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국내 BL(보이즈 러브) 드라마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시맨틱 에러' 이후, 수많은 BL 드라마가 쏟아졌지만, 그만큼의 파급력과 완성도를 동시에 지닌 작품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있다.
'시맨틱 에러'는 그간 웹툰·웹소설 기반의 서브컬처로 소비되던 BL 장르가 OTT 플랫폼을 통해 영상화되며 팬덤 확장을 확장한 사례가 됐다.
이에 '비밀사이', '블루밍', '소년을 위로해줘', '우리 연애 시뮬레이션', '비의도적 연애담', '해피메리엔딩', '트랙터는 사랑을 싣고', '러브 메이트', '풍덕빌라 304호의 사정' 등 다양한 BL 작품이 줄지어 제작됐다.
이중 상당수는 원작 팬층과 아이돌 출신 배우 캐스팅을 바탕으로 제2의 '시맨틱 에러'를 노렸지만 대중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평가할 만한 작품은 '나의 별에게' 시즌2 정도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 역시 시즌1이 '시맨틱 에러' 이전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기반을 다져온 작품으로, 새로운 성공 사례라 보긴 어렵다.
결국 '시맨틱 에러' 이후 본격화된 BL 드라마 붐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대중의 인식에 각인된 사례는 아직 없다는 점에서 장르의 외연 확장에는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조선시대 고수위 BL 웹툰을 원작으로 한 '야화첩'이 숏폼 플랫폼을 통해 실사화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작품성과 수위, 팬덤의 충성도 등 여러 면에서 이미 화제를 모은 콘텐츠지만, 이를 짧은 러닝타임과 모바일 최적화 콘텐츠로 재가공하는 데 대한 우려도 함께 뒤따른다.
숏폼 플랫폼은 접근성과 회전율이 높아 신인 배우 발굴이나 장르물 테스트에 유리한 구조에 유리하지만, 숏폼 콘텐츠를 둘러싼 국내 환경은 아직 실험 단계에 가깝다.
실제로 숏폼 전용 플랫폼 펄스픽은 론칭 4개월 만인 지난 5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서비스를 종료한 바 있다.
'야화첩'은 원작 자체가 성적 판타지를 전면에 내세운 19금 수위의 콘텐츠인 만큼, 이를 15세 이상 시청 등급에 맞춰 숏폼 콘텐츠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플랫폼 특성과 검열의 균형이라는 이중 과제를 떠안고 있다.
숏폼 콘텐츠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실험은 이어지고 있지만, 이제는 양적 확대를 넘어 기획 단계에서부터의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아직 많이 시도되지 않은 만큼, 그만큼 새로운 설계의 여지도 크다. 기획 단계부터 정밀하게 고려해 단순히 서사를 축소하기보다는, 짧은 러닝타임에 맞는 감정의 밀도와 관계 설계 방식이 수반된다면, 새로운 문법을 실험할 수 있는 장르적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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