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장관 “편의성과 안전성 균형 필요”…확대 논의 재점화
현행 상비약 품목 11종…약사회 반발로 3년째 제자리
편의점 “해외선 이미 보편화”…규제 완화 주장
“편의성 vs 오남용” 찬반 엇갈려…해법 찾기 난망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비상상비약이 진열돼 있다.ⓒ독자 제공
편의점 업계의 현안 가운데 하나인 ‘안전상비약 판매 품목 확대’가 또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정치권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면서, 약사회와 유통업계가 이를 숨죽여 지켜보는 분위기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후보 신분이었던 지난달 17일 안전상비약 확대 동의 여부를 묻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소병훈 의원의 서면질의에 ‘소비자 편의성 증진’과 ‘의약품 사용 안전성’을 균형 있게 따져 결정할 사안이라며 일단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당시 정 장관은 “의약품 접근성 측면에서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희망하는 소비자 요구를 잘 알고 있다”면서 “다만 상비약 품목 확대는 소비자 편의성 증진 뿐 아니라 사용 안전성도 균형 있게 고려해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 약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상비약은 최대 20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등 11종만 판매되고 있다. 원래 판매할 수 있었던 지사제(설사약), 화상연고, 인공눈물 등도 현재는 보건복지부의 ‘지정’이 없어 판매하지 못한다.
시민단체와 편의점 업계는 소비자 편의성 증진을 위해 편의점 내 비치 상비약 품목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유통망을 통한 손쉬운 구매가 이미 보편화돼 있는 데 비해, 국내에서는 여전히 품목 규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이러한 규제가 유통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국은 3만여개, 일본은 2000여개 상비약을 처방전 없이 일반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 구입 가능하다. 일본은 이 같은 상비약을 1만여개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국에서는 베이징시가 2018년 12월 감기약 등 62가지의 편의점 판매를 허용했다.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판매할 경우 소비자 편의성이 크게 개선된다. 전국 5만여 점포가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에, 무약촌이나 심야 시간대에도 의약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도 가까운 편의점에서 필요한 상비약을 구할 수 있어 접근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해당사자인 대한약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안전상비약 지정 심의위원회는 사실상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약사들의 반발로 7년 가까이 열리지 않고 있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비상상비약이 진열돼 있다.ⓒ독자제공
현재 공공심야약국이 운영되고 있지만, 확대는 부진한 상황이다. 시간당 4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되지만, 지자체 예산이 부족한 탓이다. 여기에 대부분 새벽 1시까지만 영업해 심야·새벽 시간대 긴급 의약품 수요를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또 무약촌 등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이 지난 6일 ‘공공버팀목약국’ 이라는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장에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온다. 해당 개정안에 따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8시간 운영하는 약국에 약국당 하루 32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약국 한 곳이 1일 8시간 기준 한 달 26일 운영하면 약 850만원이 필요하다. 전국 무약촌 100곳만 개설해도 하루 3200만원, 월 8억3200만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버팀목공공약국 역시 동일한 보조금 구조를 따를 것으로 보여 재정 지속성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에 반해 편의점은 전국 5만여 점포를 기반으로 접근성이 높고, 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 이용도 용이하다. 무약촌의 24시간 미영업 편의점에서도 안전상비의약품 판매를 허용한다면 별도의 재정 부담 없이 의약품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다만 부정적 의견도 존재한다.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대하는 측에서는 약물 오남용 등을 이유로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매출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목소리도 뒤따른다.
이에 대해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상비약 매출의 경우 전체 매출이 100%이라고 하면 0.3% 수준에 불과하다”며 “상비약 품목 확대는 편의점의 24시간 영업이라는 기능적 측면을 더 강화하려는 취지다. ‘편의점이 돈 벌려고 욕심낸다’라는 프레임은 얼토당토 않다”고 말했다.
특히 편의점 업계가 너무 무분별하게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는 비판도 있다. 최근 편의점 업계는 세탁 서비스, 홈택배 서비스 등 업계의 최대 장점인 인프라를 활용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다양한 서비스를 취급하고 있는 데다,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편의점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변화한 시대에 발맞춰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는 만큼 소비자 편의성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비스 확대를 통해 모객효과를 높이고 추가 매출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일부 산업을 잠식하는 구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안전상비약 판매 확대는 단순히 업계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성 향상을 위한 것”이라며 “재정 부담 없이도 소비자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만큼 합리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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