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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일자리⑤] ‘쉽고 빠른’ 공공일자리만 매달리는 정부


입력 2021.09.13 07:01 수정 2021.09.12 11:42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일자리 정부’ 내세운 문 대통령

질 낮은 공공일자리만 늘려

양질의 민간 일자리 고민 필요

4050세대가 일자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취업을 원하는 중장년들이 일자리 박람회 채용 공고판을 보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4050세대가 일자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취업을 원하는 중장년들이 일자리 박람회 채용 공고판을 보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기준 연간 실업률은 4.0%를 기록했다. 박근혜 정부 5년(2012~2016) 평균 3.4% 보다 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3.7%보다도 높다.


고용률은 지난해 60.1%로 2012년 59.6%와 크게 차이가 없다. 2017년 현 정부 출범 직후 60.8%와 비교하면 오히려 0.7%p 낮아졌다. ‘일자리 정부’ 출범 4년여 만에 적어도 지표상 일자리 문제는 더 악화했다고 봐야 한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상반기 20~29세 경제활동인구 평균 실업률은 9.6% 수준이다. 같은 기간 전체 실업률 3.2%의 세 배에 이른다. 잠재 구직자를 포함한 청년 확장실업률(체감실업률)은 22.7%로 청년 4명 가운데 1명 가까이가 사실상 실업 상태다. 지난 4년 동안 청년 일자리 예산은 12.2% 늘었지만 일자리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4050세대는 일자리 정책에서 소외감을 호소한다. 정부가 청년과 노인 일자리에 집중하면서 경제 허리인 4050세대 일자리 예산은 줄고 있다. 그 결과 4050세대 실업률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이 2016년보다 0.5%가량 높아졌다.


노인 일자리는 지표상 나이진 듯 보이지만 질이 문제다. 늘어난 일자리 대부분이 공공근로와 같은 세금으로 만든 단순 노동이 많다. 평균 노동 시간도 1시간 28분으로 사실상 안정적 소득 창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노인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한 노인이 지난해 일자리 박람회를 찾아 상담하고 있다. ⓒ뉴시스 노인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한 노인이 지난해 일자리 박람회를 찾아 상담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외면한 민간 일자리…하반기 채용 계획 ‘無’

전문가들은 정부 일자리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나치게 공공 위주인 점을 꼽는다. 정부가 공공부문에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데 반해 규제개혁 등을 통한 민간부문 일자리 회복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민간 취업 시장에는 수년째 찬바람만 불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6일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21곳 가운데 32.2%만 채용 계획을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는 신규채용 계획이 아직 없거나(54.5%) 한 명도 뽑지 않을 것(13.3%)이라고 응답했다. 국내 5대 그룹(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또한 삼성과 SK만 공채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경연은 “신규채용 계획이 없거나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기업 비중이 전년 동기(74.2%)보다 다소 줄긴 했지만 작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외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았던데 따른 기저효과 때문”이라며 “최근의 코로나19 4차 대유행 기세를 고려하면 채용시장 한파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민간부문 일자리 위축은 정부가 공공일자리에 정책 중심을 두면서 더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시 “국가 위기와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일자리 문제를 민간에만 맡겨놓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나 통계청이 발표하는 경제지표나 취업동향에서는 공공일자리가 다수 포함되기 때문에 일자리 분야가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취업시장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 또한 “일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업종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난해보다 업황이 회복되면서 채용 여력이 나아지고 있다”면서도 “자발적인 퇴직자 비율이 줄어서 신규 채용 여력이 크게 늘지 않은 데다 기업들이 수시채용 등으로 경력자를 모집하면서 신입사원의 일자리가 빠르게 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부겸(오른쪽) 국무총리과 구현모(왼쪽) KT대표이사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KT융합기술원에서 열린 '청년희망ON' 프로젝트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년희망ON 프로젝트는 청년 일자리·교육기회 창출 사업으로, 정부가 맞춤형 인재 육성에 필요한 교육비 등을 지원하고 기업은 청년에게 일자리와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뉴시스 김부겸(오른쪽) 국무총리과 구현모(왼쪽) KT대표이사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KT융합기술원에서 열린 '청년희망ON' 프로젝트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년희망ON 프로젝트는 청년 일자리·교육기회 창출 사업으로, 정부가 맞춤형 인재 육성에 필요한 교육비 등을 지원하고 기업은 청년에게 일자리와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뉴시스
“정부, 고용지표에만 매몰…일자리 방향성 다시 고민해야”

정부의 공공부문 중심 일자리 정책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31조3000억원을 투입해 공공과 민간에서 총 211만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공공일자리 105만 개와 민간 일자리 106만 개를 지원해 버팀목 역할을 계속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105만 개 공공일자리 가운데 84만5000개가 노인 일자리다.


전체 일자리 예산은 올해 예산 30조1000억원과 비교해 3.9%(1조2000억원) 늘어났다. 사상 최대 규모다. 다만 민간부문 일자리 안정을 위한 고용장려금 관련 예산은 8조935억원에서 7조8011억원으로 줄었다. 정부는 “일자리 예산의 중점을 위기 대응에서 미래 대비로 전환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책에 전문가들은 일자리 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어렵지만 질 높은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 대신 쉽고 질 낮은 공공부문 일자리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이다. 공공일자리는 정부 지원이 끊기면 바로 사라지는 임시 일자리가 많아 노동의 질이 낮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세금으로 단기 일자리만 양산한다는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비정규직 규모는 2016년 8월 648만1000명(32.8%)에서 지난해 8월 742만6000명(36.3%)으로 94만5000명(14.5%) 늘었다.


송문희 정치평론가는 “지금 공공형 일자리는 수입 지속성이 없다”며 “계속된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다음에 신청하면 일자리를 못 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이든 민간이든 지속해서 일자리를 만들어나가는 게 국가의 몫”이라며 “민간이 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인센티브를 줘서 고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또한 “공공일자리는 정부의 궁여지책일 뿐”이라고 비판하며 “소득주도성장부터 시작해 지난 5년간 나온 여러 기업 관련 정책들을 거치며 현 정부는 일자리 창출 능력을 상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재정 투입만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공공일자리를 선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초대 인사혁신처장)는 일자리 정책 방향성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며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어 고용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생산성이라는 근원적 치유 없이 고용지표에만 매몰되면 헛바퀴를 돌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자리가 생각만큼 만들어지지 않자 정부는 90만 개에 달하는 공공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며 “이제 우리 사회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드는 저임금 단기 일자리라도 만들어서 해결할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세계 경쟁력을 유지하고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도록 해 양질의 일자리를 지킬지 방향성을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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