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현대문학의 거장’인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화려하고 난해한 만연체의 문장으로 종말론적 공포로 치닫는 세계를 묘파해온 그는 한 문장이 수십줄 또는 수십쪽에 이르는 형식 파괴적인 실험적 산문으로 세계 문학사에 자리매김해왔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시간) “종말론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그의 강렬하고 선구적인 작품 세계를 인정한다”며 크러스너호르커이를 122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은 2002년 임레 케르테스 이후 두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묵시록적 테러 속에서 예술이 가지는 힘을 아주 설득력 있고 환상적인 작품으로 확인시켜 줬다”고 소개했다. 안데르스 올손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은 중앙 유럽의 대서사 전통을 잇는 작가로, 프란츠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부조리와 그로테스크의 계보에 속한다”고 평했다.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그는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법학과 헝가리 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유학했다. 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그리스 등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일본·몽골 등에서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해왔다. 덕분에 ‘동양을 향한 시선’도 가능했다. 1985년 소설 ‘사탄탱고’로 데뷔했고, ‘저항의 멜랑콜리’ 등으로 명성을 쌓았다.
작가는 헝가리 최고 권위의 문학상 코슈트상과 산도르 마라이 문학상을 비롯해 독일의 베스텐리스테 문학상,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스위스 슈피허 문학상을 받았다. 2015년 헝가리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위한 일종의 ‘예심’으로 통하는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부커상 심사위원단은 당시 “놀라운 문장들, 믿기 힘들 정도로 깊이 파고드는 믿기 힘든 길이의 문장들, 엄숙함에서 광란, 의문, 황폐함으로 어조가 변하며 제멋대로 길을 가는 어조”를 언급하며 극찬했다.
‘묵시록’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표현이다. 난해하고 만연체의 문장, 형식 파괴적인 실험적 산문, 종말론에 대한 상상이 특징이다. 미국 대표 작가이자 평론가 수전 손택은 그에 대해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된 그의 작품은 대표작 ‘사탄탱고’를 비롯해 ‘저항의 멜랑콜리’(1989), ‘전쟁과 전쟁’(1999), ‘서왕모의 강림’(2008), ‘마지막 늑대’(2009), ‘세상은 계속된다’(2013)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사탄탱고’와 ‘저항의 멜랑콜리’, ‘서왕모의 강림’, ‘마지막 늑대’, ‘세계는 계속된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 6권의 책이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그는 이날 스웨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로서의 첫 번째 날”이라며 “매우 기쁘고 평온하면서도 긴장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문 중에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메달과 증서, 상금 1100만 스웨덴크로나(약 16억 4000만원)를 받는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노벨위원회는 생리의학상·물리학상·화학상·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데 이어 10일 평화상, 13일 경제학상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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