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해수부 연내 부산 이전 못 박아
‘행정수도 완성’ 공약과는 반대 행보
2030 북극항로 시대 거점 역할 강조
부처 역할·기능·거주환경 등 과제 쌓여
이재명 대통령이 쏘아 올린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이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부 출범 이후에도 ‘설마’ 했던 이전 문제가 ‘연내 이전 방안을 찾으라’는 대통령 명령에 해수부 공무원들도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해수부 이전 문제는 이번에 처음 주목받은 게 아니다. 대선 때마다 지역 균형발전 등을 내세워 유사한 내용이 항상 공약으로 제안됐다. 심지어 당선 후 흐지부지된 모습도 똑같다.
이재명 정부는 다른 듯하다. 단순히 국토균형발전 차원을 넘어 ‘북극항로 시대’를 전면에 내세워 부산은 물론 울산, 경남까지 해양수도 벨트로 묶으려 한다.
해수부 부산 이전은 세종특별자치시로의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정책 목표와 상충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약에 ‘세종 행정수도’를 넣어 국회 세종 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의 임기 내 건립을 약속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대선 후보 당내 경선 토론에서도 “일단 용산 집무실을 쓰면서 청와대를 보수해 들어가고, 장기적으론 세종에 집무실을 지어 가는 게 최종 종착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자기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실과 국회의 세종시 이전이 공론화하는 이유는 국정 운영의 효율성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한 행정수도 건설은 결국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방 균형발전이라는 현실적 문제 외에도 행정부 내 부처 간 협업과 교류 등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목표가 함께 담겨 있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실과 국회까지 세종시 이전이 추진되고, 최종적으로는 이들 기관이 모두 세종에 모여 국정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가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자신들의 공약과 역행하면서까지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하려는 이유는 뭘까? 이 대통령은 ‘북극항로 시대’라는 다소 낯선 용어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경로·비용 크게 줄어드는 ‘북극항로’
북극항로는 말 그대로 북극해를 통과하는 새로운 해상 운송로를 말한다. 북극해를 가로질러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해상 경로다. 북극항로는 러시아 북부 해안을 따라가는 북극해 항로와 캐나다 북부 해안을 따라가는 북서항로, 북극점 주변을 지나는 북극점 항로로 나뉜다.
과거에는 두꺼운 해빙으로 인해 연중 운항이 불가능했다. 기후 변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운항 가능 기간이 점차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30년께 여름철 북극 중심을 통과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북극항로가 이목을 끄는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아시아와 유럽 노선 경우 기존 수에즈 운하를 거치면 약 2만2000㎞를 달려야 한다. 북극항로를 통하면 1만5000㎞까지 줄어든다. 운송 시간으로는 35일에서 25일로 짧아진다.
운송 시간은 곧 운송 비용 절감을 뜻한다. 화주(화물 주인) 입장에서는 비용과 시간 모두를 단축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물류망 안정성이 높다. 기존 노선의 수에즈 운하는 좌초 사고 위험이 크고 호르무즈 해협은 인근 지역 반군들의 공습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반면 북극항로는 이런 위험이 적어 국제 공급망 차원에서 변동성이 낮다.
북극항로 시대가 열리면 부산항은 지리적으로 최적의 위치로 평가받는다. 부산항은 액화천연가스(LNG) 추진 선박에 연료 공급이 가능한 항만이다. 북극항로는 지정학적 특성상 친환경 선박만 통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는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장거리 상선의 경우 북극항로를 오가는 데 있어 LNG와 같은 연료 공급이 필수다.
부산항은 이미 세계적인 환적항으로서 화물 운송의 기반 시설도 갖추고 있다. 부산항은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의 보급, 정비, 물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은 행정수도 완성으로 국정 효율성을 높이는 것과 북극항로 시대를 준비해 신해양시대를 선도하는 과제 가운데 후자에 더 높은 비중을 뒀다고 봐야 한다.
해수부 기능 재정립 통해 전문성·역할 키워야
단순히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북극항로를 선점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해수부 이전을 시작으로 북극항로 시대에 필요한 조직과 재정, 기반 시설, 법적 근거까지 뒤따라야 할 보완 장치 마련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북극항로 관련 연구와 정책 수립, 국제협력 기능을 부산으로 집중하고, 전문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 전문성 없는 단순 이전으로는 북극항로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역량을 갖추기 어렵다.
해수부 기능 자체를 재배치하고 강화할 필요도 있다. 북극항로 시대 필수 산업인 ‘조선’과 ‘해양플랜트’ 부분을 설계·조정·관리할 권능이 필요하다. 조직 개편과 인사 시스템 정비는 물론 지역 해양 관련 대학, 연구기관, 산업체와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도 필수다. 이런 것들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업무 공간 확보와 시설도 갖춰야 한다.
사실상 강제 이주하는 직원들 사기도 챙겨야 한다. 이주 직원들을 위한 주거와 교육, 의료, 문화 등 정주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유능한 인재를 기르기 어렵다. 교통 제반 시설 확충이나 다른 지역과의 접근성 개선, 특히 수도권과의 접근성 유지를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정부도 해수부 역할 확대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전재수 해수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 첫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해수부 부산 이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선 분야와 해양 플랜트, 항만 개발 배후 기반 시설 개발 권한 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후보자는 “북극항로 시대를 선도하는 핵심 부처이자 대한민국 성장엔진을 하나 더 장착하는 핵심 부처로서 해수부가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한다”며 “단순히 지금 모습 그대로 해수부가 옮겨가기보다는 기능과 역할,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산업부의 조선과 해양 플랜트 부문, 국토부의 항만 개발 배후 인프라, 행안부 유인도 정책 등 이것들은 한 몸으로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서도 “이건 여러 부처와 이견 조율을 해야 해서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차후에 북극항로 선도하는 대한민국 컨트롤 타워로서 해수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수부 구성원이 대한민국 성장동력의 하나다,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기능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징 아닌 실질이 중요…전략적 이원화도 고민해 봐야”[해수부 이전②]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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