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 부품 기업들 '애플 의존도' 고민
"명쾌한 답 내놓기 어려운 현실 사업 방향 문제"
그럼에도 신시장 개척으로 비전 제시해야
애플 하남 스토어에 전시된 아이폰15시리즈.ⓒ데일리안DB
'특정 고객사', '미국 최대 IT 고객사'
애플이라는 회사를 지칭하는 은어(隱語)격 용어로,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한국 전자부품 기업 CEO들의 입에서 어김없이 올해도 등장한 단어다. 최근 수년간 한국 전자부품 기업들은 최대 고객사 애플로 인해 울고 웃고 있다. 글로벌 IT 시장을 선도하며 '쥐락펴락'하는 애플의 행보에 따라 주가와 실적이 움직이는 것은 물론, 사업 방향성마저 틀어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국내 전자부품 기업들을 두고 쏟아지는 우려는 '애플 의존도를 어떻게 낮출 것이냐'다. 그에 대해 업체들은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글로벌 IT 기기를 선도하는 제품을 출시하는 애플이 사실상 국내 전자부품업계의 가장 큰 손인 탓이다. 애플의 IT 기기에 탑재되는 부품 중 익히 알려진 것은 중소형 OLED 패널, 카메라모듈 등이다.
이같은 IT 시장의 큰 손을 확실한 고객사로 묶어두는 것은 기업 실적에 긍정적인 부분이다. 선선한 애플 그늘 속에 자리하고 싶은 부품사들이 많은 이유다. 오죽하면 업계 한 임원이 "(애플에 납품못해) 안달이다. 이렇게 확실한 농사가 어딨느냐"고 했을 정도다. 실적을 보장하는데 '높은 의존도'가 문제될 것이 있냐는 반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장기적으로 바라본 애플의 '환승이별' 가능성이다. 그나마 저가 경쟁 업체가 많지 않은 카메라모듈의 경우 사정이 낫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디스플레이 업계다. 2021년 애플은 아이패드에 OLED 채택을 확정지었고 이에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애플을 바라보고 중소형 IT용 OLED 투자 및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정작 애플은 이들에게 확답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OLED 분야에서는 애플은 중국 BOE라는 대안을 뒀고, 차기 디스플레이 패널 방향에서는 마이크로LED라는 각각의 대안을 두고 있다. 아직 국내 기업들의 기술이 중국보다 좀 더 '예쁘고', OLED가 마이크로LED보다 좀 더 '가까이'에 있는, 소위 '현 애인'의 위치에 있는 점은 다행이다. 다만 중국 OLED 기술은 기가 막힌 화장술로 예뻐지고 있고, 오스람을 배제하고라도 애플의 중국-대만 마이크로LED에 대한 호감은 짙어지고 있다.
'언제 환승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물론 애플에 대한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이야기겠으나, 국내 전자부품사들은 지난해처럼 애플에만 의존하던 상황을 반복해선 안된다. 호황에 기대는 것도 안될 일이지만, '변심'이 가능한 주체인 특정 기업에게 휘둘려서는 더욱 안될 일이다.
차기 먹거리에 대한 국내 전자부품업계의 고민, 그리고 세트업체들과의 협력도 필요한 때다. 시장 개화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만난 디스플레이 업계 한 고위 관계자의 말처럼 국내 전자부품업계가 가야할 길은 명확하다. "시장은 개화를 기다리기보단, 나서서 개척하는 것이다."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깊은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업계가 이 험로를 잘 넘어갈 수 있길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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