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치 보컬에서, 솔로 ‘신유진’으로 [D:인디그라운드(163)]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3.09.27 12:33  수정 2023.09.27 12:33

지난 수십 년간 국악은 ‘편견’과 싸워왔다. 한국 대중음악이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세계로 뻗어 나가는 사이 국악도 과거보다 더 과감하게 편견에 맞서면서 과거의 전통과 시대성을 담은 현대의 것들 적절하게 조합한 새로운 형태로 글로벌 팬덤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시도로 국악의 글로벌화를 이끈 대표적인 팀은 이날치다.


이날치의 역대 최연소 보컬이었던 신유진 역시 밴드의 중심에 서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고, 이제는 솔로 가수로서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지난 25일 발매한 새 앨범 ‘흥’을 발매한 신유진은 과거의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색채를 입혀나가고 있다.


ⓒ옥상훈

-이날치 밴드에서 탈퇴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이 궁금해요.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어요. 팀에서 나오고 나서 팀의 유명세를 조금 내려놓고 신유진으로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고요, 감사하게도 그 과정 중에 저를 찾아주는 분들이 계셔서 뮤지컬도 하게 되고, 여우락 페스티벌에서도 연락을 주셔서 생각보다 빨리 제가 만든 음악으로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그때의 작업이 앨범으로도 이어져서 지난 25일 저의 첫 번째 싱글앨범이 발매되었습니다.


-이날치 밴드에선 왜 나오게 된 걸까요?


팀 활동을 한지도 거의 5년 정도가 되어 가더라고요. 이 시간 동안 배운 것도 많았고, 소리꾼으로 해보기 힘든 좋은 경험도 많이 한 것에 감사한 건 분명해요. 그런데 비슷한 환경에 계속 머물러 있다 보니 매너리즘을 피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극복해보기 위해서 혼자만의 연습 시간도 갖고 새로운 일을 곁들여 보려고도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그리고 팀 멤버로서의 역할을 해내느라 제 개인적인 정비시간을 갖지 못하고 계속 활동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 버겁기도 했고요. 이런 상태로 버티다보니 노래를 정말 좋아하던 제가, 노래하는 일이 더이상 즐겁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런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분명 회복이 필요하다. 이대로는 팀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긴 고민 끝에 아쉬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죠.


-정말 아쉬움이 컸을 것 같아요. 그래도 말씀하신대로 이날치 밴드 활동이 헛되진 않았을 것 같아요.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어딜 가든 ‘아 그 친구!’ 하며 알아보신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팀 활동하는 동안 그런 것들을 맘껏 해본 것이 달라진 점 등이 팀 활동을 통해 얻은 것들인 것 같아요. 또 저에게는 엄청난 선배들인 팀 멤버분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음악을 해왔는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를 자연스럽게 공유하면서 음악의 시야를 넓혀갈 수 있었고요.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정통 국악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국악을 하게 된 이유도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셨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음악회도 정기적으로 가고 연극, 미술, 발레, 한국무용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셨죠. 사실 그중에 국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는데, 아마 여기저기 공연 보러 다니면서 스쳐 지나갔던 판소리에 꽂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제가 학교에서 배운 국악 동요를 명창 선생님들이 하시듯이 부르고 다니는 모습을 보시고는 엄마께서 판소리를 배우게 해주셨죠. 어렸을 때부터 목청이 좀 크기도 했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다양한 노래 중에 큰 목청으로 힘껏 소리를 쏟아내는 판소리의 창법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새로운 형태의 국악을 하는 것에 대한 경계가 별로 없었어요. 워낙 호기심도 많고 도전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다보니 선배들이 하시는 새로운 시도의 공연들도 그렇고, 뭐든 새로운 것들은 다 흥미로웠어요. 이날치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고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이런 작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어요.


-국악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사실 판소리를 처음 시작한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큰 슬럼프는 없었어요. 대학생이 된 후에는 여기저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공연하는 게 행복했어요. 지나고 보니 감사하게도 제가 참 좋은 분들과 공연을 해왔더라고요. 그렇게 쉼 없이 달리다가 크게 번아웃이 온 적이 한 번 있어요. 이날치 활동 초반이었던 것 같은데 그 이전에 활동하던 팀에 미안한 마음이 있어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로 두 팀을 병행하고 있을 때였죠. 방전되는 줄 모르고 젊은 열정으로 다 될 거라 생각하고 달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큰 코 다치게 된 거죠(웃음).


몸과 마음의 체력이 고갈되고 나서 다시 충전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번아웃에는 쉼이 최고의 약이라던데 이미 계약되어 있는 공연들도 있다보니 결국 푹 쉬지도 못하고 그 시기를 꾸역꾸역 지나게 되었어요. 지금와서보면 모든 일을 놓고 쉰 것 보다 마음을 달래가며 조금씩 일을 한 것이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시기에 제 주변에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들이나 가족이 있어서 무너지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옥상훈

-앨범 이야기를 해볼게요. 첫 솔로 앨범인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처음으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음악과 앨범 커버, 뮤직비디오까지 기획해보았는데 뭔가 하나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네요.


-이번 솔로 앨범 작업을 하게 된 배경도 말씀해주세요.


팀을 그만두고 나에게 어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까 생각하다가 DJ하시는 분께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배우게 되었어요. 친하게 지내던 동생과 언니를 끌어들여 함께 배우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서로의 음악적 취향에 자극받으며 놀듯이 음악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수업 숙제로 곡을 가볍게 만들던 중에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섭외 연락을 주셨죠. 그 연락을 받자마자 ‘곡을 잘 발전시켜서 무대에 세워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고 곡을 만들게 된 것이 앨범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앨범명이 ‘흥’이에요.


제가 처음으로 프로듀싱한 앨범이에요. 판소리 흥보가에 나오는 ‘비단’ ‘음식’ 두 곡을 담아보았어요. 평소에 재밌게 생각했던 판소리 대목 중에서, 가사가 조금 쉬운 대목을 골라서 작업했어요. 흥보의 이야기라서 앨범 이름은 ‘흥’으로 짓게 되었고요. 소리꾼이 잘 알고 있는 판소리의 숨은 이야기들에 직접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입혀보면 어떤 곡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작업이었고, 스토리 속의 캐릭터들도 2023년 스타일로 재해석해보면서 그 캐릭터들을 전자드럼, 베이스, 신스 멜로디, Fx 효과들로 표현해보려 했습니다.


-기존의 판소리를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창작하시는 분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 같긴 한데요, 내가 듣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 과연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까? 이상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불쑥 불쑥 올라와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날치의 음악과도 약간은 비슷한 색채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날치의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때의 경험을 참고해서 작업하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조금 비슷한 색채가 느껴지더라도 차차 그 안에서 저의 색깔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요즘은 국악도 젊은 세대들을 아우르는 시도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재미있는 안무를 붙여 ‘챌린지’ 형식으로 푸는 식이죠. 유진 씨의 이번 곡들도 그런 요소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비단’이라는 곡을 공연 때 하면 따라 불러 달라고 요청하는 부분이 ‘청공단 홍공단 백공단 흑공단’인데 그 부분을 활용한 챌린지나, 중간에 ‘아니리’라는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 역할을 나눠서 연기해보는 챌린지? 하하.


-최근 국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다지만, 여전히 국안인으로서 주변의 편견들이 느껴지시는 지도 궁금해요.


아직도 지루한 음악이라는 편견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소리꾼들은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인데 전통 판소리로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없다보니 자꾸 국악을 접목한 ‘노래’를 불러야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만 조금 관심을 가져주실까 말까 하니 항상 국악을 활용한 창작에 대한 숙제가 남아있는 느낌이에요. 지금처럼 다양한 시도를 해나가야겠죠(웃음).


ⓒ국립극장

-이번 앨범으로 얻고 싶은 성과들도 있을까요?


아직 큰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어요. 앞으로 더 좋은 곡을 쓰려면 사운드도 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고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제가 음악을 계속 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발전해나가겠다 하는 의미의 저의 가벼운 첫 발걸음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앨범 이후로 어떤 활동들을 펼쳐나갈지도 궁금합니다.


최근에 광고를 하나 찍게 되었고요, 제가 만든 곡들로 남산한옥마을과 북촌에서의 공연이 잡혀 있습니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정! 10월22일에 저의 두 번째 싱글이 발매가 됩니다. 곡은 써놓았는데 마무리 수정 중에 있고요, 첫 번째 싱글과 조금은 다른 몽환적인 느낌의 두 곡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도 말씀해주세요.


지금까지 큰 계획을 세우지는 않고 흘러가는 인생의 흐름에 실려 음악 활동을 해왔는데요, 그 흐름에 실려가다보면 또 잠깐씩 머물게 되는 과정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맡겨보려 합니다. 그래도 저에게 기본이 되는 전통에 대한 공부도 계속 해나가면서 창작활동도 이어나갈 것이라는 건 변함이 없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활동하면서, 혹은 활동 이전에 유진씨에게 터닝포인트가 됐던 사건이 있다면?


아무래도 대중음악씬에 조금이나마 얼굴을 비추게 된 이날치의 보컬로 활동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준 인생의 가장 큰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최종 목표도 들려주세요.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곡이 과연 있을까요? 하하. 언젠가 그런 곡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0

1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