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05.06.01 09:56 수정 2005.06.01 09:56
“시간은 인간이 소비하는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시간은 인간이 소비하는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오프라스토스가 말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먼저 먹이를 줍는다는 속담도 다 시간에 관에서 얼마만큼 소중하게 쓰여야 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의류행사는 보통 열흘정도의 행사기간을 둔다. 금요일 오픈해서 다음 주 일요일 까지가 꼭 10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공휴일(일요일)을 두 번 끼우기 위해서다. 요즘은 목요일 날에 오픈하는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K기획이 행사 며칠이 지나고 여러 곳에 행사할 자리를 물색 중이었다. 이 행사장에는 행사진행에 관해 몇 개의 팀이 있다. ‘땅 보러가자’란 말은 행사장의 장소에 가보자는 말이다. 주로 전국의 빈 공터나 아니면 폐업한 곳, 축제장의 한 곳에 땅만 보러 다니는 사람이 있다. 주로 소개해주고 몇 푼의 돈을 받아 챙긴다.
만약에 자리가 좋은 곳이 나오면 몇몇의 주최자에게 넌지시 행사장의 규모와 위치, 주위 환경에 대해 설명해주고 기다린다. K 기획도 몇 건의 땅을 보고 왔다. 가 봐도 내키지 않은지 심사숙고(深思熟考)를 거듭한다.
“땅 나왔다는데….”
“어디야, 아, 거긴 행사한지 오래됐지.”
“얼른 가봐.”
K기획에게도 ‘땅 보러 온나’하고 전화가 왔다. 당장 달려 가야하는데 미적거린다. 너무 일찍 서두르면 덤터기 쓸까봐 기다리는 모양이다. 만약 장소를 물색하다 판단착오로 행사를 진행했다간 망하는 일이 다반사이기에 몇 곳의 장소를 놓고 줄다리기를 한다. 그런 시간이면 주최자는 뼈를 깍는 심적 고통이 심하다. 어느 행사라도 우연하게 대박이 오지 않는다.
오후 늦게야 그들이 물색해 놓은 장소로 떠났다. 현재 하는 행사장은 그럭저럭 본전 게임인걸로 안다.
“야, 태클 들어왔어.”
“뭐라고?”
“태클 건 놈이 누구야.”
“아, 백곰이여.”
‘백곰’이라면 K 기획이 생기기전에 함께 일한 곳의 주최자다. 둘은 이제 앙숙(怏宿)의 사이다. 1시간 늦게 도착해보니 백곰이 먼저 계약금을 지불한 뒤다. 일각천금(一刻千金)인데 K기획은 시간에 항복당한 기분이다.
의류 한 팀을 이끌고 가려면 다음 행사를 미리 잡아두어야 한다. 할 수 없이 K 기획은 경북 왜관으로 행사장을 잡았다. 읍내라 인구도 많지 않고 지금은 농번기 철이니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장소다.
현장에 가보니 물류센터 빈 창고인데 들어가는 입구에 텃밭이 있고 조금 넓은 마당과 창고가 있다.
“여긴, 어디 우리 큰 아부지 집 마당 같다.”
“……?”
부랴부랴 얻어 놓은 행사장이니 철 대문 입구며 텃밭의 상추가 파릇파릇 돋아난 마당이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낙동강의 방죽이 창고 뒤편에 있고 발자국 하나 없는 모래톱이 고요히 흐르는 강물을 놓아주고 있다.
“아, 씨팔 짜증나.”
“뭐야?”
“경찰서 조사받고 오는 중이요.”
“야 임마, 뭐 또 사고 쳤나?”
“네, 이빨보소.”
앞 이빨 두 개가 없다. 의류 유명 메이커 파는 장꾼 세 명이 허탈한 웃음을 지운다. 그 중 한명이 사고 친 모양이다. 하루 일찍 도착한 그들은 저녁을 반주(飯酒) 삼아 먹고 2차로 노래방까지 갔다. 거기서 맥주를 시켜먹고 거의 인사불성 상태에서 한 사람이(나이가 조금 어리다) 담배 피러 나왔다가 눈 안에 든 여자를 발견했다.
“아가씨, 커피 한잔 할래요?”
“….”
생전 처음 보는 아가씨한테 치근덕거리고 있는데 그녀의 애인이 그 광경을 어디서 봤는지 다짜고짜 걸어와서는 주먹을 날렸다. 둘은 순식간에 싸움이 붙었다. 그 여자의 일행 둘이 더 합세하여 우리 장꾼을 개죽음하듯이 때리고 팼다.
“야, 임마, 나무 애인 있는 줄도 모르고 달려드긴…맞아도 싸다.”
그 말에 희죽 웃는 그의 입안엔 쉽게 빠져나가는 바람이 보일듯 말듯 하다. 내일 또 조사받으러 가야 한다고 투덜댄다. 밤이 되니 낙동강 풀숲에서 날아든 온갖 잡 벌레들이 데모하듯 날아든다. 큰일이다. 한 장꾼이 아이디어를 냈다. 알전구 둘레에 흰 비닐로 농구대처럼 해 놓으니 하루살이들이 뜨거운 알전구 빛에 주눅이 들어 비닐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머리들 좋구먼….”
“밀양 아랑제 할 때도 저렇게 해 놓으니 좀 덜 하드라.”
시간은 돈이며, 분노(忿怒)를 치료하는 약재이다. 왜관에서의 행사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남은 며칠을 두고 주최자는 다음 행선지를 알아보려고 동분서주(東奔西走) 분주하다. 초여름이 일찍 왔는지 하늘의 낮달도 가물가물해 보인다. 일촌광음(一寸光陰) 불가경(不可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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