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통해 방산 역량 결집...'육해공' 망라 한화와 주도권 경쟁
2035년 방산 매출 10조 목표...특수선 연평균 21% 성장 전망
싱가포르·미국 법인으로 글로벌 사업 재편...‘마스가’도 가속
국내 조선업의 무게추가 빠르게 해양 방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화그룹이 일찍이 방산·조선 융합 모델을 구축한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함정 건조 역량을 갖춘 HD현대그룹은 합병을 통한 방산 부문 강화에 나섰다. 단순한 외형 확장이 아니라 조선업 패러다임 전환의 분수령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1위 조선사 HD현대중공업과 중형 조선사 1위 HD현대미포가 합병을 통한 방산 역량 결집과 해외 야드(yard·조선소 일대) 강화를 꾀하고 있어 주목된다.
두 회사는 전날(27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안을 의결했다. 오는 10월 23일 임시 주주총회와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 12월 1일 통합법인 ‘HD현대중공업’으로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 부흥)’와 맞물려 국내외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정비(MRO)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합병의 의미는 방산 역량의 집중에 있다. 미국 해군 함정 MRO 사업 자격이 있는 HD현대중공업에 HD현대미포조선의 도크(dock·선박 건조장) 설비와 인적 역량을 결합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합병으로 분산돼 있던 방산 역량을 모아 전 세계 함정 건조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HD현대미포는 함정 건조에 적합한 중소형 도크를 보유하고 있다. 기존 4개 도크 중 2개를 특수선 건조 전용으로 전환할 예정으로, 합병 후 HD현대중공업의 특수선 도크는 기존 2개에서 5개로 늘어난다. 유휴 도크 재가동·상선 도크 전환을 통해 통해 시차 없는 방산 시설 확충이 가능해진 것이다.
합병은 지배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우선 아시아 사업을 총괄할 싱가포르 투자법인이 신설된다. HD한국조선해양이 60%, 합병법인이 40%를 출자해 설립되며 베트남·필리핀 조선소를 현물출자하고 해외 투자 확장을 주도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 해군의 글로벌 MRO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미 HD현대 그룹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외 조선소(HD현대베트남조선)를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
이와 함께 ‘마스가’ 목적으로 설립되는 미국 투자법인은 HD한국조선해양 산하에 편입된다. 미국 내 군함·상선 신조와 MRO, 기자재 공급망 구축을 위한 투자 등이 해당 법인을 통해 진행될 예정이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HD현대중공업은 방산 제품 제작 시설을 증설하고, HD현대미포는 신시장 개척과 제품 다변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됐다”면서 “마스가를 계기로 HD현대 그룹의 해양 방산, 미국 시장 진출에 관한 의지가 더욱 명확해졌다”고 분석했다.
합병법인의 청사진도 뚜렷하게 제시됐다. 통합 HD현대중공업은 2035년까지 매출 37조원, 이 가운데 방산 부문 매출 10조원 이상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지난해 1조원대에 불과했던 특수선 매출을 향후 11년간 연평균 21% 성장시켜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해양(13%), 상선(4%), 엔진(3%) 등 다른 부문의 동기 성장률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방산 목표액은 기존 5조원에 더해 쇄빙선 등 특수목적선 1조원, 미국을 포함한 해외 발주 4조원으로 산정됐다.
업계에선 이번 합병을 정기선 HD현대 수석 부회장의 함정 사업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한다. 미국이 2054년까지 364척의 함정을 신규 건조할 계획이지만 현지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투함 건조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변용진 iM 증권 연구원은 “회사가 제시한 중장기 매출의 구성과 선종을 보면 미국을 포함한 해외 함정 일감 확보에 대한 높은 자신감이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용민 유안타증권 연구원도 “HD현대는 경쟁사 대비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했었지만, 이번 결정은 향후 사업 확장으로 인한 이익이 갈수록 높아진다고 추측할 수 있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이미 한화그룹은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잇달아 인수하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 방산·조선 그룹 체제를 구축했다. 정 부회장의 이번 합병 결정은 한화 모델에 맞서 해양 방산 주도권을 두고 본격적인 경쟁에 나선 행보로도 보여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화가 방산·조선을 통합한 그룹 모델을 선점했듯이 HD현대의 이번 합병도 글로벌 조선 시장 판도에 변화를 줄 것”이라며 “다만 장기적인 인력 양성과 기술 투자, 노사 안정이 병행되지 않으면 조선사들의 성과는 반쪽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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