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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 받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서거 54주년 추모 세미나 열려


입력 2019.07.19 05:00 수정 2019.07.19 05:53        이슬기 기자

국내 첫 공식 이승만 대통령 추모 세미나

"건국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혁명"

다양한 면모 및 외면받는 이유까지 조명

국내 첫 공식 이승만 대통령 추모 세미나
"건국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혁명"
다양한 면모 및 외면 받는 이유까지 조명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의원회관에서 '미안하다 청년들아' 이승만 서거 54주년 추모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1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의원회관에서 '미안하다 청년들아' 이승만 서거 54주년 추모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7월 19일인 이승만 대통령의 서거일을 맞아 그의 인생을 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국내에서 공식적인 이승만 대통령의 추모 세미나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일 자유한국당 소속 여명 서울시의회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 서거 54주년을 맞아 서울시의원회관 제2대회의실에서'대한민국은 건국혁명의 나라'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는 독립투사, 건국 대통령, 청년, 페미니스트로서의 이승만 등 그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아울러 이승만이 조국에서 외면을 받는 이유에 대한 심도 있는 토의가 오갔다.

여명 의원은 세미나를 시작하며 대한민국 건국의 의미에 대해 상기했다. 여 의원은 "대한민국 건국을 통해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국가 이념으로 삼을 수 있었다"며 "건국이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이승만, 공부하는 독립투사부터 페미니스트까지…다양한 면모 갖춰

김학은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조 강연을 통해 독립 투사로서의 이승만에 대해 살펴봤다. 김 교수는 "여러 사람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할 때 이승만은 공부부터 했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는지, 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하는지를 알아본 것"이라며 "젊은 이승만이 나라를 되찾는 방법으로 '공부'를 택한 것은 지금도 교훈을 주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발제를 맡은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 이승만'에 주목했다. 류 교수는 이승만이 '조선의 틀'을 뛰어넘으려던 대가로 감옥은 물론 당시 누구도 생각지 못한 미국 유학이라는 가시밭길에 올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청년 이승만의 특징으로 당대 최악의 흙수저 집안 출신이라는 것과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은 것을 뽑았다. 류 교수는 "이승만은 조선이라는 기득권 자체를 거부하며 청년기부터 자신의 재능을 근대국가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데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렵사리 성취한 박사 학위를 배경으로 이승만은 미국의 지도층에 튼튼한 후원 세력을 확보해 후일 대한민국이 유엔(UN)의 승인 하에 독립국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며 "시대의 흐름을 앞서간 청년기 이승만의 선견지명 덕택에 대한민국이 건국 혁명을 이룩했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청년 패널들의 토론에서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이승만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여성 참정권 획득 운동의 역사가 전문한 우리나라에서 건국과 함께 여성 참정권이 명시된 것은 순전히 이승만 개인의 여성에 대한 존중 덕분이었다는 분석이다.

여명 의원은 "이승만은 독립운동 생애에 걸쳐 여성 교육과 계몽에 힘썼고 나라 만들기 과정에서도 여성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이승만을 도와 독립운동을 하고 건국에 참여한 여성들을 감히 건국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반도에 '자유' 정착시키 이승만, 왜 인정 못 받을까

세미나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건국해 번영의 토대를 닦았음에도 조국에서 외면 받는 현실에 대해서도 짚어냈다.

김다인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박사과정 학생이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번영의 토대를 닦았음에도 외면 받는 현실에 대해 풀이했다. 그는 윤치호의 일기 속 이승만을 살펴보며 이승만을 '바깥일에만 신경 쓴 아버지'에 비유했다. 찬찬히 살펴보면 이승만이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1898년 딱 한 해 뿐이라는 것이다.

이어 윤치호가 이승만을 두고 '급진파'라고 비판한 점을 들며 그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건국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원했다"며 "집에 있는 사람(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선물을 바라지도 않는데 이승민이 열심히 일해서 선물 보따리를 안겨준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국민들은) 혜택을 보면서도 그 선물이 뭐가 좋은 건지 아무도 깨닫지 못했고, 지금도 그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그러니 당연히 설 자리가 없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사회를 맡은 현진권 자유경제포럼 대표는 "5000년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를 선택하라면 1948년 8월 15일"이라며 건국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슬기 기자 (seulk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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