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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떠난 조양호 회장, 체육계에 남긴 발자취


입력 2019.04.08 16:57 수정 2019.04.08 19:22        데일리안 스포츠 = 김평호 기자

삼수 도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이끌어

조양호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평창의 도전을 진두지휘했다. ⓒ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평창의 도전을 진두지휘했다. ⓒ 한진그룹

8일 오전(한국시각) 미국서 숙환으로 별세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탠 체육인이었다.

대한항공 그룹 산하에 배구단과 탁구단을 운영하며 스포츠에 열정을 보인 조 회장은 2008년 7월 대한탁구협회 회장에 선임돼 체육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조 회장의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은 대한민국의 염원이었던 동계올림픽 개최로 이어졌다.

두 차례 유치 도전에 실패한 평창이 결점을 보완하려면 기업가의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정부의 판단에 따라 조 회장은 2009년 9월 김진선 당시 강원지사와 함께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평창의 도전을 진두지휘했다.

조 회장은 국가의 심부름꾼 역할을 한다는 소명 의식으로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간 조 회장은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그 동안 IOC 위원 110명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이러한 조 회장의 노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조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12월 한국언론인 연합회 주최로 열린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에서 ‘최고 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2012년 1월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중 첫째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아울러 조 회장은 2014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라는 중책까지 맡아 지지부진하던 올림픽 준비와 관련해 경기장 및 개∙폐회식장 준공 기반을 만드는 한편, 월드컵 테스트 이벤트를 성사시키는 등 평창동계올림픽을 본 궤도에 올렸다. 개최 당시에는 조직위원장이 아니었음에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만사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부당한 외압에 의해 타의로 물러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정부로부터 “물러나 주셔야겠다”는 사퇴 압력을 받고 2016년 5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올림픽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을 걱정했다.

그는 조직위에 파견된 한진그룹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외부 환경에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당당하고 소신껏 행동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의 열정과 책임감이 있었기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삼수 도전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또한 평창 올림픽은 성공적인 올림픽으로 기억되면서 조 회장의 공은 체육인들의 뇌리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김평호 기자 (kimrard1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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