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개 철도부품사 "해외업체 국내 진출 반대…철도주권 지켜달라"

배수람 기자 (bae@dailian.co.kr)

입력 2022.09.02 17:41  수정 2022.09.02 17:43

국내 철도차량 부품업체들이 해외 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철도 시장 진출을 두고 입찰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일제히 호소했다.ⓒSR

국내 철도차량 부품업체들이 해외 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철도 시장 진출을 두고 입찰 제도를 개선하는 등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일제히 호소했다.


철도차량 부품산업 보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지난 1일 '국내 철도부품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 호소문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SR 등에 전달했다.


비대위는 "경쟁을 명분으로 해외 업체의 무분별한 국내 고속차량 사업 입찰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며 "정부 차원에서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지 숙고해 달라"고 밝혔다.


호소문에는 191개 국내 철도차량 부품업체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이들은 해외 업체의 국내 고속차량 시장 진입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이는 앞서 스페인 철도차량 제작사인 '탈고'의 국내 시장 진출 소식이 들리면서다. 탈고는 국내 철도차량 제작사인 A사와 컨소시엄을 맺고 9월 7일 코레일이 입찰공고 예정인 136량짜리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EMU-320 입찰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부품업체들은 "코로나19 영향 등 외부변수로 인해 어려운 환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발주 물량 회복에 따라 어렵사리 반등의 기회를 잡고 재도약을 위한 도움닫기를 하고 있었다"며 "최근 고속차량 발주 사업의 입찰참가 자격조건이 완화되면서 해외 업체의 국내 시장 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발주 물량이 해외 업체에 몰릴수록 기술 자립은커녕 해외에 종속이 될 것이고 이는 국내 산업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 업체의 국내 진출이 본격화하면 순수 국산 기술로 고속차량을 생산하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전체의 96%가량이 영세 사업장인 협력 부품 업체들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단 거다.


특히 탈고는 이번 코레일이 입찰하는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전무하다.ⓒ코레일

특히 탈고는 이번 코레일이 입찰하는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전무하다. 하지만 국내 입찰 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자격요소 문턱이 낮아지면서 아무 제재없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부품업체들은 "기존 일반 전동차 시장에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서 기술력이나 품질이 아닌 최저가가 우선되는 난데없는 치킨 게임이 벌어졌다"며 "완성차 제작사들은 저가의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단가를 낮춰 입찰 경쟁에 나서기 시작했고, 국내 부품제작사들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입찰 제도의 폐해를 설명했다.


국내 철도차량 입찰 제도는 응찰가를 가장 낮게 적어낸 업체가 수주하는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하고 있다. 철계 안팎에서는 이 제도가 입찰 업체의 기술력이나 과거 납품 실적 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정작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 안전과 편의를 살피지 못한다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부품 업체들은 "국내 부품 시장 침체는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는데 정책적인 도움은 고사하고 가격이 높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등 역차별을 당해왔다"고 강조했다.


입찰 가격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저가 중국산 부품 등이 해외에서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부품 업체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품질 개선에 대한 유인이 점점 없어지는 실정이다.


아울러 부품 업체들은 국내 고속차량을 두로 "오직 기술 자립이라는 일념 하에 정부와 국내 완성차량 제작사 및 부품 제작사들이 약 30여년간 2조7000억원을 들여 탄생시킨 첨단 기술 집약체"라고 부연했다.


한국이 세계 4번째로 고속철도를 상용화한 철도 선진국으로 거듭나기까지 국내 철도부품사의 사명감과 희생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만큼 국산 기술이 퇴색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달라고 호소했다.


해외사례를 보면 유럽의 경우 시행사가 발주를 하면 입찰 초청서를 발송한 업체들만 입찰 참여가 가능한 구조다. 여기에 자체 규격 규정인 'TSI(Technical Specifications for Interoperability)'라는 규제 장벽으로 비유럽 국가의 진입을 사실상 원천 차단된다.


부품업체들은 해외 업체 진입으로 안방에서조차 충분한 납품 실적을 쌓지 못한다면 더 이상 대외경쟁력을 키울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우려했다.


이들 업체는 또 "철도부품산업은 우리나라 철도 산업의 근간으로 철도 주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부품제작사가 지속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국내 시장을 보호해 달라"며 "정책 입안 시 철도산업에 종사하는 지자체와 공공기관, 부품제작사, 완성차량 제작사와 사전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추진한다면 국내 철도산업의 선순환 구조는 빈틈없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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