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칼럼

정성호, 대통령 모르게 ‘항소 포기’ 압박했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1년도 채 안 남긴 시점에 탄핵되고 나서 호기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권은 정부 19개 부처에 ‘적폐청산 TF’라는 것을 구성, 5년 내내 정적 주리 틀기에 몰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약체 국민의힘에 정권을 넘겨줘야 했던 요인 가운데는 국민의 ‘적폐청산 피로감’도 큰 몫을 차지했다고 여겨진다. 정치 블랙코미디 시절을 열었던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내줘야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지고도 대선에서 패배한 것에 대해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윤 전 대통령 취임 전부터 ‘퇴진·탄핵몰이’를 시작했다.“제가 취임하기 전부터 더불어민주당과 야권은 선제탄핵을 주장하면서 무려 178회 퇴진과 탄핵을 요구했습니다”(지난 2월 11일 윤석열 헌재 발언).헌법 경시하는 세력의 ‘헌법 존중 TF’당시의 야당과 야권은 정권의 핵심을 집요하게 공격해 마침내 목적을 이뤘다. 윤 정부는 어이없이 제풀에 나가떨어졌고 대통령 자신은 ‘내란 우두머리’, 핵심 측근들은 ‘내란 공범’, 국민의힘은 ‘내란 동조세력’으로 이재명 정권의 핍박을 받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정권 자살의 유인술에 말려들었다고 할 수가 있다.
정치보복은 절대로 않겠다던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하기 무섭게 정적에 대해 눈을 부라리기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이른바 ‘내란세력’과 당시의 측근·고위 인사들에다 전직 대통령 부인까지 3대 특검 수사의 대상이 되어 구치소로 재판정으로 끌려다니기에 바쁘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의 ‘정적 일소 작전’이라 할만하다.
이와 동시에 ‘헌법존중TF’라는 것을 이달 21일까지 구성키로 했다. 국무총리실 주도로 49개 중앙행정기관에 기관별 TF가 설치된다. 적폐청산TF처럼 정권 내내 활동하는 게 아니라 내년 1월까지 조사, 설 연휴 전에 결과 발표 및 인사 조치를 완료한다. 합동참모본부의 장성 전원 교체가 예고된 것으로 미루어 중앙행정기관의 고위공직자들도 무더기로 물갈이될 전망이다. 아무래도 이재명 5년이 조용하기는 글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 정부 숙청작업을 보면 조선시대 당파들의 극단적 대립과 그로 인해 벌어졌던 4대 사화가 이런 것이었을까 해서 공포와 경악을 금하기 어렵다. ‘내란세력 응징과 척결’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 그렇게 규정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부터 정부의 각료와 고위관료, 민주당과 그 주변 정당 및 정치세력은 진작 ‘내란’으로 규정했다. 이건 헌법 위반이 아닌가?
신권력은 이처럼 정적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징벌(자기들은 절대로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하니까)을 가하면서 한 편으로는 ‘이재명 구하기’를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하는 양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법을 고쳐 혐의의 근거 자체를 지워버리기, 대통령에 당선된 피고인에 대해 재임 동안 진행 중인 재판을 모두 중지하기 등을 시도하고 있다.
민간업자 범죄수익 지켜준 법무부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리고 재판소원제를 도입함으로써 재판 4심재의 길을 트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 대통령을 피고인으로 하는 개별 재판의 공소를 검사가 취하하게 하는 방안도 모색된다고 한다. 검찰의 대장동 개발 비리 민간업자 5인방 사건의 항소를 검찰이 포기하게 한 것이 그 시험적 시도일 수도 있겠다.
1심에서 관련자들이 중형을 선고받기는 했으나 수천억 원(검찰은 1심에서 7800억원이 넘는다고 주장)에 이르는 범죄수익에 대해서는 정확한 산정이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검찰이 범죄수익이라고 본 금액의 대부분은 항소심에서 다뤄져야 하게 됐지만, 검찰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추징이 불가능하게 됐다. 성남시 등이 민사소송으로 환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하나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범죄수익 대부분은 김만배, 남욱, 정영학 등이 차지한다. 앞으로 얼마의 형이 선고될지 모르지만, 그 형을 살고 나오면 김 씨는 재벌, 남 씨와 정 씨는 거부가 된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단군 이래 최대의 환수 실적’ 자랑이 퇴색하게 되긴 했지만, 성남시민과 개발사업 관련 주민의 엄청난 손실에 대한 책임은 부인할 근거를 마련한 셈이 됐다. 자신이 피고인인 대장동 등의 재판에도 검찰의 항소 포기는 유리한 여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법무부 장관이 ‘의견’ 제시의 형식으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사실상의 수사지휘를 했을 리 없다. 당초 노 대행은 “법무부의 입장을 듣고 서울중앙지검장과도 협의한 결과 항소 포기가 타당하다고 판단해 제가 책임지고 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검찰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고 여론의 비판 또한 혹독해지자 배경을 털어놓기 시작했다.“법무부 차관이 항소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몇 개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선택지 모두 사실상 항소 포기를 요구하는 내용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의견이라 했다지만 지휘로 들었다대검 과장들이 비공개 면담에서 사퇴를 요구하자 노 대행이 한 말이 그러했다고 한다. 수사지휘는 문서로 해야 한다. 그런데 차관이 정 장관의 판단을 구두로 전했다. 이는 불법적인 압박이다. 정작 정 장관은 노 대행과 전화 한 통화도 한 적이 없다며 개입설을 부인했다. 그렇다면 차관이 독단적으로 의견을 만들어 노 대행을 압박했다는 것인가?
친명계의 좌장으로 지칭되어 왔던 정 장관으로서는 ‘항소 포기’ 지시를 내리고 싶었을 법하다. 그렇다면 정식 수사지휘 절차를 밟을 일이었다. 차관을 시켜 구두로 사실상의 수사지휘를 한 것은 비겁한 흔적 감추기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당당하게 하지 못 할 일이라면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실의 우상호 민정수석비서관은 “우리는 그 사람들(김만배 등 민간업자들)이 패가망신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재산을 보존해 주려고 했겠느냐. 어이없는 분석이다”라고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항소 포기로 대통령이 이득을 보는 것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대통령 재판은 이미 다 중단됐고, 배임죄는 대체 입법을 어차피 할 것이다. 총체적으로 배임죄 형벌 규정을 국회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재판에 개입해서 대통령이 얻을 실익이 없다”(우상호, 11일 SBS ‘스토브리그’에서).대통령실은 아예 ‘모르는 일이라고’ 도리질을 했고, 정 장관은 전음입밀(傳音入密: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몰래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술)의 재주를 발휘했는지 이 차관에게 책임을 떠넘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수사지휘는 하지 않았으나 의견 전달은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얻을 실익은 없다면 정 장관이 얻을 실익은 뭔지 궁금하다. 대통령의 실익이 곧 정 장관의 실익 아닌가?
법을 사적 이익 방패로 삼아선 안 돼노 대행은 휴가를 내면서까지 거취를 고민하는 모양이지만 자리를 지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권 측으로서는 항소 포기에 성공한 이상, 노 대행의 거취 문제까지 고민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말을 잘 듣고도 버림받는 처지가 되기도 하는 게 권력 숭배집단의 풍토일 듯도 하다.
하기야 어차피 내년 10월 1일이 되면 검찰청은 폐지되고 검사 모두가 공소청으로 옮겨 앉아야 할 입장이다. 그게 싫으면 사직하고 변호사 개업을 하든가. 검찰 역사 76년(내년 기준)이 황망하게 막을 내리게 됐는데도 검사들은 제대로 항변조차 못 했다. 지금 와서 노 대행에게 분풀이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 리 없다. 그럴수록 집권세력의 비웃음이나 살 뿐이다.
현 정권은 이 대통령의 사법적 족쇄를 풀어줄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의 정신, 제정 취지 같은 것을 두고 고민하는 빛이 없다. 국민의 이름을 앞세우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국민주권시대’라는 게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가? 법치는 법의 지배다. 국민의 이름으로 국회가 헌법을 제정하고 개정하지만, 국민이 법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국민주권주의가 ‘법 위의 국민’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이는 집단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국민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그들의 공복인 대통령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법 위에 설 수 없다. 법을 사적 이익이나 안전의 방패로 악용해서도 안 된다. 이 당연한 민주법치국가 국민의 상식을 외면하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위해 법 장난을 계속하는 것은 민주헌정에 대한 반역이다.
이런 행태를 보이고 있는 정부와 그 여당이 ‘헌법존중TF’라는 것을 만든다고 하는 뉴스에 가가대소(呵呵大笑: 크게 소리 내어 웃음)할 뿐이다. 민주당은 헌법을 우회하는 기술은 익혔으되 헌법의 정신은 모르는 헛똑똑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참고인으로 법사위에 나온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를 윽박지르다 되레 압도당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당황해하던 모습들이라니! ‘헌법 존중’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실천하시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11월 12일

'내란가담' 공직자 솎아내기 '헌법존중 정부혁신 TF'에 공직사회 술렁… '적폐청산 시즌2'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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