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번째 얼음, 한국이 찾았다”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5.10.27 11:02  수정 2025.10.27 11:02

한국표준과학연, ‘얼음 XXI’ 세계 최초 규명

상온에서 2만 기압 초과환경서 물의 결정화 첫 관측

우주 생명탐사·초고압 소재 연구 새 전기 마련

KRISS 연구진이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셀 장치를 통해 구현한 초과압수의 결정화 과정을 관찰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원장 이호성)이 상온에서 2만 기압(2 GPa) 이상 초고압 상태에서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과정을 마이크로초(μs·100만분의 1초) 단위로 관측해, 세계 최초로 신(新) 얼음상 ‘얼음 XXI(Ice XXI)’를 규명했다.


물의 결정화 경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새로운 상(phase)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적으로 물은 온도가 0℃ 이하에서 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압력에 따라서도 고체(얼음)로 상변화를 일으킨다. 상온에서 약 9600기압(0.96 GPa) 이상이면 ‘얼음 VI’로 전이된다. 지금까지 전 세계 연구진은 온도·압력 조건을 변화시켜 총 20가지의 결정질 얼음상을 규명했다.


그럼에도 상온 고압 구간(0~2만 기압)은 상전이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새로운 얼음상 규명이 어려웠다. KRISS 우주극한측정그룹은 자체 제작한 ‘동적 다이아몬드 앤빌 셀(dDAC)’을 활용해 이 같은 한계를 돌파했다.


이 장치는 두 개의 다이아몬드 사이에 시료를 넣은 채, 미세 변위제어 장치로 압력을 10밀리초(ms) 이내로 가압해 초고압 환경을 실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존 결정화 압력(0.96 GPa)의 200%를 넘는 2만 기압 환경에서도 액체 상태의 물을 유지하는 초과압수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세계 최대 X선 레이저 시설인 ‘유로피언 XFEL’을 이용해 이 초과압 상태의 물이 결정화되는 과정을 마이크로초 단위로 촬영했다.


분석 결과, 이전까지 보고되지 않았던 5개 이상의 결정화 경로를 새로운 상전이로 확인했다. 여기서 생성된 구조를 해석해 21번째 얼음상 ‘Ice XXI’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새롭게 발견된 얼음 XXI는 결정구조의 단위포(Unit Cell)가 기존 얼음상보다 크고, 납작한 직육면체 형태의 대칭 구조를 지닌다. KRISS에 따르면 이 얼음의 밀도는 목성·토성 등의 얼음 위성 내부 초고압층과 유사한 수준으로, 행성 내 물질 구조 및 생명체 기원 연구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이윤희 KRISS 책임연구원은 “얼음 XXI는 우주형 물질 환경과 비슷한 밀도를 가져, 외계 생명 탐사 연구에 새로운 접근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근우 책임연구원은 “자체 개발한 dDAC 기술과 XFEL 실험을 결합해 순간적인 상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며 “극한환경 연구가 신소재·우주과학의 새 지평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초고온·초고압 물성측정 기술 개발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국제학술지 Nature Materials(IF 38.5) 10월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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