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아우토반서 체험한 S클래스 자율주행 레벨 3 ‘드라이브 파일럿’
95km/h 이하 시 운전자는 풍경 감상, 車가 가감속·비상대응까지
게임·음악 검색까지 가능, 사고 책임은 車가…한국 도입은 ‘아직’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낮게 흐르는 산지, 간간이 보이는 주황빛 지붕의 마을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독일 남부 소도시 임멘딩겐의 아우토반에서 마주한 평화로운 풍경을 운전석에 앉아 느긋하게 감상했다.
심지어 감상을 공유하기 위해 몸을 돌려 뒷좌석 일행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를 보고 “운전 안 하고 뭐 하냐”고 호통을 준비하고 있다면 잠시 진정하길 바란다.
운전은 하고 있었다. 그것도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가 말이다.
벤츠 S클래스가 운전자에게 선사하는 사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운전석에만 앉으면 많은 것이 단절된다. 주행 중엔 조수석 사람이 음식을 건네줘야 하고 음악 한 곡도 손쉽게 고르기 어렵다. 시야가 묶인다는 건 사지가 묶인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지난해 유럽 출장에서도 직접 운전대를 잡았지만, 경치 감상은커녕 낯선 환경에 잔뜩 긴장한 채 전방 주시밖에 못 했다. 그런데 이번엔 속도 제한조차 없는 아우토반에서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며 달릴 수 있었다. 뜻밖의 사치였다.
이 사치는 급성장한 운전실력 덕분이 아니라 벤츠가 주는 선물이었다. 벤츠의 자율주행 레벨 3 기술, 드라이브 파일럿은 인간의 자율성까지 존중하는 셈이다.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로 드라이브 파일럿을 직접 체험해보니, 지금껏 경험했던 자율주행 보조 기능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국내 차량에서도 차간 거리 조절, 자동 정지 및 재출발 기능 등 레벨 2~2.5 수준의 기술은 익숙했지만, 어디까지나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고 전방을 주시해야 작동하는 보조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주행이 시작되고 자율주행 활성화 조건이 충족되자, 스티어링휠 엄지 그립 부근에 하얀 조명이 은은하게 켜졌다. 앞차가 존재하고 차량이 오른쪽 차선에서 주행 중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자 드라이브 파일럿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신호였다.
버튼을 누르자 스티어링휠 중앙에 얇은 초록색 원이 점등됐고 그 순간부터 차량은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고 앞차와의 간격을 조절하며 조용히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레벨 2와 마찬가지로 가속페달과 브레이크페달에서 발을 떼고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놓아도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달라진다. 시선을 돌려도 된다. 디스플레이에서 게임을 찾아보고 음악을 검색하기도 했지만, 여느 때처럼 시스템은 이를 막지 않았다. 원래라면 주행 중 제한됐을 기능들이었다. 국내에선 주행 중 내비게이션 목적지 검색조차 차단되곤 했지만 드라이브 파일럿은 운전자의 자율을 막지 않는다. 잠을 자는 것만 제외하면 거의 모든 행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자유가 무한하지는 않다. 시스템 종료 조건에 진입하면 차량은 곧바로 붉은 경고등을 켠다. 동시에 안전벨트가 여러 번 강하게 조여오며 “운전대로 돌아오라”고 명령한다. 운전자의 반응이 없을 경우 차량은 비상등을 점등하고 천천히 정지하는 절차까지 갖췄다. 자율주행의 책임과 권한이 오가는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설계돼 있었다.
현재 특정 고속도로 구간에서 시속 95km 이하 조건부 자율주행 승인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앞차가 시속 95km를 넘기거나, 공사 현장을 지나갈 때는 비활성화된다. 또한 우천과 같은 상황에서도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아쉽게도 자동 차선 변경 기능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 기능은 운전자가 책임지는 레벨 2이기 때문에 차량이 운전 책임을 지는 레벨 3와 동시에 작동할 수 없다. 그래서 직진만 가능하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그래도 드라이브 파일럿 모드를 누릴 때마다 들뜬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전방 주시 의무를 잠시 내려놨다는 이유로 배덕감(?)마저 느껴졌다. 어느 유명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넌 감동이었어’처럼 벤츠 자율주행 기술은 감동을 선사했다. 벤츠 관계자에게 진심을 듬뿍 담아 말하기도 했다. “어서 한국에도 좀 들여오시죠.”
의미 없는 채근인 것은 안다. 한국은 아직 레벨 3 자율주행 상용화에 필요한 법적·제도적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네시스 G90이 국내 최초로 해당 기술을 탑재하려 했지만 추가 검증 등의 이유로 연기된 바 있다. 공식적인 설명은 이렇지만, 레벨 3부터는 사고 발생 시 제조사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선뜻 상용화에 나서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벤츠는 한 발 앞서나가고 있다. 벤츠는 2021년 세계 최초로 레벨 3 조건부 자율주행 기술 ‘드라이브 파일럿’에 대한 국제 인증을 받고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벤츠가 승인 받은 시속 95km는 양산차에 적용된 조건부 자율주행 시스템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다.
이 시스템은 벤츠의 고급 세단 S-클래스와 전기차 EQS에 옵션으로 제공된다. 드라이브 파일럿은 독일 현지 기준으로 부가가치세(VAT)를 포함해 5950유로부터 시작하며 이미 해당 기능이 탑재된 차량의 경우 별도 하드웨어 교체 없이 OTA(무선 업데이트) 또는 서비스센터 방문을 통해 무료로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 타깃
-전방주시하다 인생 놓친 적 있는 당신
-사고 나면 “내 책임 아님”이라고 외치고 싶다면
▲주의할 점
-가장 치명적인 단점, 바로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
–자유에 익숙해질 즈음 다시 운전대로 복귀시켜주는 ‘벨트 경고’는 꽤 당황스러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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