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 취임 2년…위기극복‧혁신에 최적화된 리더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2.10.11 12:03  수정 2022.10.11 23:52

코로나19, 전기차 전환 파고 넘어 글로벌 톱3 등극

UAM,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선도자 역할

지배구조 개편, IRA 이슈 관련 어떤 해법 내놓을지 관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4월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맨해튼 제네시스하우스에서 진행한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회장’ 자리에 올라 그룹을 이끌게 된지 오는 14일로 만 2년이 된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리더였고, 정몽구 명예회장이 뚝심과 끈기로 글로벌 톱 플레이어들을 따라잡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였다면 정의선 회장은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활로를 찾고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선도자) 역할에 최적화된 리더로 불린다.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에 오르며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을 총괄했던 시기를 포함하면 ‘정의선 체제’는 총 4년을 채웠지만, 특히 2020년 10월 14일 회장 승진 이후 대내외 경영환경은 급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생산‧수요가 예측하지 못한 변화를 겪었고, 전기차 전환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그 와중에서도 미래 먹거리 발굴을 통한 포트폴리오 다변화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과제였다.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된 2020년 초.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일제히 긴축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주요국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와 이동 수요 감소에 따른 자동차 시장 불황이 예견된 데 따른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현대차그룹 산하 완성차 브랜드들에게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현대차‧기아의 주력 차종들의 모델 체인지가 이때 몰려 있었고,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라인업 확대와 해외 시장 저변 확대를 본격화할 시점이었다.


누가 봐도 신차 출시와 해외 진출을 미루고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며 ‘복지부동’할 상황이었지만 정의선 회장의 판단은 달랐다. ‘포스트 코로나’를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 하에 더욱 적극적인 시장 공략 전략을 단행했다.


제네시스는 코로나19 이후 GV80, GV70, GV60 등 SUV 라인업을 잇달아 출시했고, 중국과 유럽 시장에도 진출했다. 현대차와 기아도 SUV와 세단 신차들을 국내외 시장에 연이어 출시하며 대세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하 제네시스가 2021년 4월 2일 중국 상하이 국제 크루즈 터미널에서 ‘제네시스 브랜드 나이트(Genesis Brand Night)’를 열고, 중국 고급차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 론칭을 선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 회장의 판단은 옳았다. 팬데믹으로 위축됐던 소비를 한꺼번에 해소하려는 ‘보복소비’ 트렌드가 2021년 전 세계를 휩쓸면서 글로벌 자동차 수요도 급증했다. 최대 수혜자는 경쟁력 있는 신차를 준비해 놓고 있었던 현대차그룹이었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사상 첫 글로벌 3위 등극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량은 329만9000대로 일본 토요타그룹(513만8000대)과 독일 폭스바겐그룹(400만6000대)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정 회장은 양적 성장 뿐 아니라 질적 성장에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정 회장 체제 이후 제네시스 브랜드의 도약과 현대차‧기아의 SUV 비중 확대로 수익성 측면에서 눈에 띄는 개선이 있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난으로 생산차질이 본격화되자 제네시스·SUV 등 고부가가치 차량으로 생산·판매를 집중하고 해외 딜러에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줄이는 등 ‘판매믹스(차종별 구성 비율) 개선’과 ‘제값받기 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대차‧기아는 올 상반기 도합 106조5000억원의 매출과 8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반기에도 이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연간 매출액 200조원과 영업이익 17조원 돌파가 가능하다. 이는 정의선 회장 취임 첫 해인 2020년과 비교해 매출은 23%, 영업이익은 무려 280%나 증가한 규모다.


E-GMP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성공적인 전동화 전략도 정 회장의 공격적 리더십이 발휘된 결과다. 전기차 시장 진입 초기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위해 기존 내연기관 플랫폼 기반의 전동화 모델을 주력으로 내놓자는 내부 의견이 있었으나 정 회장은 전동화 전용 플랫폼 개발을 밀어붙였고, 이는 현대차 아이오닉 5와 기아 EV6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토요타와 혼다 등 현대차보다 업력이 월등한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집착으로 전기차 대응에 한 발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는 달리 현대차그룹은 공격적인 전동화 전략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로보틱스 비전 발표를 위해 로봇개 스팟과 함께 무대위로 등장하고 있다.(자료사진) ⓒ현대자동차그룹

미래 먹거리 발굴 측면에서도 정 회장의 과단성은 두드러진다.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정 회장이 2020년 1월 미국 가전전시회 CES에서 전세계 시장에 공개한 UAM(도심항공모빌리티) 사업 비전은 현재 자동차를 대체할 미래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각국 정부와 자동차, 항공, IT 등 다양한 업종 기업들이 UAM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또 다른 유망 미래사업으로 주목받는 로보틱스 사업의 경우 2020년 12월 세계적인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단숨에 기술력을 글로벌 톱 레벨로 끌어올렸다.


지난 2년간 위기 돌파와 혁신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 왔지만 정의선 회장의 앞에는 또 다른 과제들이 놓여 있다.


정의선 회장의 어깨를 짓누르는 가장 큰 짐은 지배구조 개편이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 해소는 정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안정적 지배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로 꼽힌다.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 합병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시장의 반대로 철회한 경험이 있는 정 회장으로서는 투자자들을 설득할 합리적인 대안 마련에 고심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국내외 언론 스피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이라는 돌발 변수도 정 회장이 당장 풀어야 할 과제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나,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IRA 시행으로 당분간 대당 최대 1000만원 가량의 가격 핸디캡을 안고 사업을 해야 하는 형편이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전기차 전용 공장은 최대한 서둘러도 2024년은 돼야 가동이 가능한 상황이라 그동안 판매 차질을 최소화할 정 회장의 ‘신의 한 수’가 절실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위기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정 회장 체제 하에서 현대차그룹은 여러 위기에 봉착했고, 급격한 산업 패러다임 변화도 겪어야 했지만, 정 회장은 지금까지 위기 돌파를 넘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리더십을 보여줬다”면서 “IRA 이슈나 지배구조 개편 이슈 역시 최적의 대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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