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 공동 연구팀, '녹농균' 생존 원리 밝혀

수원 = 최규원 기자 (gyuwon@dailian.co.kr)

입력 2026.11.03 15:12  수정 2026.11.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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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학교 이창한(사진 왼쪽) 교수와 함수정 학생.ⓒ아주대학교 제공

국내 연구진이 여러 종류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대표적 병원균인 녹농균이 강한 산성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는 핵심 단백질을 발굴하고 독특한 분자적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


아주대학교는 생명과학과 이창한 교수와 이화여대 차선신 교수(화학·나노과학과) 공동 연구팀이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의 산성 스트레스 내성에 관여하는 분자 샤페론 ‘AchC(Acid-activated hand-like chaperone)’의 기능과 활성화 기전을 규명해냈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산성-반응 샤페론을 활성화하는 pH 의존적 2단계 구조 전환(pH-Driven Two-Stage Conformational Switching Activates an Acid-Responsive Chaperone)’이라는 제목으로 화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 학술지인 '앙게반테 케미 국제판(Angewandte Chemie International Edition)'에 지난달 17일 온라인 게재됐다.


아주대 이창한 교수와 이화여대 차선신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으며, 아주대 함수정 박사과정 학생과 이화여대 정연주 박사과정 학생이 공동 제1저자로 함께 했다.


녹농균(綠膿菌)은 다양한 항생제에 내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병원균으로,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에게 폐렴, 혈류 감염 등 심각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녹농균은 또한 의료 환경뿐 아니라 토양과 물 등 다양한 자연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뛰어난 적응 능력을 갖추고 있다.


녹농균과 같은 세균이 생존 과정에서 마주하는 대표적인 위협 중 하나는 산성 스트레스다. 일례로 인체의 위벽 세포에서 분비되는 강한 산성의 소화액 ‘위산(胃酸)’은 외부에서 유입되는 미생물의 생존을 억제하는 대표적인 방어 수단 중 하나다.


세균은 이처럼 숙주 내부뿐이 아니라 숙주 외부의 다양한 환경에서 산성도 변화에 노출될 수 있다. 이러한 산성 환경은 세균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정상적인 구조를 무너뜨리고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어 세균의 생존을 위협한다. 따라서 병원성 세균이 산성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극복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세균의 환경 적응과 생존 능력을 규명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다.


특히 녹농균과 같은 그람음성세균은 세포 외막과 내막 사이에 ‘주변세포질(periplasm)’이라는 독특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 공간은 외부 환경과 비교적 쉽게 물질을 교환하는 외막의 특성으로 인해 산성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주변세포질에는 영양분 수송과 환경 감지 등 세균의 생존에 필수적인 단백질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산성 환경에서 이들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단백질이 바로 ‘분자 샤페론(molecular chaperone)’이다. 분자 샤페론은 다른 단백질이 올바른 구조를 형성하도록 돕거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단백질이 변성되어 서로 엉겨 붙는 현상을 막는 일종의 ‘단백질 보호자’다. 분자 샤페론은 세균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체에 존재하며,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단백질 항상성(protein homeostasis)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주변세포질에는 세포질과 달리 샤페론의 작동에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아데노신 삼인산(ATP)이 존재하지 않아, 단백질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한 작동 방식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이러한 독특한 환경에서 녹농균이 어떻게 단백질을 보호하고 산성 스트레스를 극복하는지에 주목했다.


공동 연구팀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녹농균의 주요 유전형인 ‘Clone C’ 균주에서 수평적 유전자 전달을 통해 획득된 스트레스 내성 유전자군(tLST)을 살펴봤다. 그리고 이 유전자군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AchC 단백질(AchC1, AchC2)이 산성 환경에서 단백질을 보호하는 샤페론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주변세포질에 위치하는 AchC1의 유전자를 제거하면 녹농균의 산성 스트레스 생존율이 크게 감소하는 반면, 주변세포질에서 AchC 단백질의 발현을 증가시키면 산성 내성이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AchC가 산성 스트레스 상황에서 세균의 생존을 돕는 중요한 방어 인자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팀은 나아가 X선 결정학을 이용해 AchC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고, 산성 환경에서 단백질이 활성화되는 구체적인 분자적 기전을 밝혀냈다.


흥미롭게도 AchC 단백질은 손가락과 손바닥, 엄지손가락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중성 환경에서는 두 개의 단백질이 마치 ‘두 손을 맞잡은 듯한’ 형태로 결합해 있음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구조적 특징과 산성 환경에서 활성화되는 기능을 반영해 기존에 ‘YfdX’로 알려졌던 단백질을 ‘산성에서 활성화되는 손 모양의 샤페론(Acid-activated hand-like chaperone)’이라는 의미의 ‘AchC’로 명명했다.


특히 이번 연구의 핵심 성과는 AchC가 산성도 변화에 따라 두 단계에 걸쳐 구조를 바꾸며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중성 환경에서 AchC는 두 단백질이 맞잡은 이량체(二量體, dimer) 형태로 존재하며 샤페론 활성이 억제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 pH 4.0~5.5 수준의 약산성으로 변하면, 단백질의 말단 부위인 C-말단 구조가 느슨해지면서 샤페론 활성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단계에서는 두 단백질이 결합한 이량체 형태가 유지된다.


이후 산성도가 더욱 강해져 pH 3 이하에 도달하면, 맞잡고 있던 두 단백질이 완전히 분리되어 단량체(單量體, monomer)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감춰져 있던 단백질 결합 표면이 노출되면서 샤페론 활성이 더욱 강해진다. 마치 맞잡고 있던 손을 풀어 다른 물체를 붙잡는 것처럼, AchC가 변성된 단백질을 붙잡아 서로 엉겨 붙는 현상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2단계 활성화 기전 덕분에 AchC는 약산성부터 강산성에 이르는 폭넓은 환경에서 단백질을 보호할 수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산성 스트레스가 해소된 이후의 작동 방식이다. 주변 환경이 다시 중성으로 돌아오면 AchC는 결합했던 단백질을 방출하고 원래의 이량체 형태로 되돌아간다. 이때 AchC는 변성된 단백질을 다시 정상적으로 접힐 수 있는 상태로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출된 단백질은 본래의 구조와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아데노신 삼인산(ATP)과 같은 별도의 에너지 공급 없이 주변 환경의 산성도 변화만으로 조절된다. 즉 AchC는 산성도를 감지하는 ‘센서’와 단백질을 보호하는 ‘샤페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정교한 분자 스위치인 셈이다.


이번 연구는 세균이 외부의 급격한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아데노신 삼인산(ATP) 없이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보호하는 새로운 분자적 전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크다. 특히 AchC와 유사한 단백질이 살모넬라, 크렙시엘라 등 여러 주요 병원성 세균에서도 발견되고, 관련 유전자들이 수평적 유전자 전달을 통해 확산되어 왔다는 점에서 다양한 세균의 스트레스 적응 기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나아가 환경 변화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 샤페론 단백질의 작동 원리는 향후 병원성 세균의 생존 능력을 조절하는 새로운 감염 제어 기술뿐 아니라, 특정 환경에서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기능성 단백질 개발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산성 환경에서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 치료용 단백질이나, 산도 변화가 큰 산업 공정에서도 안정적으로 기능하는 효소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아주대 이창한 교수는 “이번 연구는 병원성 세균이 산성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분자 샤페론이 수행하는 핵심적인 역할과 그 정교한 활성화 기전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번에 규명한 산성-반응 샤페론의 작동 원리를 바탕으로 향후 병원성 세균의 스트레스 대응 능력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새로운 감염 제어 전략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동 연구에서 아주대 이창한 교수 연구팀은 녹농균의 유전체 분석을 바탕으로 AchC 단백질을 발굴하고, 유전자 결손 및 발현 조절을 통한 생리학적 기능 분석과 단백질의 생화학적 작용 기전 규명을 주도했다. 특히 다양한 세포 내(in vivo) 및 시험관 내(in vitro) 실험을 통해 ▲AchC의 산성-반응 샤페론 활성 ▲기질 단백질과의 결합 및 방출 ▲단백질 기능 회복 과정을 분석했다.


이화여대 차선신 교수 연구팀은 X선 결정학을 기반으로 AchC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고, 구조적 특징과 주요 아미노산 잔기의 기능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산성도 변화에 따른 단백질 구조 전환과 샤페론 활성화 사이의 관계를 분자 수준에서 밝히는 데 기여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교육부 G-LAMP 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신진 및 중견연구지원사업, 해양수산부와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R&D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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