미국의 젊은 노동자들에게 현장 지식을 가르치고 생산 노하우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마가 세력은 그들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발에 쇠사슬에 묶어 국외로 쫓아내고 있다. 말로는 제조업을 부활 시키겠다고 하면서 손으로는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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