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KAL기 격추사건' 전모 담긴 외교문서 공개

김유연 인턴기자

입력 2014.03.26 16:11  수정 2014.03.26 16:15

외교부, 26일 1648권 분량으로 당시 상황 상세히 기록

1983년 269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대한한공(KAL) 여객기 격추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정부는 초기부터 소련에 의한 격추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대응한 정황이 외교문서 공개로 드러났다. 사진은 소련전투기의 피격으로 추락 파괴된 KAL 여객기 잔해들을 1983년 10월 김포공항에서 공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83년 269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대한한공(KAL) 여객기 격추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정부는 초기부터 소련에 의한 격추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대응한 정황이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외교부는 이런 내용이 포함된 1648권(27만여쪽)의 외교문서를 26일 공개했다. 공개한 외교문서 내용에 따르면 1983년 8월31일 뉴욕을 출발해 9월 1일 오전 6시 서울에 도착 예정이었던 대한항공 KE-007기는 도착 2시간 30분 정도 전인 3시 23분쯤 일본 북해도 근해에서 연락이 두절됐다.

대구 중앙항로관제국이 김포 레이더 관제실에 실종사고를 통보한 것은 5시 45분, 오전 6시 35분에는 청와대, 총리실, 안전기획부, 외무부 등 관련 부처에도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외무부는 긴급 전문 등을 보내 서울과 도쿄, 워싱턴의 외교채널을 가동해 미국, 일본과 삼각 소통 하면서 실종기 소재 및 사고 관계 파악 등을 시도했다.

오전 9시에는 미국 공군이 ‘기관 고장 후 추락’으로 보고 있다는 내용이 보고됐고, 10시를 넘어가면서 추락(격추) 내지 강제착륙설에 무게를 둔 보고가 집중됐다.

갖가지 설이 난무한 가운데 미국대사관측은 11시 16분쯤 “실종기가 소련 항공기에 계속 추격당한 것 같으며 소련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시각 일본자위대도 ”강제착륙설보다는 추락설이 더 신빙성 있는 것으로 본다“는 보고가 전해졌다.

이는 격추 사건이 발생한지 7~8시간이 지난 무렵이었다.

소련 외무성이 일본대사관의 강제착륙설 문의에 대해 “사할린에는 문제의 항공기가 없다”고 언급하자 정부는 ‘격추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소련 전투기 간에 ‘발사-격추’라고 교신한 내용에 대해 소련에 확인 요청을했다는 보고가 오후 6시 37분쯤 한국대사로부터 전해졌다.

일본 관방장관이 9월6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실을 공개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공개됐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소련은 이를 계기로 “대한한공 여객기가 고의적으로 소련 영공을 침입,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지속적인 착륙 요구에 불응해 격추시켰다”면서 격추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소련은 정당한 조치이며 앞으로도 같은 사안이 발생하면 똑같이 대처하겠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사건 이후 9월 12일 미국을 통해 소련에 배상을 요구하는 외교문서를 전달하려 했으나 소련은 국교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KAl기 격추 사건’은 1983년 9월 1일 뉴욕을 출발해 앵커리지를 경유,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07편 보잉 747 여객기가 사할린 부근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정부는 사고 발생 직후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청, 격추에 대한 항의를 했고 각국은 소련 항공기에 대한 운항 중지, 모스크바 취항 거부 등의 제재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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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연 기자 (yy908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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