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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팔이' 추억 소환한 유튜브 구독경쟁 [이충재의 마켓노트]


입력 2022.01.17 07:00 수정 2022.01.15 12:31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금융맨=신의직장' 옛말…생존 위한 몸부림

'구독 실적' 압박에 "먹방해야할 판" 하소연

최근 MZ세대가 증권시장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자리 잡으며 증권사들의 유튜브 구독자 확보 경쟁이 뜨겁다. ⓒ연합뉴스 최근 MZ세대가 증권시장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자리 잡으며 증권사들의 유튜브 구독자 확보 경쟁이 뜨겁다. ⓒ연합뉴스

"OO유튜브에 들어가서 '구독'과 '좋아요', ‘알람설정’ 누르고, 주변 사람들도 한 번씩 눌러달라고 해줘. 우리 의리를 생각해서 가족들까지 10명 정도는 해줘야해. 꼭이다."


최근 만난 A증권사 인원은 요즘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이 같은 부탁을 한다고 한다. 증권사들의 유튜브 구독자 늘리기가 최대 과제로 떠오르면서 '실적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증권시장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자리 잡으며 증권사들의 유튜브 구독자 확보 경쟁이 뜨거운 상황이다. 이미 구독자 10만명 이상 유튜버에게만 주어지는 '실버버튼'을 받은 증권사도 수두룩하다.


증권가의 유튜브 경쟁 구도를 보면, 지난해 100만 구독자를 넘긴 키움증권과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의 3강 체제에 이어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이 추격하는 양상이다. 업계 순위와 유튜브 구독자 순위가 꼭 같은 것만은 아닌 셈이다.


이에 구독자 순위에서 밀린 증권사로선 ‘비상’일 수밖에 없다. 유튜브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먹방(먹는방송)'을 해서라도 구독자 수를 늘리라"며 목표치를 제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구독자 확보가 또 다른 실적 기준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선두 업체를 따라잡기 위한 윗분들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B증권사 유튜브 담당자는 "임직원들에게 자사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주기적인 시청을 독려하는 것은 예사이고, 업계 1위가 만든 콘텐츠를 해당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부서에 만들 것을 지시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유튜브 담당자는 "고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쉽고 친절하게 시장을 설명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먹방을 하며 주가차트를 설명해서라도 구독자를 늘리는데 사활을 걸어야하는 상황"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구독경쟁에 '먹방' 고민하는 금융맨


금융사의 과도한 판매목표 할당 관행이 '유튜브 실적경쟁'에서도 벌어지는 모습이다. 5년 전 스마트뱅킹이 최대 화두였을 때 금융맨들이 거리에서 애플리케이션 가입 영업에 나서며 '금융 앱팔이'라는 자조섞인 말이 유행할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결국 과도한 숫자 경쟁은 편법 논란과 부실 성장 문제로 이어졌다. 실제 지난해 A증권사 유튜브 채널은 비정상적인 구독자수 증가로 편법을 쓴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한 증권맨은 "업계에선 다 아는 얘긴데, 이게 금융상품이었으면 금융감독원의 징계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국독자 늘리기에만 혈안이 되다보니 정작 주요 증권사 유튜브의 '구독자 수당 조회수'는 1%에 불과한 실정이다. 구독자 100명 중 1명만 관련 영상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주요 증권사 채널을 들여다보면 다른 100만 구독자 유튜브 채널과 달리, 영상 조회수가 수천에서 수만에 불과한 콘텐츠가 적지 않다.


군대에 비교되는 딱딱하고 수직적인 집단인 금융사가 자율과 창의로 상징되는 유튜브에서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는 데 금융맨들도 공감하고 있다. 격변의 시대에 생존을 위해 유튜브에 뛰어들었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는 시각도 있다.


유튜브를 담당한 20년차 증권맨은 "구독자는 100만인데, 콘텐츠 수준은 그에 못 미치기 때문에 부실 상품을 파는 기분"이라고 했다. 증권가가 유튜브 시대에 '부실'을 쌓지 않으려면 가입자 확보에 치중하는 옛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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