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에 그친 금융 조직개편…잃어버린 신용은 [기자수첩-금융]

손지연 기자 (nidana@dailian.co.kr)

입력 2025.10.10 07:37  수정 2025.10.10 07:47

명분 없는 금융당국 조직개편안, 내부 반발만 부채질

‘코스피 5000’ 허상 될까 돌연 철회…신뢰 회복은 언제쯤

금융(金融)의 본질은 신용(信用)이다. 모든 금융거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금융(金融)의 본질은 신용(信用)이다. 모든 금융거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금융당국 조직개편은 거듭된 오판으로 가장 믿음직스러워야 할 금융당국의 안정성을 흔들어놓고 결국 ‘백지화’로 끝나고 말았다.


한 번 낮아진 신용등급을 회복하기 어렵듯, 개편안을 둘러싼 논란과 돌연 철회 과정에서 정부와 금융당국 간 ‘잃어버린 신용’을 되찾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16일, 이재명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금융위 해체를 포함한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본격화됐다. 당초 논의의 핵심은 기획재정부 권한 분산이었다.


국정위 경제1분과 위원이었던 오기형 의원은 지난 4월 기재부 권한 축소를 위한 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획예산처를 신설해 기재부의 예산 기능을 이관하고, 기재부 명칭을 재정경제부로 바꾸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는 “2008년 통합 이후 하나의 부처에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재부 권한 분산 논의는 ‘금융위 해체’ 문제로 비화됐다. 국정위는 금융위 정책 기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금융위를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하며,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원’으로 승격시키는 안을 마련했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 내부에선 이미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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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위는 지난 8월 13일 국민보고대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공개하지 않았다. 같은 날 대통령실은 금융위원장 인선을 발표했고, 금융위는 이찬진 변호사를 금감원장으로 임명했다.


국정위 관계자는 “금융위를 쪼갤 것처럼 얘기했는데 인사가 나서 개편이 사실상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내부에서 오갔다”며 “금융위원장과 금감위원장 인선도 모르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조직개편은 안갯속을 헤매며 추진 동력조차 떨어졌다.


차일피일 미뤄진 개편안은 청문회 종료 사흘 뒤, 국정기획위 안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형태로 발표됐다. 그러나 명분은 모호했다.


금융위 해체 이유는 “국내·국제 금융정책의 일관성 제고 및 금융위기 대응”이라는 추상적 구호에 그쳤고, 금감원 분리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실질적 권한과 프로세스 개선은 빠져 있었다. 이름과 구조만 바뀐 조직개편은 강한 반발을 자초했다.


금융당국의 시선이 조직개편에 쏠리며 블랙홀처럼 다른 논의를 집어삼켰다. 본연의 업무는 뒤로 밀렸고, 정책 동력의 중심이 돼야 할 금융당국의 신용만 갉아먹었다.


금감원 내에서는 개편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모피아’, ‘자리 나눠먹기’, ‘배임’이라는 격한 발언이 오갔다. 금융위 내부에서도 불만과 저항이 커져, ‘초상집에서 일하겠냐’는 푸념만 흘러나왔다.


결정적으로 조직개편이 무산된 것은 여야간 협치 결렬 때문이다. 여야 원내대표 회동으로 ‘특검’과 ‘금융당국 조직개편’으로 극적인 협상이 타결되는가 싶었지만, 결국 여당은 ‘특검’을 우선하며 개편 추진 의지를 접었다.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했던 조직개편안은 사실상 실행 의지가 없었던 셈이다. 딱히 명분도 실익도 커보이지 않는 조직개편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명해졌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장이 야당 소속인 상황에서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더라도 내년 4월 이후에나 개편이 가능하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개편안을 발표할 당시에는 고려하지 못했겠지만, ‘코스피 5000’을 실현해야 할 금융당국이 현안 대응보다 조직개편 논란에 갇히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결국 ‘없었던 일로 합시다’가 돼 버린 이번 난리통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업무에 적응하기도 전에 내부 반발을 맞은 금융당국 수장들의 난처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이를 지켜본 금융권 입장에서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금융이 국정과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음에도, 정부 초반 요란한 선언과 혼란, 철회로 끝난 이번 논란으로 정부와 금융당국 간 ‘잃어버린 신용’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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