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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2년, 언론이 사라졌다


입력 2019.05.13 06:00 수정 2019.05.12 20:58        데스크 (desk@dailian.co.kr)

<김우석의 이인삼각> 신문(新聞)의 본질…‘새롭게 듣는 일’

언론통제가 강해질수록 민심은 더욱 요동칠 것

<김우석의 이인삼각> 신문(新聞)의 본질…‘새롭게 듣는 일’
언론통제가 강해질수록 민심은 더욱 요동칠 것


ⓒKBS 화면 캡처 ⓒKBS 화면 캡처

KBS가 생중계한 <문재인대통령 취임 2주년 대담>이 화제다. 대담을 진행한 송현정 KBS 기자가 중심에 있다. 예상대로 청와대 청원게시판엔 KBS와 송기자에 대한 성토글이 넘쳐났다. 인터넷 공감을 중심으로 비판과 신상털이가 ‘장난’이 아니다. 그러자, 청와대는 ‘더한 공방도 상관없었다’고 했지만, 속내는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낙연 국무총리가 총대를 멨다. 언론인 출신인 이 총리는 기자시절 인턴기자 교육에서 한 말이라며 "신문의 '문'은 '들을 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송 기자를 간접 비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십여년 기자생활을 한 중견기자를 인턴기자 다루듯 한 것이다.

이 총리는 페이스북에 이어서 썼다. “그러나 많은 기자들은 ‘물을 문’자로 잘못 아십니다. 근사하게 묻는 것을 먼저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잘 듣는 일이 먼저입니다. 동사로서의 ‘신문’은 새롭게 듣는 일입니다.” 이를 보면 송 기자를 비판한 게 틀림없어 보인다. 송 기자가 ‘듣지 않고 근사한 질문에 너무 심취했었다’는 비판이다. ‘말을 자르고, 인상을 쓰고, 거친 단어를 여과없이 동원하는 등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많다’는 친문네티즌의 비판을 그대로 받아 전한 것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 ‘문’자에 대한 해석은 있는데, ‘신’자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이 다룬 느낌이다. 두 글자 중 앞에 있기도 하지만, 신문(新聞)의 본질에 더 맞닿아 있는 글자인데 말이다. 이 총리도 위 문장에서 신문을 ‘새롭게 듣는 일’이라고 썼다. 이 말에 따르면 ‘새로운 이야기’를 취재하는 것이 기자의 본질적 소명이다. 항상 하던, 입에 발린 말은 뉴스로서 가치가 전혀 없다. 뻔한 이야기를 ‘순하게 듣는 것’은 그래서 기자의 본성과 충돌한다. 기자는 ‘새로운 일’을 찾도록 훈련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송 기자에 대한 이 총리의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

문재인정부 집권초기에 한 언론사 간부에게 들은 말이다. ‘이 정부에 검찰과 언론 중 먼저 하나만 손보라고 이야기했는데 말을 듣지 않아 걱정입니다’. 검찰과 언론은 조선시대로 보면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이다. 권력의 정점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기관들이다. 그러나 권력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 기관들을 권력의 아래 두고자 노력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감찰기능이 사헌부보다 간쟁기능을 갖는 사간원이 더욱 통제하기 힘들었다. 사간원은 권력에 맞서 꿋꿋하게 버텼다. 사간원이 역할을 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그렇게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었다. 왕권을 누르고, ‘교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과 ‘언론’을 동시에 통제하려 한다. 검찰은 권력에 순응하는 속성을 갖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언론은 그리 쉽지 않았다. 속성상 본능적으로 정부에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2년을 맞아 다양한 분야에서 평가가 있었다. 대부분 낙제점이거나 낙제에 버금가는 점수였다. 그런데, ‘언론의 자유’ 항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꼭 필요한 항목인데 말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삼고 있는 미국은 어떤 민주주의 가치보다 ‘언론의 자유’를 강조한다. ‘이단아 대통령’ 트럼프가 연일 ‘가짜뉴스’ 운운하며 공격은 하지만, 언론은 주눅들지 않고 할 말을 한다. 미국의 역사가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에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 교훈은 미국 수정헌법으로 제도화됐다. 1791년 효력이 발생한 수정헌법 제1조에서 제10조는 흔히 ‘권리 장전(Bill of Rights)’으로 불린다. 그 제1조에는 “합중국의 회의는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행위를 금지하거나, 언론 또는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또는 조용히 집회하고 피해를 구제받기 위하여 정부에 청원하는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하며 ‘언론의 자유’를 선포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교정의 기회’를 의미한다. 국가의 모든 정책, 제도는 순기능과 역기능(부작용)이 있다. 부작용이 순기능보다 커지면 정부는 이를 교정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은 순기능과 부작용을 비교·평가하여 드러내는 것이다. 국가에 이런 기능이 없다면 반듯이 ‘교조주의’에 빠진다. 역사는 ‘교조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국가로 하여금 헌법으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제도적으로 언론을 보호토록 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는 사라지고 ‘교조주의’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KBS 송기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정권은 우선 우월적 인사권을 이용해 공영방송부터 장악했다. 민영방송은 노조를 이용했다. 지상파방송은 여론형성의 기본 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 인허가 권한을 이용해 종편을 통제했다. 방통위의 모니터기능도 있지만, 언론관련 시민단체를 백분 이용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뉴스에 대해, 모니터 인프라가 강한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성토하고 항의한다. 민언련의 ‘언론 길들이기’ 방법은 다양하다. 먼저 홈페이지에 격문을 올린다. 다음은 방통위에 진정하고, 사안에 따라 법적 처벌을 요청한다. 방송뿐 아니다. 그들의 권력에서 신문도 자유로울 수 없다. (5월 12일 현재) 민언련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공공연하게 ‘조선일보 손보자’는 글이 올라와 있다.

얼마 전 연합뉴스TV도 이들에게 크게 당했다. 이 방송사는 특성상 친정부인사들(노조포함)이 주류인 회사다. 그런데, 한미정상회담 보도에서 문재인 대통령 가슴에 인공기를 그리는 그래픽 실수가 발생했다. 그래픽담당자 뿐 아니라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등 최고위 간부들이 ‘인사조치’됐다.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부적절하긴 했지만 국장, 본부장이 물러날 정도로 중대한 실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민단체와 극렬 정부지지자들이 연합뉴스의 예산지원을 없애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는 통신사의 특성상 특별법에 근거해 국고의 지원을 받는다. 수익보다는 공공이익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는 엄연히 별개의 회사다. 정권의 홍위병들은 그런 사정을 고려치 않으니, 언론은 알아서 자세를 낮추는 수 밖에 없다.

이런 환경의 방송에서 보도의 공정성을 꾀하거나 패널들을 소신 것 출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론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답답해진 국민은 그래서 유튜브로 몰려갔다. 유튜브는 통제받지 않는 해방공간이 됐다. 그러자 정권은 ‘가짜 뉴스’운운하며 으름장을 놓는다. 실지로 지난 주 보수성향 유튜버가 구속되는 사건도 벌어졌다. ‘웃자고 한 발언을 죽자고 문제 삼아’ 정식으로 구속시킨 것이다. 현정부는 ‘진짜’야당을 광야를 내몰고, 바른말하는 정치평론가들을 유튜브에 몰아넣어서 여론을 독점하려 한다. 그러니, 국민들은 통제된 제도권 언론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다.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언론의 자유’는 남의 나라 말이 되고 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아무리 언론의 목을 틀어쥐어도 여론의 흐름을 막을 순 없다. 언론통제가 강해질수록 민심은 더욱 요동칠 것이다. 시간이 그리 오래 남은 것 같지 않다.

글/김우석 (현)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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