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콘진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관련 세미나
"WHO ICD-11는 권고사항…비채택국 분쟁 제기 가능성"
"자유무역·표현자유 강조하던 K콘텐츠 외교 전략과 대치"
"韓, 게임으로 돈 버는 국가…근거 기반 연구와 합의 필요"
WHO(세계보건기구)의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에 따라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할 경우, 이를 채택하지 않은 국가들이 국제 통상 분쟁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이 경고했다.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은 13일 오후 서울 중구 CLK 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특별세미나'에서 "미국, 영국, 일본을 비롯한 다수 국가는 게임이용장애를 공식 보건문제나 법적 규제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이는 WHO ICD-11가 국제적으로 권고적 가이드라인의 성격일뿐으로 각국의 법적, 정책적 채택 의무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제무역에서도 동일 질병 명칭이나 코드의 해석, 적용이 달라 경제적이나 외교적인 긴장 요인으로 작용해 국제통상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며 "콘텐츠는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트렌디하고 글로벌한 장르라고 K콘텐츠 외교 전략을 펼쳐왔는데, 이와 정반대되는 주장을 정부가 세계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 이슈는 2019년 WHO가 게임이용장애에 공식 질병코드를 부여하며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통계청이 관리하는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게임이용장애 코드를 수용할지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상황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KCD에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될 경우 게임은 공식적으로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로 규정돼, 각종 정책과 법령에서 새 규제 근거로 작동할 여지가 있어 우려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미국은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게임중독을 정식 정신질환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연방정부와 다수 주에서도 게임에 대한 규제를 정부가 아닌 민간 자율에 위임하고 있다. 일본, 영국, 독일 등도 산업 자율규제와 소비자 교육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국이 WHO 권고에 따라 게임이용장애를 정식 질병코드로 등재하고, 이에 근거해 산업 규제를 도입하는 경우 비채택국들은 WTO(세계무역기구), GATS(서비스거래에 관한 일반협정), TBT(무역기술장벽), FTA(자유무역협정)상 내국민대우, 시장접근 조항 위반 여부를 문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내국민대우란 한국이 외국 기업을 자국 기업보다 불리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시장접근 조항은 각 국가가 자국 시장을 외국 상품이나 서비스 등에 얼마나 개방할지 규정하는 것을 뜻한다.
김 센터장은 "질병코드 도입 후 이를 기반으로 규제를 만들었고, 그 규제로 본인들 산업이 침해받았다고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소송이 들어왔을 때 비례 원칙을 위반한 규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PC 시장에서는 미국계 게임사가 제작한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이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 게임사가 상위권을 석권하고 있는 콘솔 시장에서는 해외 업체들의 반발을 불러올 여지가 더 크다.
김 센터장은 비채택국들이 ▲한국의 규제 과도성 ▲게임이용장애 개념에 대한 국제적 합의 부족 ▲규제로 인한 무역협정의 비차별 원칙 위반 등을 이유로 분쟁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 센터장은 "승소를 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그동안 문화 콘텐츠의 자유로운 교류를 강조해 온 K콘텐츠 외교 전략과 반대의 주장을 해야 한다"며 "K콘텐츠 수출전략의 핵심이던 자유무역 기조, 표현의 자유 등에서 비채택국과의 정책 충돌은 문화외교, 경제이익 측면에서 핵심 갈등 지점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재명 정부는 K콘텐츠 활성화를 핵심 안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취임식에서 "문화가 곧 경제이고, 문화가 국제 경쟁력"이라며 "적극적인 문화예술 지원으로 콘텐츠의 세계 표준을 다시 쓸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박정호 한국정책학회 게임정책연구회 회장은 "게임이용장애의 정의, 원인, 결과 등에 관한 연구가 여전히 미진하다는 평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는 비과학적으로 비합리적인 규제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낙인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성급한 질병 분류에 앞서 근거 기반의 면밀한 연구와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질병코드 등재가 게임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지도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규제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비규제 대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슈에는 규제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제1원칙"이라며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코드로 등재될 경우 주관 부처들이 어떠한 규제를 만들지 정확히 파악은 어려우나 현시점에서 규제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이게 반드시 필요하고, 이 수단 밖에 없는지를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과거에는 게임을 스포츠로 생각하지 않던 시절도 있지만 지금은 한국이 게임으로 돈을 버는 나라가 되지 않았냐"면서 "이러한 사회에서 게임이 마치 알코올 중독과 동일한 수준으로 판단되는 것 자체가 우려스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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