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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통사 휴대폰 장려금 왜 비슷한가 했더니…이면엔 ‘정보교환’


입력 2021.06.14 06:00 수정 2021.06.13 22:46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구두로 작업해오던 ‘상황반’ 실체…공식 문서 통해 수면 위로

구체적 수치까지 명시...경쟁 비용 절감으로 소비자 혜택 축소

정보 공유 자체로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공정위 ‘예의주시’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가 작성한 ‘갤럭시S21 출시에 따른 시장현황 분석’ 보고서.ⓒ데일리안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가 작성한 ‘갤럭시S21 출시에 따른 시장현황 분석’ 보고서.ⓒ데일리안

그동안 의혹만 무성했던 이동통신 3사의 휴대폰 판매장려금(리베이트) 담합 정황이 공식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장려금은 이통사와 제조사가 대리점과 판매점에 단말기 판매 촉진을 명목으로 지급하는 지원금이다. 유통망은 장려금 중 일부를 소비자들에게 초과 지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통사들이 정보 공유를 통한 담합으로 경쟁 비용을 절감하면서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했던 합법적 지원금 혜택 기회를 뺏고 자신들의 이익으로 전환한 것이어서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4일 데일리안이 입수한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의 ‘갤럭시S21 출시에 따른 시장현황 분석’ 보고서에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가 서로의 장려금 수준을 구체적 수치로 공유한 흔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158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21’ 사전예약이 시작된 올해 1월 15일부터 2월 4일까지 12일간 단말기 유통망 조사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가 작성한 ‘갤럭시S21 출시에 따른 시장현황 분석’ 보고서.ⓒ데일리안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가 작성한 ‘갤럭시S21 출시에 따른 시장현황 분석’ 보고서.ⓒ데일리안
KAIT 현황 보고서 이통사에도 제출…담합 기초 자료 활용됐나

보고서는 작성 배경을 ‘갤럭시S21 출시에 따른 이통 3사의 경쟁과열로 인한 이용자 피해 예방을 위해 특별 안정화 기간 운영’이라고 밝히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KAIT를 활용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위반 행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법 위반 행위를 감시받아야 할 주체인 이통사가 ‘자율정화’를 명분으로 KAIT를 통해 ‘셀프 감시’를 받는 구조다. 이 작업을 위해 연 10억원 가량이 KAIT로 투입된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방통위뿐만 아니라 이통 3사에까지 공유됐다는 점이다. 보고서에는 각 사의 영업비밀인 장려금 규모가 1000원 단위로 기재됐으며 일일 단말 개통 수량까지 자세히 나와있다.


이통 3사가 상호 영업정보 교환 행위를 통해 장려금은 물론 합법적인 지원금 규모까지 유사한 수준으로 조정하면서 담합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보고서는 “특별 안정화 기간 평균 장려금 수준은 KT 28.6만원 > LGU+ 28.0만원 > SKT 26.8만원 순으로 나타났다”면서 “평균 장려금 운영은 KT가 소폭 높으나 격차는 크지 않은 수준으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보고서 내용에서 보듯 이통 3사 모두 평균 30만원을 초과하지는 않는 선에서 장려금 규모가 형성된 점이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한다. 자율적 법 준수 명분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가 담합을 위한 기초 자료로 악용된 셈이다.


단통법 위반 행위를 단속하고 근절하기 위해 작성된 것처럼 보이는 이 보고서가 이통 3사의 장려금 평균 수준을 유지하도록 유도하고 과징금을 경감받기 위한 자료로 활용됐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21’ 출시일인 지난 1월 29일 오후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전화 집단상가 전경.(자료사진)ⓒ데일리안 김은경 기자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S21’ 출시일인 지난 1월 29일 오후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휴대전화 집단상가 전경.(자료사진)ⓒ데일리안 김은경 기자
방통위, 이통사간 담합 알고도 방조했나..."사업자 자율적 부분 알지 못해"

보고서에서 ‘안정된 수준’이나 ‘양호’ 등의 용어가 활용되면서 이 문서를 보고받는 방통위도 이통사 간 담합을 알고도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보고서에는 “현장 계도 활동 등을 통한 점검과 사업자의 안정화 리셋조치가 확인돼 전일 대비 안정된 수준으로 평가된다”면서 “신규모델 장려금 수준이 ‘양호한 수준’으로 유지됐다”고 표현돼 있다.


‘30만원’이라는 암묵적 가이드를 유지하면 큰 혼란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간주한 것이다. 이통사들이 알아서 스스로 이 기준에 맞추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방통위는 장려금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시장 모니터링 지수를 관리하며 이통사들에 일종의 벌점을 부여하고 이를 제재의 근거로 삼아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10분 단위로 이뤄지는 유통망 모니터링에서 한 사업자의 가입자가 조금이라도 순증하거나 장려금 평균이 30만원을 웃돌면 정책을 죽이라는(축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며 “이 보고서는 KT가 갤럭시S21 출시 당시 가장 많은 불법을 저질렀다고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KT가 방통위로부터 시장 안정화 지시를 가장 많이 받았었다”고 말했다.


기준 금액을 설정해 놓은 것은 보이지 않는 담합이 사실상 이뤄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조장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방통위는 “이통 3사가 KAIT에 위탁해 보고서를 제출받는 것은 방통위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다”라며 “방통위는 정부 예산으로 KAIT에 모니터링(보고서)을 제출받고 있는 것으로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KAIT도 “단통법 위반사항 모니터링은 방통위에 보고되고 이통 3사에는 각 회사 위반사항에 대한 결과만 공유된다”며 “각사는 타사의 장려금 수준 등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모니터링 내용에 대해 서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담합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 현판.ⓒ데일리안 김은경 기자 방송통신위원회 현판.ⓒ데일리안 김은경 기자
규제당국 예의주시…이통사 “보고서 받았지만 담합 아냐”

그동안 구두로 은밀히 진행되던 이통사 간 정보 공유 행위의 실체가 문서를 통해 드러나면서 국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사업자의 상호 정보교환 행위만으로도 담합의 일종으로 보고 처벌할 수 있게 됐다. 가격이나 생산량 관련 정보교환을 통한 가격 책정도 담합 행위로 보고 규제를 강화한다는 취지다.


사업자 간 정보 교환 시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는 정보의 유형은 ▲상품 또는 용역의 원가 ▲출고량·재고량 또는 판매량 ▲상품·용역의 거래조건 또는 대금·대가의 지급조건 등으로 규정했다.


공정위는 지난 2월 ‘정보 교환 담합 규율을 위한 하위 규범 마련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해 개정법 관련 시행령과 심사지침 마련에 착수했다.


담합 행위가 갈수록 교묘해지는 만큼 시행령과 세부 지침 마련으로 사전에 방지한다는 방침이다. 법 개정에 이어 관련 시행령과 심사지침이 마련되면 그동안 처벌하기 어려웠던 담합에 대한 실제 처벌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를 근거로 보면 이통 3사가 이번 보고서를 활용해 판매량·거래조건 등의 정보를 교환하면서 담합을 위한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올해 12월 30일부터 시행돼 당장은 법 위반 사항이 아니다.


다만 이미 법 개정이 이뤄진 상태에서 이러한 일을 벌인 것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정보 공유 행위가 지속해서 발생할 문제점도 있다. 공정위도 해당 문서의 존재를 인지하고 조사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의원실 한 관계자는 “이통사의 마케팅비 증가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이 보고서를 통해 시장 경쟁이 위축되고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돈이 줄어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업자 간 정보 공유로 담합이 발생할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에 국회에서 이를 범죄 유형으로 보고 입법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문서화하고 시장 안정화에 도움 된다는 논리만 펼치는 것은 국회와 국민을 기만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서울 시내의 한 휴대전화 매장.ⓒ뉴시스 서울 시내의 한 휴대전화 매장.ⓒ뉴시스

이통사들은 이 같은 보고서를 제출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담합과는 무관하다고 부인했다.


SK텔레콤은 “시장 상황은 어느 사업자나 현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며 "보조금 평균 수치 정보가 실제 경쟁 상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KT는 “보고서 관련 내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만 답했다.


LG유플러스도 “보고서에 실린 데이터들은 작성 시점에서 과거의 데이터이므로 이통사들이 이를 근거로 어떠한 액션을 하기로 합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담합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과 달리 이통 3사는 지난 3월경부터 이달 초까지 매일 KAIT로부터 ‘통신시장협력본부 모니터링 일일 동향’ 보고서를 제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별로 따로 제공된 이 보고서 역시 해당 회사의 장려금 규모뿐 아니라 경쟁사의 평균치까지 적혀 있어 타사 정보 공유가 가능한 형태다. 3사가 평균치와 큰 차이가 나지 않도록 일정 수준의 장려금을 유지 중이었다는 점에서 의혹의 눈초리가 더욱 커질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망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은 이 문서를 통해 타사 장려금 정보를 수집하고 실제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하는 담합 행위를 벌여왔다”며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하던 ‘상황반’은 카카오톡 대화 등 온라인으로 넘어와 문서까지 남기는 등 더 대담해졌고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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