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준식 크래프톤 딥러닝본부 응용딥러닝실장
신작 '인조이' 내 AI 캐릭터 개발 주도…엔비디아와 협력
대형언어모델 자체 개발 고려…정부 WBL 사업 도전장
"국가에 기술적 기여하는 것이 목표, 내부 자신감 충분"
'뛰어들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인식이 지배하는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 도래한 가운데, 글로벌 협력체제 구축 측면에서 가장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게임사를 꼽자면 단연 크래프톤을 들 수 있다. 글로벌 선두주자인 엔비디아, 오픈AI 등과 협력 소식을 잇달아 알리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AI를 통해 게임성을 향상시키는 한편, 자체적으로 대형언어모델(LLM) 구축을 고려하는 등 투트랙 전략을 가동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성준식 크래프톤 딥러닝본부 응용딥러닝실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크래프톤 사옥에서 데일리안과 만나 "그전까지 딥러닝본부가 생존을 목표로 존재해왔다면, '인조이' 성과를 통해 나름 조직의 존재 이유가 입증됐다고 본다"면서 "그 다음 스텝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경영진들도 AI 분야에 큰 의지를 보이고 계시는 만큼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성 실장은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석사·박사 과정을 마치고 삼성전자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AI 음성 비서 '빅스비'를 개발하는 등 보이스 에이전트 기술 개발에 전념하다가 2023년 크래프톤으로 적을 옮겼다.
합류 후 그는 크래프톤의 간판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위한 안티치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이용자들에게 눈도장 찍었다.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해 원활한 플레이를 저해하는 악성 이용자들을 추가로 탐지해 기존 안티치트팀의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을 제재했다.
엔비디아와 AI 캐릭터 'CPC' 개발…외부 시선 달라져
곧이어 그는 대작 '인조이'에 들어갈 AI 서비스 개발에 착수했다. 인조이는 20년 넘게 심즈가 장악하고 있는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에 도전장을 내민 작품이자, 인게임 콘텐츠에 AI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업계 주목을 한몸에 받은 게임이다. 지난 3월 얼리 액세스(앞서 해보기) 버전으로 출시된 지 일주일 만에 100만장 판매고를 올렸다. 인조이 개발팀이 AI를 적극 활용하고 싶다고 딥러닝본부에 먼저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성 실장은 "처음 인조이 스튜디오는 AI를 통한 UGC(이용자 창작 콘텐츠) 제작을 요청해왔다. 텍스트를 넣으면 그림을 그려주고, 이미지를 넣으면 게임에 3D 에셋을 띄우는 식"이라며 "이 중 후자인 3D 프린터가 내부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때부터 인조이 스튜디오 내부에 AI를 적극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UGC로 AI의 가능성을 엿본 인조이 스튜디오는 내부 과제였던 조이(캐릭터)들 간 알고리즘 구현에 AI를 사용하고 싶다고 딥러닝본부에 요청했다. 생활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 특성상 이용자들은 수많은 NPC(Non Player Character) 캐릭터들과 교류하며 관계를 쌓게 되는데, AI를 활용해 그물처럼 엮인 캐릭터 간 관계성을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로부터 인조이에 탑재된 CPC(Co-Playable Character) '스마트 조이'가 탄생했다. 이용자와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협력하며, 사람처럼 상황을 파악해 알맞게 대응한다.
성 실장은 "자금은 한정적인데 관계 복잡도는 높여야 하니 언어모델을 사용해보자는 의견이 있었다. GPT를 실험적으로 써봤는데 답변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CPC 프로젝트가 시작됐다"면서 "언어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셋도 일일이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크래프톤은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와 활발히 협력했다. 프레임 드랍이나 끊김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CPC를 위한 SLM(소형언어모델)이 필요했고, 엔비디아가 이를 담당했다. 엔비디아가 온디바이스 SLM을 제공하면 크래프톤이 자체적으로 축적한 데이터셋을 통해 SLM을 파인튜닝하고, 인퍼런스(추론) 코드를 구축한다. 그러면 다시 엔비디아는 이 모든 것들이 쿠다(엔비디아 칩 전용 소프트웨어)에서 잘 작동하도록 최적화 작업을 단행한다.
성 실장은 "인조이를 기점으로 외부 스튜디오와의 미팅에서 반응이 다르다. 이전까지는 본부에서 보여준 가시적 성과가 부족했다면 UGC, 스마트 조이 등으로 긍정적인 시선이 많아진 것 같다. 인조이 자체가 저희에게는 좋은 자산이 됐다"면서 "인조이가 이렇게까지 물을 부어줬으니 본부에서도 힘껏 노를 젓자고 일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체 LLM 구축 검토…사명감 갖고 AI 청사진 그리는 중
현재 딥러닝본부는 AI를 통한 게임성 고도화 그 너머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조직의 생존만을 목표로 했다면 이제는 사명감을 가지고 기술 및 사업적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자체 개발 LLM 구축도 고려 중이다. 이 일환에서 정부가 한국형 AI 모델 개발을 목표로 연내 추진하는 '월드 베스트 LLM(WBL) 프로젝트'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성 실장은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대표적인 것이 LLM인데, 내부에서는 충분히 구축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딥러닝 본부 내 연구 조직은 이미 초거대 모델에 대한 기반 기술 준비에 착수했다. 엔비디아와 협업하며 이들이 어떻게 언어모델을 만드는지도 많이 배웠다. 현재도 매주 미팅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 김창한 대표는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에 방문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휴머노이드 등 로보틱스와 에이전틱(Agentic) AI 등 차세대 기술 협력 방향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인력도 세 자릿수를 넘기며 딥러닝본부 규모도 계속 커지고 있다"며 "물론 많은 비용과 인원을 집행해야겠지만 경영진, 특히 (장병규) 의장님께서 국가를 위해 크래프톤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 힘 써보자는 의지를 보이고 계시다. 다음 스텝에 대해 충분히 자신도 있고,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자신했다.
물론 개발 스튜디오와의 AI 협력도 중요한 축으로 이어간다. 현재 배틀그라운드에 접목할 AI 팀원 '펍지 앨라이'를 개발하고 있다. 이용자가 펍지 얼라이와 자연어로 소통하며 적을 찾고 전투 전략을 세우는 식이다. 현재 인조이처럼 온디바이스 SLM 기반으로 제작할 것인지, 오픈AI의 GPT 같은 API(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쓸 것인지 검토 중이다.
성 실장은 "게임 제작에 AI가 도움되는 형태까지 도달하고 싶은 것이 본부의 목표"라며 "형태는 기술적 지원일 수도, 콘텐츠적 지원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게임은 노동 집약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의 반복 작업을 AI가 어느 수준까지 해소할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있는 단계로, 본부에서는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