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퍼펙트스톰-문화] 미사일이 지우는 5000년 역사… ‘디지털 복원 전략’ 시급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4.10 07:50  수정 2026.04.10 07:50

골레스탄 궁전·이스파한 유적 잇단 피해… 전쟁 장기화에 문화유산 소멸 위기

중동 전쟁이 40일째를 맞으면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을 합의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이미 우리 정치와 경제, 산업, 문화 전반은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4고(高) 위기를 맞으며 충격에 휩싸였다. 중동 전쟁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 종전 이후에도 한반도에 머무를 강력한 중동발 태풍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이 장기화되면서 페르시아 문명을 상징하는 유적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 수천년의 시간을 견뎌온 문화유산이 공습 한 번에 균열을 입고 장식과 구조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인류 공동의 역사적 자산이 영구적으로 소실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물이 더 훼손되기 전에 디지털 기록을 남겨 복원의 기초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파손된 골레스탄 궁전 ⓒ연합뉴스

8일 이란 문화유산관광부와 유네스코 발표 등을 종합하면, 이란의 문화유산 피해는 이미 우려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훼손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네스코는 3월 2일 공식 성명을 통해 테헤란의 세계유산 골레스탄 궁전이 완충구역 인근 공습의 파편과 충격파로 손상됐다고 밝혔다. 이후 이란 문화유산관광부 레자 살레히 아미리 장관은 4월 1일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골레스탄 궁전 내부에 깨진 유리와 파편, 손상된 구조물이 남아 있으며 복구에만 최소 2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는 수도에 그치지 않았다. 이스파한에서는 사파비 왕조 시기 유산인 체헬 소툰 궁전과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금요 모스크 가운데 하나인 자메 모스크도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문화유산관광부의 피해 집계도 빠르게 늘었다. 3월 중순 최소 56곳이던 박물관·역사유적 피해는 3월 24일 114곳, 3월 30일에는 131곳으로 증가했다.


전쟁이 문명을 지운 사례는 과거에도 반복됐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이 바미안 석불을 폭파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는 바그다드 박물관 약탈 사태가 벌어졌다. 전쟁은 현재의 생명과 삶만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사회가 오랜 시간 축적해온 기억과 문명의 흔적까지 함께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더 치명적이다. 기록 부재가 복원의 한계로 이어진 사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13세기 몽골 침입으로 황룡사 9층 목탑을 잃은 뒤, 결정적 기록을 충분히 남기지 못해 복원 논의에 오랜 한계를 겪어왔다.


반대로 기록이 남으면 복원의 가능성은 이어진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유적과 건물을 3D 데이터로 남긴 ‘백업 우크라이나’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이는 실물이 파괴돼도 향후 복원과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를 지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한국 역시 디지털 복원 기술 자체는 이미 축적해왔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관계자는 “보존 처리 과정에서 완전한 형태가 아닌 유물은 3D로 복원이 가능하다”며 국내에서도 관련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하회탈과 출토 금동불상 등 일부 파손·결손 유물에 3D 기반 복원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3D 기술은 국내 복원 현장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 문화유산 ODA 사업의 기록화 과정에도 일부 적용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3D 스캐닝은 기본적으로 기록화 사업을 할 때 들어가는 기술”이라며 “페루 마추픽추나 이집트 라메세움 신전 ODA 사업에도 일부 과정으로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가유산청은 전쟁으로 파괴된 유산을 직접 복원하거나, 교전으로 접근이 어려운 지역의 유산을 긴급 디지털 백업하는 형태의 지원 전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직접 인력 투입이 어려운 전쟁 상황에서 한국이 현실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지원 방식은 현지 연구자나 활동가가 확보한 사진, 영상, 3D 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비군사적 지원 체계다. 이미 평시의 복원과 기록화에 활용 중인 기술을 전시·재난 상황의 문화유산 보호 전략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가 향후 과제로 떠오른다.


이처럼 한국이 전쟁 피해 문화유산에 대해 현실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지원은 단순한 인도주의적 원조를 넘어, 향후 전후 복원 사업이나 관련 인프라 협력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실제 해외 사업 구조상 문화유산 지원이 곧바로 수주 우위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문화유산 복원 지원이 이후 입찰에서 한국 기업의 가점이나 수주 우위로 바로 연결된다고 보긴 어렵다”며 “발주 주체와 사업 구조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쟁이 끝난 뒤에는 관련 예산과 지원 방식을 새롭게 논의할 수 있는 만큼, 인도주의적 차원의 문화유산 지원 역시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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