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06.02.01 11:32 수정
나이 들면, 설날이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는 어른을 찾아뵙고 올 한 해 안녕(安寧)하심을 빌면서 덕담(德談)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손들을 만나 덕담을 들려주고 세뱃돈을 안겨주는 것이다.
나는 올 설을 그렇게 보내고, 조카 녀석을 위해서 지금 학교에 와 있다. 지금 여고2년이 되는 나의 조카는 광주 S여고에 다닌다. 녀석이 세밀한 성격에 공부에 대한 투지도 엿보여서 기대를 거는 참에 오늘 장모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에서 만났다. 그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덕담 대신 공부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로 하였다.
제정러시아가 혁명에 무너지고 왕당파였던 귀족 중에 만주로 이주해 온 유명한 사냥꾼으로 바이코프라는 사냥꾼이 있었다. 그는 만주 땅에 살면서 백두산 호랑이를 소재로 한, ‘위대한 왕’이라는 논픽션 소설을 써서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인물이다.
그 바이코프가 사냥 중에 만난 조선인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소위 사슴사냥꾼으로 불리우는 이들은 무기 없이 맨손으로 사슴을 산 채로 사냥하는 사람들이었다. 바이코프는 이들을 만나서 그들의 사냥이야기를 듣고 감탄을 금치 못한 바 있다. 나는 오늘 이 이야기를 조카에게 들려주면서, 대입을 준비하는 모든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 현명한 자세로 공부에 임하여 모두 대학입시에 승리하기를 바란다.
바이코프가 전하는 조선인 사슴 사냥꾼들의 이야기는 실화(實話)다. 개마고원 쯤에 사는 이들은 사냥꾼이면서 야생의 사슴을 잡아서 사슴목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슴을 기른다는 것은 오래도록 녹용을 생산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사슴사냥꾼들이 사슴을 만나면, 그 순간부터 추적이 시작된다. 무기는 없고 오직 징과 밧줄 뿐. 그리고 끊임없이 쉬지 않고 사슴이 간 뒤를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가끔씩 사슴의 휴식시간에 맞추어 징을 울리고 그저 말없이 사슴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수 백리를 가는 끈기가 유일한 무기일 것이다.
때로는 백두산을 지나 만주땅 깊숙한 곳 흥안령 산맥을 지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먼 거리를 그들은 쉬임없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십여 일을 넘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좇아가노라면 언젠가는 사슴은 멈추어 있고, 어느 절벽 근처에서 도망갈 생각 없이 그냥 멍하니 서있게 된다고 한다.
사슴으로서도 기가 막힐 것이다. 이놈의 인간들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일을 쫓아오니, 어디 잠인들 자겠는가. 아니면 마음 편하니 물이라도 마시겠는가. 조금 쉴라치면, 징소리가 들려오고, 거듭 거듭 징소리에 쫓겨 달리다보면 지치고. 그렇게 쫓기다 보면 심신(心身)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가 되어 마침내 탈진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사슴이 멍하니, 움직일 줄 모르고 서 있는 것은 바로 그 상태라 한다.
밧줄을 던져 묶고 눈을 가리우면 사냥은 끝나는 것이고, 그렇게 잡아서 자신들이 경영하는 목장으로 데려가서 길러 매년 녹용을 수확한다는 이 기막힌 사냥법이 바로 공부하는 방법이다.
사슴과 사냥꾼이 누구인가에 따라 공부는 달라진다. 만약 사슴이 자신이고 사냥꾼이 공부라면, 이 공부는 반드시 실패한다. 공부에 쫓기다 언젠가는 눈마저 멍한 사슴이 되어서 쓰러져 있을 것이다. 쫓기는 공부는 성공할 수 없다.
공부는 사냥의 대상이어야 한다. 너는 사냥꾼이고 공부는 사슴이어야 한다. 네가 공부라는 사슴을 사냥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가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게 쉬임없이 확신을 가지고 쫓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 공부는 도망갈 것을 포기하고 항복해 올 것이다. 그때 다만 공부를 안고 너의 목장으로 가면 된다.
그리하여 쫓는 너는 여유 있고 당당해야 한다. 쫓기는 자는 불안하고 쫓아가는 자는 여유롭기 때문이다. 공부는 불안해서는 안 된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랜 여정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쉴 생각은 해서는 안 된다. 사슴과 항상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와의 거리가 멀면 사슴을 놓친다.
만약, 사슴과 사냥꾼의 관계가 역전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이런 학생들을 수없이 보았다. 10월 쯤 되면 공부에 지치고 숨 막히는 긴장에 눌려 쓰러져 있는 아이들을 수없이 보았다. 가련하게도 공부가 사냥꾼이 되어서 자신을 사냥하도록 놔둔 것이다.
나는 나의 조카에게 이 바이코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인고(忍苦)의 세월에 경의(敬意)를 표한다. 지치지 마라. 바로 이 시기가 너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다. 너의 목장에 푸르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수많은 사슴의 무리들이 뛰노는 날을 준비하여라. 너는 사냥꾼, 공부는 사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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