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센터 자존심, 첫 통산 1만득점의 가치
외국인 선수와의 경쟁, 안티팬들 편견 딛고 대업
전주 KCC 서장훈이 정규시즌 통산 1만 득점의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까지 통산 9,998점을 기록 중인 서장훈은 19일 창원 LG와의 홈경기에서 2점만 추가하면 한국 프로농구 역사에 길이 남을 사상 첫 대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서장훈의 대기록은 단순히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농구사에 기념비적인 이정표라 할 만하다. 종목의 차이는 있지만 야구로 치면 송진우(한화)의 통산 200승이나, 장종훈(한화)의 통산 최다홈런(340개), 축구 우성용(울산)의 역대 최다골(115골) 기록 등에 비견될만한 업적이다.
불과 13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한국 프로농구에서 첫 1만 득점의 영광을 외국인 선수가 아닌 국내 선수가 차지했다는 의미는 각별하다.
초창기부터 외국인 선수가 주연이 되고 국내 선수는 조연으로 전락하는 다소 기형적인 형태로 발전해온 KBL에서, 서장훈의 1만 득점은 그야말로 토종 선수의 자존심을 세운 쾌거라고 할수 있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과 매치업을 이뤄야했던 포지션 특성상, 서장훈은 외국인들이 득세한 골밑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토종빅맨의 유일한 자존심이었고, 데뷔 이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늘 푸른 소나무와 같은 존재였다.
■ 서장훈, 1만 득점 대기록에 도달하기까지
한 명의 농구선수가 현재 KBL에서 데뷔해 1만 득점 고지에 오르려면 얼마나 걸릴까. 간단히 계산하면 시즌 당 1000점 이상을 10년 이상 기록해야 한다. 이것을 54경기로 환산하면 경기당 18.51점이 나온다. 즉, 1경기도 결장하지 않고 매 경기 20득점 가까이 꼬박꼬박 득점해도 강산이 한 번 변할 정도 시간이 흘러야 겨우 이룰 수 있는 수치.
역대 프로농구에서 한 시즌에 평균 20점 이상을 기록했던 국내 선수는 겨우 11명뿐이다. 이중 최소 두 시즌 이상 20점을 넘겼던 선수는 서장훈(7시즌), 김영만(4시즌), 문경은(2시즌), 현주엽(2시즌) 등 겨우 4명뿐이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지난 1998-99시즌 청주 SK(현 서울 SK)를 통해 프로무대에 입문하며 올해로 프로 11년차를 맞이하는 서장훈의 평균 득점 기록은 통산 461경기에 출전 21.7점(역대 1위)에 육박한다. 데뷔 이후 처음 3년간은 정규시즌이 아직 45경기 체제였고, 시즌 중 몇 차례의 국가대표 차출만 없었더라도 대기록은 지금보다 1~2년 앞당겨질 수 있었다.
서장훈은 데뷔 첫해부터 25.4 득점을 기록하며 전체 3위, 국내 선수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리바운드에서는 경기당 13.97개로 전체 1위를 차지했는데, 프로농구 역사상 토종 선수가 리바운드왕에 오른 것은 현재까지 서장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통산 리바운드에서도 4095개로 역대 1위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 토종 센터의 또 다른 자존심이라는 김주성도 한 시즌 10개 이상의 평균 리바운드를 기록한 경우는 전무하다.
서장훈은 이후 2004-05시즌까지 무려 7년 연속 평균 20득점 이상을 올렸으며, 지난 2007-08시즌까지 10년 연속 평균 16점 이상을 기록하며 득점에 관한한 한국농구의 역사를 새롭게 써왔다. 국내 선수만 놓고 봤을 때 득점 수위에 오른 것만 무려 7차례나 된다. 리바운드를 포함 20-10(득점-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한 시즌도 무려 4차례다. 서장훈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한국농구에서 한 시즌 20-10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그 희소성을 짐작케 한다.
서장훈의 포지션은 센터다. 상대적으로 활동 폭이 넓은 가드나 슈터와 달리, 센터는 매일 전쟁터와 같은 골밑에서 치열한 견제를 극복해야하는 운명이다. 여기에 서장훈같이 한 시대에 한명 나올까만한 뛰어난 선수는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도 서장훈은 아마 시절부터 상대의 집중견제에 표적이 되어야했고, 악의적인 파울성 수비로 인해 두 차례나 치명적인 목 부상을 당하며 선수생활의 기로에 섰던 적도 있었다.
더구나 프로에 와서 주로 그가 상대해야했던 선수들은 국내 선수들보다 한 수 위의 힘과 탄력을 겸비한 외국인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매년 수준 높은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하고 거친 수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서장훈의 기록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준 NBA급에 이르는 대형 외국인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던 자유계약 시절에도 서장훈을 완벽하게 막아낸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장훈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은 단지 개인 성적만이 아니다.
서장훈을 보유한 팀은 그의 존재만으로도 PO는 기본 옵션이었고, 언제나 우승후보로 평가받았다. 데뷔 첫 시즌(1998-99시즌)을 제외하고 서장훈이 있는 팀이 PO에서 나가지 못한 경우는 없다. 서장훈은 지난해까지 현역 최다인 10년 연속으로 소속팀을 PO로 견인했고, 두 번이나 우승(1999-00시즌 SK, 2005-06시즌 삼성)을 차지했다.
■ 서장훈 ‘한국의 노비츠키’
한국농구의 역대 센터 계보를 잇는 서장훈은, 정통센터 출신임에도 한국농구에서는 좀처럼 등장하기 힘든 독특한 타입의 선수로 분류된다.
장신 센터이면서도 웬만한 전문 슈터를 능가하는 전천후 슈팅 능력을 갖춘 선수는 서장훈 이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전무했다. 2m 이상의 선수 자체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에, 서장훈은 비교대상이 없는 엄청난 하드웨어에도 불구하고 정교한 중장거리슛으로 외곽에서도 득점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학 시절의 미국 유학과, 프로화를 겪으며 중장거리 능력의 개발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한 서장훈의 ‘선견지명’은 프로무대에서 빛을 발했다. 서장훈은 자신이 기록한 9.998점 중 843점을 3점슛(281/780)으로 기록했으며 통산 36.0%의 준수한 3점슛 성공률을 지니고 있다.
흔히 안티팬들이 서장훈의 외곽 공격 시도를 놓고 폄하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만, 기록에서 보듯이 서장훈의 득점에서 외곽 공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8.43%에 지나지 않는다. 서장훈의 장점은 어디까지나 거구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어였고, 외곽 공격은 서장훈의 득점루트를 다양화하는 하나의 옵션이기도 했다.
또한 서장훈의 3점슛은 대개 오픈 찬스에서 시도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것도 전술적으로 동료들이 세컨 리바운드에 가담할 준비가 되었던 상황에서 던진 슛이 많았다. 적어도 ‘난사’나 ‘슈팅센터’라고 할 만큼 골밑을 외면하고 서장훈이 외곽만 고집했던 경기는 없었다.
성공률이 안 좋은 것도 아니고 팀플레이에 지장을 줄 정도도 아닌데 선수가 자신의 장점을 포기해야할 이유는 없다. 래리 버드나 덕 노비츠키 같은 선수들은 장신임에도 슈터 못지않은 정교한 중장거리 능력을 보유했다. 특히 프로무대로 넘어오면서 매년 힘과 탄력에서 앞선 외국인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서장훈에게 특화된 뛰어난 슈팅 능력은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 안티를 넘어 성숙한 베테랑으로
사실 서장훈은 팬들 사이에서 대중적으로 그리 인기 있는 선수가 아니다. 예전에 비하면 이미지가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농구팬들에게 서장훈은 ‘판정에 불만이 많은 선수’ ‘백코트가 느린 선수’ ‘외곽슛 던지는 센터’ 같이 단편적인 선입견으로만 각인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한때 가요계의 문희준, 축구의 이천수와 함께 안티계의 ´3대 거성´으로 추앙받으며(?) 한창 백만 안티를 호령하던 시절에는 홈팬들에게조차 집중적인 야유를 받는가 하면, TV 중계카메라에서 서장훈이 판정에 거칠게 항의하는 장면만 클로즈업으로 잡아 친절하게 슬로우 모션으로 리플레이까지 보여줬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다. 지금도 서장훈과 관련된 기사에는 서장훈의 기량을 폄하하는 악플이 심심찮게 달리곤 한다.
서장훈은 코트 안에서는 언제나 상대의 집중견제와 악의적인 파울성 수비와 맞서야했고, 코트 밖에서는 안티팬들의 근거 없는 비난과 편견에 맞서 싸워야했다.
그러나 외부의 시선이야 어찌됐던 서장훈은 언제나 코트 위에 섰을 때 꾸준히 자기 몫을 다해줬고,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믿음직한 에이스였다. 코트 매너에 대한 숱한 오해도 적어도 한 가지는 바로 잡아야한다. 자신은 수많은 악의적인 파울에 시달려오면서도 정작 서장훈이 코트에서 비신사적인 파울이나 보복성 플레이로 누군가를 상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서장훈은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을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도전과 환경의 변화에 잘 대처해오며 여전히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진정한 프로’였다.
이제는 한국농구 사상 첫 1만 득점의 대기록을 수립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을 세운 서장훈에게 이제는 어엿한 한국농구의 ‘살아있는 레전드’라는 칭호를 붙여도 부족함이 없다.[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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