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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 와중에 공수처가 있었더라면


입력 2019.10.17 03:00 수정 2019.10.17 05:53        정도원 기자

'검찰개혁' 됐더라면 '조국 사태' 없었을까

오히려 헤아릴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수도

'검찰개혁' 됐더라면 '조국 사태' 없었을까
오히려 헤아릴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수도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공수처 설치를 뺀 검찰개혁은 '앙꼬 빠진 찐빵'"이라고 공언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공수처 설치를 뺀 검찰개혁은 '앙꼬 빠진 찐빵'"이라고 공언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조국 사태'가 조국 전 법무장관의 사퇴로 마무리됐다. 그동안 국민 다수의 뜻을 거슬러 조 전 장관 비호에 사활을 걸던 집권 세력은 '한풀이'라도 하듯 자칭 '검찰개혁'을 우격다짐 밀어붙이려는 모양새다.

집권 세력 일각에서는 "'조국 사태'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는 말이 나온다. 집권여당 원내대표는 "공수처 설치를 뺀 검찰개혁은 '앙꼬 빠진 찐빵'"이라고도 했다.

과연 집권 세력이 주장하는대로 '검찰개혁'이 이미 이뤄졌더라면, 그래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설치됐더라면 '조국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국회에 계류돼 있는 공수처법안을 살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오히려 더 헤아릴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하 '법')을 살펴보자.

이에 따르면 조국 전 장관은 법무장관 후보자 시절에는 법 제2조 1호 아목 '대통령비서실 소속의 3급 이상 공무원(민정수석비서관)에서 퇴직한 사람'으로, 임명강행 이후에는 사목 '중앙행정기관(법무부) 정무직공무원(장관)에 재직 중인 사람'으로 공수처의 수사 범위에 해당한다는 점에 의문이 없다.

조 전 장관 뿐만 아니라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아들·딸도 공수처가 담당한다. 법 제2조 2호에서 '가족'을 설명하면서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모두 포함시켜뒀기 때문이다.

법 제24조에서 공수처는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수사를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이첩을 요청할 수 있고, 이첩을 요청받은 수사기관은 반드시 이에 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조 전 장관의 배우자와 아들·딸을 소환하는 등 수사에 나선 검찰에게 공수처가 사건의 이첩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은 반드시 응해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가 검찰의 손을 떠나, 대통령이 임명한 공수처장과 과반 이상이 비(非)검찰 출신들로 구성된 공수처 검사들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고위공직자와 가족들의 모든 범죄 혐의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것은 또 아니다.

법은 제2조 3호에서 고위공직자범죄, 4호에서 관련범죄를 규정하고 있다. 3호 가목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배임수증재죄 등을 규정하고, 4호 가목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와 공범이 성립하는 범죄, 다목에서 고위공직자범죄와 관련된 증거인멸 등을 규정한다.

또, 라목에서는 고위공직자범죄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고위공직자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죄로서 해당 고위공직자가 범한 죄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사문서위조 등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정경심 교수의 사문서위조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자택을 압수수색하려던 수사검사와 조 전 장관이 통화하면서 "장관이다"라고 밝히고 관등성명을 들은 뒤 압수수색과 관련한 지시를 했다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된다.

공수처, 검찰로부터 사건 빼앗으려 했을 것
거부하면 총장부터 수사검사까지 소환 가능


이른바 '검찰개혁'이 이뤄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설치됐더라면, '살아있는 권력'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를 수사하던 검찰에 대해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는 검찰총장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른바 '검찰개혁'이 이뤄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설치됐더라면, '살아있는 권력'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를 수사하던 검찰에 대해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는 검찰총장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처럼 양자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개연성이 높기 때문에 사건의 이첩을 둘러싸고 공수처와 검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예를 들어 '조국 펀드'와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검찰은 이첩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은데, 공수처는 법 제2조 4호 라목의 고위공직자범죄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죄라는 이유로 이첩을 요청할 수 있다.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의 이첩 여부를 둘러싸고 공수처와 검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면 사태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법은 제2조 1호 카목에서 공수처의 수사 대상으로 '검찰총장'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공수처는 법에서 이첩 요청에 응하도록 돼 있는데 이첩하지 않은 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라는 이유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현직 검찰총장을 소환하는 방법으로 압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윤 총장을 직접 수사·소환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압박 수단이 차고 넘친다. 법은 제2조 1호 파목에서 '판사 및 검사'를 수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3호 가목에는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도 포함돼 있다.

사문화된 조항이지만 공수처가 이를 들고나와 조 전 장관 일가를 수사하는 특수부 검사들을 하나하나 소환·기소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 '조국 사태'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변호인과 소환된 사건 관계인들을 대상으로 취재해 보도한 것이 많지만, 집권 세력은 어차피 다 검찰발(發)이라고 의심해왔던 마당에 공수처도 주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검찰총장으로서 '살아있는 권력'을 엄정히 수사하는 '특수부 라인'의 검사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공수처로 한 명 한 명 끌려가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문초받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면, 윤 총장인들 배겨낼 수 있었을까.

공수처 무소불위 폭주 앞에 국감조차 무력화
"이게 나라냐" 거리 내몰릴 국민만 죄인된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로 인해 무력화되면 국민만 죄인이 된다. 국민이 주말마다 거리로 몰려나와 진상규명과 혐의자 사퇴,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거리의 정치'가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로 인해 무력화되면 국민만 죄인이 된다. 국민이 주말마다 거리로 몰려나와 진상규명과 혐의자 사퇴,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거리의 정치'가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자료사진).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공수처의 폭주에 국민의 대의대표기구인 국회도 무력화된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조 전 장관이 법무부에 대한 국정감사 하루 전날 전격 사퇴한 이유에 대해 "국감은 인사청문회나 대정부질문과는 달리 자신의 발언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위증죄로 처벌된다"며 "과거 '최순실 사태' 때도 여러 공무원들이 위증죄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어, 조 전 장관에게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생기면 국회도 야당도 겁낼 것이 없다. 법 제2조 3호 사목에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 1항(위증)을 공수처의 수사 대상으로 정해놨기 때문이다.

국회가 상임위의 의결로써 국감에서의 위증을 고발하더라도 공수처의 전속 수사 대상이 되기 때문에 다른 수사기관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손을 댈 수 없다. 설혹 손을 대더라도 법에 따라 이첩 요청을 하면 그만이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폭주다.

그러면 아마도 검찰은 공수처법의 제한을 피해가며 조 전 장관의 동생이나 5촌 조카 등을 통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계속해서 시도했을 것이다. 공수처는 그런 기개 있는 검사를 소환하고 기소하며 압박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 하다하다 안되면 검찰총장도 공수처에 끌려나오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공수처가 버티고 있는 한, 검찰청법 제12조 3항에 보장된 검찰총장의 2년 임기는 말뿐이다.

공수처와 검찰, 청와대와 국회가 얽히고 설킨 아귀다툼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끊임없이 주말마다 거리로 몰려나와 찬반을 외치는 '거리의 정치'를 계속해야 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려 한 죄로 공수처검사들에 의해 줄줄이 기소당하는 특수부 검사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이들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게끔 하려 했다가 공수처에 끌려나가 망신을 당하는 검찰총장을 보며 국민들의 입에서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을 것이다.

'조국 사태' 와중에 민주당이 주장하는 '검찰개혁'이 이미 됐더라면, 그래서 공수처가 있었더라면 권력이 국민을 갈라놓고 흩어뜨려 서로 싸우게 만드는 국론분열의 상황은 영원히 일단락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까.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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