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워페어4'로 싸우는 어르신들, '게임 안 하는 분탕'은 그만 [기자수첩-ICT]

박상준 기자 (psj96@dailian.co.kr)

입력 2026.10.26 15:48  수정 2026.10.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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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 다룬 게임에 쏟아진 정치적 해석

정쟁보다 필요한 것은 콘텐츠를 이해하고 산업을 키우는 관심

북한의 악독함보다는 전쟁 자체의 참혹함을 묘사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4'. 트레일러 영상 캡처.

게임 이용자들이 싫어하는 부류 중 '겜안분'이라는 게 있습니다. '게임 안 하는 분탕'의 줄임말입니다. 게임은 하지도 않으면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아는 척하고, 이용자 사이에 싸움을 붙이는 사람을 뜻합니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든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든. 즐겁게 게임하던 사람들에게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규모가 좀 큽니다. 외국 게임사가 만든 게임 하나를 놓고 정치권과 기성세대까지 나서 '국가적 겜안분'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 인피니티 워드가 개발한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4' 이야기입니다.


세계적인 흥행 시리즈의 최신작인 이 1인칭 슈팅 게임(FPS)은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벌어진다는 가상의 상황을 다룹니다. 북한의 공격에 맞선 한국군의 전투와 국제적인 음모, 북한 권력층 내부의 갈등이 이야기를 이룹니다.


이를 두고 북한을 지나치게 악마처럼 묘사했다거나, 분단의 아픔이 남아 있는 나라의 전쟁을 오락으로 소비해도 되느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반대편에서는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함께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게임이라며 반깁니다. 국정감사에서는 청년들이 게임에 호응하는 이유까지 정부의 대북 대응과 연결하는 주장이 등장했습니다.


게임을 사랑하는 한 청년으로서 처음에는 철 되면 돌아오는 지긋지긋한 게임 유해론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듣고 보니 더 황당합니다. 이제는 게임을 정쟁의 소재로까지 끌고 가려는 걸까요. 평소에는 높으신 분들이 관심도 주지 않는 게임 시장이 이런 관심이라도 받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인정받기가 여전히 이렇게 어렵나 싶어 씁쓸합니다.


기자로서 논란에 간섭은 해야겠지만 '겜안분'이 되지 않기 위해 주말 내내 직접 플레이해봤습니다.


※ 이하 내용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게임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북한 악마화도, 강경대응 찬가도 아닌 '이야기'

한국군 주인공 '박현준'은 갓 입대한 이병입니다. 전쟁을 이끄는 전략가도, 거창한 이념을 설파하는 인물도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전쟁에 휘말린 신병이 살아남고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그의 시점에서 펼쳐집니다.


특히 초반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박현준과 부대원들이 지나는 거리는 오늘날 서울 종로3가의 야장 거리처럼 평화롭습니다. 사람들은 길에서 술을 마시고, 군인과 민간인이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편의점의 풍경도 익숙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이 편의점을 들렀다 나오는 짧은 사이 공격이 시작되고, 조금 전까지 일상을 즐기던 사람들이 참혹한 시신으로 변합니다. 익숙한 야장 거리가 순식간에 참상으로 바뀝니다. 북한을 향한 맹렬한 적개심보다는 '전쟁의 참혹함' 자체를 느끼도록 만드는 장치입니다. 방금까지 평범했던 사람들의 일상이 높으신 누군가의 결정 한 번에 지옥도로 변하는 간극이 충격적으로 묘사됩니다.


주인공 박현준 이병은 평범한 징집병으로서 고뇌와 두려움을 안고 전장을 전전합니다. 인게임 캡처.

전쟁이 벌어지는 경위도 알아볼까요. 시리즈의 주요 인물인 '존 프라이스 대위'는 국제적 무력 분쟁의 흑막, 러시아의 '아처'를 추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현실적 여건에 한계를 느끼고 범죄조직인 카르텔과 손을 잡습니다. 카르텔은 아처에게 'EMP 장치'를 배달하는 의뢰를 받았는데요, 존 프라이스는 아처와 대면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EMP 장치를 운반합니다.


EMP 장치는 강한 전자기 펄스로 전자장비와 통신체계 등을 마비시키는 장치입니다. 문제는 작중에서 그것이 북한으로 넘어가 한국을 공격하는 데 쓰인다는 것입니다. 악인 아처를 잡겠다는 존 프라이스 개인의 정의감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그 선택이 다른 사람들(한국인)에게 재앙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외부 세력의 공작과 권력자의 욕심, 스스로 옳다고 믿었던 사람의 그릇된 판단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단순한 '악독한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남북 대결' 구도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평화로운 거리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합니다. 인게임 캡처.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라며 반기는 쪽도 게임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헛다리 짚은 건 마찬가집니다. 이 분들이 혹시라도 게임을 직접 해 봤다면 발작버튼이 눌릴 포인트도 많습니다.


게임이 북한 권력자들을 그리는 방식은 '악마화'라는 말로 뭉뚱그리기 어렵습니다. 작중 북한의 최고지도자 '리승호'는 아버지 사후 지도자 자리를 세습했지만 정작 자신은 세습과 강압적인 통치에 회의적입니다. 전쟁보다 인민의 삶을 걱정합니다. 오히려 전쟁에 회의적인 그를 암살하고 전쟁을 밀어붙이는 쪽은 여동생 '리주영'과 아처입니다.


북한 지도자를 오히려 현실보다 호의적으로 그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입니다. 적어도 작중 묘사된 북한 사람 모두가 전쟁만 바라는 악당은 아닌 것입니다. 리주영을 수행하는 북한군 고위 간부 '고진혁' 역시 불합리한 명령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체제에 저항하며 한국군과 협력합니다. 굳이 게임의 메시지를 따진다면 권력을 쥔 일부의 선택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군이 적 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서 북진통일의 환호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프라이스의 선택과 그 대가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정의를 위해 타인을 어디까지 희생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북한군 주요 간부 고진혁은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기만 하는 악마가 아닌, 끝없이 죄책감을 느끼는 입체적 인물로 묘사됩니다. 인게임 캡처.
판단은 이용자의 몫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런 온갖 프레임은 게임을 게임으로 온전히 보지 못하기 때문에 씌워지는 것 아닐까요. 하나의 산업이자 창작물로 보기보다, 이용자에게 특정한 사상과 가치관을 주입하는 무언가로 여기는 시선 말입니다. 기성세대와 정치권에 그런 시선이 남아 있으니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도 반복됩니다.


현실에 미칠 악영향을 따질 생각이었다면 하다못해 게임이 현실을 얼마나 과장하고 있는지부터 봤어야 합니다. 게임에는 플레이어가 바라보고 지정한 곳에 박격포탄이 떨어지고, 이병 한 명이 온갖 무기와 중장비를 다루며 적 포대와 벙커를 무력화하고 적장까지 제거하는 등 '비현실적 요소'로 가득합니다. 이런 게임을 현실의 안보 정책 평가서처럼 붙잡고 있어 봐야 우스워질 뿐입니다.


현실 한국을 상세하게 묘사했지만, 결국 가상 세계입니다. 인게임 캡처.

정작 이용자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캠페인, 즉 스토리 모드에는 호평이 나오는 반면 멀티플레이에서는 이동과 교전 방식 등에 불만이 제기됩니다. 서로 조작 실력을 겨루며 상대를 쏴 맞히는 게임인데, 그 핵심 재미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겁니다. 게임을 평가하겠다면 이런 이야기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용자들은 게임이 재미있는지를 따지는데, 밖에서는 누구의 정치적 주장에 유리한지를 따지고 있습니다.


정치 하시는 분들이 이왕 인기 게임을 놓고 토론을 벌여 화제성을 높이고 싶다면 더 건설적인 방향도 있습니다. 콜 오브 듀티는 세계적인 흥행 FPS 게임 시리즈입니다. 한국에도 배틀그라운드 같은 FPS 글로벌 성공작이 있습니다. 이런 도전이 더 많이 나오고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해 보면 어떨까요. 이런 게임을 잘 만들어 국부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늘릴 방법을 논의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분들 주머니로 들어가는 제 세금이 덜 아까울 것 같습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대형 게임이 외국 제작사의 손에서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만큼 한국의 공간과 이야기가 세계 이용자들에게 통할 소재가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 제작사들이 그런 무대에 더 많이 설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고민할 계기도 됩니다.


비판을 하든 칭찬을 하든 먼저 해보고, 작품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 부터 봐야 합니다. 게임 이용자는 누가 던져주는 대로 사상을 받아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읽고, 판단하고, 비판하는 건 그들의 몫입니다. 게임을 게임으로 먼저 바라봐줘야 이후의 일도 논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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